14. 좋아하는 마음은 타이밍
다행히도 그가 나를 찾아주었다.
물 위로 올라가면 그가 무슨 말을 할까.
어디를 갔었냐고 왜 멀어졌냐고 따져 물을까?
그는 사람들 쪽으로 다시 나를 데리고 가주었다.
가는 동안 나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지만 수경을 쓰고 우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수경 안으로 물이 들어오고 나는 수경을 벗었다 꼈다 난리도 아니었다.
그가 유유히 앞으로 나아가다가 갑자기 멈추고는 뒤돌아 나를 보았다.
나의 수경을 다시 고쳐 씌워주고는 자기를 보라고 손을 가리켰다.
그리고 호흡기를 입에서 빼더니 입으로 커다란 물방울을 만들어냈다.
그 물방울이 마치 구름모양같이 위로 쏟아 오르더니 송알송알 올라가면서 물방울 링이 만들어졌다.
둥둥 떠오르는 그것들을 보고 있으니 마음에도 몽알몽알 비누방울처럼 피어나는 것 같았다.
'내 기분을 풀어주려고 하는 건가..'
몇 개를 더 만들어 보이고는 다시 가까이 다가왔다.
바닷속에서는 말을 할 수 없으니까 서로 수신호를 보낸다.
산소가 부족하다던가. 이제 수면 위로 올라가야 된다던가 하는 것들을 손으로 알린다.
그가 나에게 물었다.
'올라가고 싶어요?'
'아니'
'같이 더 있을래요?'
'응'
그가 바로 내 손을 잡고 산호섬 쪽으로 향했다.
내가 보았던 그 산호섬이 아니라 다른 곳이었다.
아 생각해보니까 제일 처음 다이빙을 했던 장소였다. 그가 나에게 푸른빛 바닷가재를 보여줬던 그곳.
산호섬 뒤쪽으로 향하니 커다란 형체가 보였다.
신기하게도 바닷속에 침몰한 배가 한 척 누워져 있었다.
아마도 이론수업을 들을 때 그가 언급했던 그곳 같았다.
유명한 다이빙 스폿이지만 우리의 일정에는 들어있지 않은 곳이라 가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그는 내 손을 끝까지 잡고 리드했다.
방울방울 물방울이 배속에 가득했다. 신기하고 신비로운 풍경...
그 사이로 작은 물고기들이 가득하고 자이언트그루퍼가 침몰된 배를 집 삼아 유유히 헤엄치고있었다.
아마도 일생에 이런 것을 볼 수 있는 날이 몇이나 될까?
나는 문득 이걸 보여준 그가 고마워졌다. 날 달래주려는 거겠지? 놀란 나를 진정시키려고
일부러 함께 더 시간을 보내 준 걸 알았다.
그래. 그것 말고의 이유는 없을 거야. 하지만...
배 한쪽 편으로 그가 휭 돌아 숨바꼭질을 하듯 장난을 쳤다. 가지고 있던 빵 부스러기를 꺼내 작고 예쁜 물고기를 모으기도 했다.
점점 안심이 되면서 마음도 진정이 되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 다른 마음이 피어나는 것도 느껴졌다.
땅땅땅땅~~
조금 멀리서 이 강사가 사람들을 모으는 신호가 들렸다.
그가 나에게 이제 가야 한다고 수신호를 했다.
나는 재빨리 그를 향해서 헤엄쳤다.
그리고 그의 손을 잡았다. 아주 꼭 잡았다. 절대 놓지 않으려고.
손을 잡은 순간 그가 나를 보았다.
그 눈빛이 너무 따듯해서 이 손을 놓을 수있을까 겁이 났다.
그리고 우리는 수면위로 올라갈때까지 마주 잡은 두 손을 놓지 않았다.
수평선 너머로 해가 지고 있고 파도는 찰랑 거렸으며 내 눈에는 그가 보였다.
그의 옆모습 뒤로 붉은 노을이 아련하게 비추고 배를 타고 돌아가는 동안 내내 또다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그가 내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거리가 아주 조금 가까워졌다는 걸 느꼈다.
-왜 울어요?
-바다가… 너무 이뻐서.
-울보네.
.......
그리고 그가 내 손위에 손을 살짝 포개었다.
입술을 살짝 깨물고 그가 중얼 거렸다.
-진짜 사람 걱정시키는 여자네..
붉은 노을이 지는 바다 저편을 보고 있는 게 눈이 부셨던 걸까.
아니면 그의 따듯한 손길이 너무 따듯해서 참을 수 없었던 걸까.
아마도 앞으로 겪을 감정과 지금의 감정이 부딪혀
눈물부터 났던 건지도 모른다.
-즐거운 다이빙이었습니다~!
친구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렸다.
-야~ 너 도중에 사라진 거 뭐야?
친구가 등짝 스매싱을 날리며 버럭 했다.
-아. 야.... 미안.. 나 잠깐 한눈 팔다가 사람들 놓쳤지 뭐
-진짜 우리 다 놀래가지고... 특히 걔.. 박 강사 당황해서 ~~ 난리난리..
바닷속인데도 그게 다 보임
-당황해?
-그래~ 막 움직임 겁나 빨라지고 어느새 너 찾으러 간 건지 없어졌더라고
-아...
"암튼 별일 없어서 다행이야"
..........
-아니네? 별일 있었구먼
역시나 촉이 예리한 친구가 넘겨짚었다. 하지만 별일이 있긴 있었다 해야 할까.
-야 일단 씻고 저녁 먹으면서 얘기하자. 오늘 막밤이야~
-아 싫어. J 도 같이 있잖아
-그럼 우리 둘이서만 방에서 먹어?
-그래도 되고...
하지만... 그가 보고싶긴 하다..마지막 밤....
멀리서 그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딱 붙는 다이빙 수트를 입고 상의는 반쯤 내려 팔 부분을 허리에 감아 놓았다. 수트를 벗은 상체는 매끄럽고 다부졌다.
역시 다이빙 수트를 입었을 때 그의 몸매가 부각되는 것 같았다. 긴 팔과 다리, 넓은 어깨와 날씬하고 다부진 몸매는 훨씬 더 그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다.
거기에 구릿빛으로 살짝 태닝 된 피부… 단단한 그의 팔
'그만!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아무래도 내 눈에 마귀가 씐 것 같았다.
그때 이강사가 그에게 다가가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었다.
아마도 내가 이탈한 이유를 두고 얘기하는 듯했다.
-언니
J였다. 뾰로통한 얼굴로 나타나 내 걱정을 하는 척하며 물었다.
-갑자기 왜 사라진 거예요?
-아 그건 그냥 길 잃어서.
-박 강사님이랑 한참 안 오던데...?
-아.. 내가 좀 생각보다 멀리 갔었나 봐
-아.. 그랬구나.
J에게는 절대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둘이서 무엇을 했는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와 J가 함께 있었던 밤이 궁금하지 않게 됐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J 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 사실 오빠랑 그날 밤에 영화만 본 게 아니에요
'응? 그건 또 무슨 소리지?'
'아 됐고 그딴 거 나한테 고백하지 마!'
-안 궁금해
-정말요? 안 궁금하다고?
그때 친구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불렀다.
J 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내심 짐작 아닌 추측을 하긴 했다. 친구도 그걸 눈치챈 건지 나를 재촉했다.
-야! 그냥 쟤말 듣지 마
친구는 멀리서도 J가 하는 말을 들었나 보다. 재촉 당해 이끌려 방으로 들어갔지만 내 마음도 J의 이야기 따위 듣고 싶지 않았다.
아니.. 무슨 일이 있었다 해도 상관없었다. 아니.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