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어버린 피자 두 조각. 재떨이 가득, 탄 냄새 배인 그을린 놋그릇. 지겨우리만큼 정든, 나의 식탁 위 풍경은 오늘도 어제와 다를 것 없이 그대로다. 요란한 전화벨 소리. 받자마자 들려오는 엄마의 잔소리에, 두 귀가 떨어져 나갈 듯했다. 결국 평소처럼 음소거 버튼을 누르고 습관적으로 냉장고 문을 열었다. 차갑게 식은 집 안 공기 속, 줄지어 선 생수병들. 나름 이 사막에서 나만의 오아시스를 만들어놨구나 싶었다. 죽고 싶다가도, 또 문득 살고 싶어지는. 참 모순적이지만 그게 나라는 인간인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럼 그렇지, 엄마는 여전히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도대체 왜 전화를 거는 건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 즈음, 생수병을 열어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공복이라 그런지, 차가운 물이 목을 타고 흘러 온몸에 냉기를 퍼뜨렸다. 허기가 느껴졌다. 그래서 식탁으로 가 담뱃갑을 들고는 다시 침대로 향했다. 잠은 이미 깼지만, 창밖 북적이는 아침 풍경이 왠지 모르게 피곤하게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은 왜 이리도 부지런한지. 나도 나름 부지런 떨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겨우 아침 일찍 일어나 생수 한 병 꺼내 마신 게 전부 구나 싶었다. 라이터가 어디 있더라. 베개 밑에 손을 넣으니, 예전에 당구장에서 받은 라이터들 몇 개가 손에 잡혔다. 참 맛있는 아침 식사였다. 깨끗한 물 한 잔, 그리고 더러운 공기를 코끝부터 폐까지 가득 채우다니. 이 정도면 오늘도 나름 생산적인 하루의 시작 아닐까 싶다. 다시 눈을 떠보니 방 안 공기는 아직도 어제의 담배 연기와 뒤섞여 있었다. 환기할 겸 창문을 열어볼까 하다가, 그냥 말았다. 피곤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자꾸 눕고 싶다. 오늘이 며칠이더라, 아니 그게 중요했던가 생각이 들 즈음, 의사가 나보고 우울증이라며 약을 타줬던 게 떠올랐다. 그게 한 달 전이었나?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휴대폰 화면을 켜보니 미확인 전화 두 통. 하나는 엄마, 또 하나는 알 수 없는 번호. 아마도 무슨 전자의 김미영 대리겠지. 요즘은 전화를 받는 것조차 기피하고 싶어 진다. 왠지 모를 불쾌함이 밀려올 때쯤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가 몸을 말았다. 살짝 젖은 티셔츠 끝자락이 배에 닿아 기분이 묘했다. 어제 씻었던가? 기억이 안 난다. 어쩌다 이리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습관처럼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주변에서 소문이 날만한 크고 나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나의 일상은 왜 이리도 구겨진 종이 마냥 접혀만 가는 걸까? 오늘은 뭘 먹어야 하나. 생각만 해도 속이 더부룩했다. 그래도 살아야겠다 싶어 냉장고를 열어보니, 망할 냉장고, 내 오아시스는 고갈되었다. 사막 속 홀로 있음이 두렵지 않다고 믿었는데, 집 안의 냉랭함에 몸이 으슬으슬 해지자, 너무나도 외로워져서 누구보다 빠르게 다시 침대로 달려가 이불을 끌어안아버렸다. 이 외로움은 어찌어찌 참을 만 하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목이 말라왔다. 결국 다시 일어나 씻지도 않은 얼굴로 점퍼를 걸쳤다. 어차피 아무도 나한테 관심 없을 테니까 괜찮겠지. 더러워질 채로 헝겊진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입가리개처럼 목도리를 둘렀다. 거울 앞의 내 모습은 꽤나 이질적이 게만 느껴졌다. 내가 이렇게 생겼던가, 꼴 보기가 싫어, 문 앞에서 신발을 신으려다 말고 한 번 더 주저앉았다. 심장이 괜히 두근거렸다. 누군가 우리 집 문을 두드리며 재촉하는 것도 아닌데, 괜히 나가서 해코지를 당하면 어쩌지 같은 쓸데없는 걱정들이 머릿속을 차지했다. 물을 사로 다녀오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피곤한 건지 모르겠다. 그렇게 난 혼잣말을 지껄이다 그대로 신발을 벗고 뒤돌아섰다. 다시 날 선 냉기가 날 감쌌고, 그 차가움 조차 이젠 안전하다고 느껴졌다. 평소처럼 그냥 배달 앱을 켰다. 그리고 물 한 박스를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결제만 하려다 말았다. ‘배송은 내일 도착합니다’, 그 문구를 보고 있자니, 나의 목도 속도 더 타들어 갔다. 세수라도 해야 정신을 차릴까 싶어 화장실로 들어갔다. 거울로 마주친 나의 맨 얼굴을 보고 있자니 참, 가슴이 막혀왔다. 도저히 이 얼굴로는 가려도 못 나간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게, 나의 피부는 푸석하고, 입가는 텄고, 눈은 죽은 생쥐처럼 생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거울 속 내가 나를 질려하는 모습으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세수하기를 포기했다.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구나 싶어 다시 한번 나 자신이 한심하게만 느껴졌다. 나라는 인간에게 있어 이불을 들쑤시고 다시 덮는 게 최선이니 그냥 깊은 잠을 자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다음 날이 없길 바라며 눈을 감았다.
안녕,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