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개막을 맞아 적어보는 내 스트레스 해소법 중 하나를 소개합니다. 바로 야구 보기! 이렇게 말하면 이제 야구를 좀 아는 사람들은 되묻습니다. 스트레스 해소법이요? 스트레스 제조법 아니구요? 젠장...
사진이 아직 남아 있는게 신기하다
사실 이렇게 야구를 사랑할 생각은 없었다. 청룡 엠비씨 어린이 회원이었던 아빠 덕분에 이름만 겨우 알던 엘지 트윈스의 팬이 된건 2017년. 당시 여대에서는 여대생들을 대상으로 여성 팬들 모집을 위한 야구단들의 눈물겨운 자기 어필쇼가 열리곤 했다. 평소에는 관심도 없었지만 심심하니까 한번 가볼까 라는 마음으로 그나마 이름이 익숙한 엘지 트윈스의 '여자가 사랑한 다이아몬드' 라는 행사에 가게 되었다. 구단에서 진행한 이벤트로 간단한 야구 설명과 팀 소개를 듣고 퀴즈 이벤트를 참여하는 행사였는데 당시 한창 야구 만화에 빠져있었던 나는 손쉽게 제일 마지막 문제를 맞추고 무려 유니폼을 받게 되었고, 행사 참여 경품으로 당일 잠실 경기 티켓까지 받게 되었다.
유니폼도 받았겠다, 예의상 한번 가줄까? 라는 마음으로 갔던 잠실 야구장. 마침 또 그 경기를 이겼네. 그리고 또 가벼운 마음으로 요즘 심심한데 야구 관람 동아리나 들어가볼까 하고 동아리를 신청했고 어찌저찌 합격해서 1년 동안 열심히 동아리 활동을 즐기며 직관을 다녔다. 이때 만난 엘지 팬 친구와는 아직도 같이 야구를 보러다닌다.
하지만 동아리를 다니면서도 그냥 직관 갈 때만 즐거울 뿐 144경기를 전부 챙겨보지는 않았다. 이겨도 하이라이트 볼까말까 했으니... 그리고 2019년 교환학생으로 일본에 가게 되면서 야구에 대한 관심은 더더욱 꺾이게 되었다. 하지만 2020년 역병 때문에 휴학을 하고 본가인 경주에 있던 차에 5월 5일 프로야구가 개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할것도 없는데 오랜만에 야구나 볼까?
그리고 나는 봐버린 것이었다. 당시 2020년 드래프트 신인 이민호와 김윤식을. 흠 좀 귀엽군, 어린 놈들이 잘 던지는구만. 이라는 생각을 하며 아빠따라 야구를 조금씩 보게 됐고 운명의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2020년 5월 21일과 24일. 기억해 내가 야빠가 된 순간...
비밀 선발이랍시고 내보낸 만 18세 였던 이민호가 5이닝을 던지며 선발승을 거두고, 그 뒤로 김윤식과 정우영, 이상규 등 젊은 투수들이 나와 줄줄이 무실점을 막던 5월 21일 경기.
어이없는 리터치 오심으로 난리가 났지만 결국 당신 외인 타자였던 라모스가 끝내기 만루 홈런을 치면서 역전했던 5월 24일 경기.
29년만의 통합 우승
이 두 경기로 나는 속절없이 야구에 빠지게 됐고 그 후로 4년동안 144경기를 모두 챙겨 보고, 연 10회 이상 직관을 다니며, 연 2회 이상 원정 경기도 다니는 답도 없는 야빠가 되어버린 것이에요 하와와... 그리고 대망의 작년, 엘지 트윈스는 29년만의 우승을 달성했고 나는 우승팀의 팬이 되었다. 드디어 마참내! 태어나서 처음 우승을 보았도다!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던 선수들, 함께 할 수 없어서 슬펐던 선수들. 짧다면 짧은 6년간의 시간을 보답받은 느낌이었고, 우승을 한 순간에 그들의 팬이어서 정말 행복했다.
야구팬들은 왜 늘 화나 있을까?
취미로서 야구를 사랑하지만 스트레스 해소가 되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야구 밈 중 하나인 '야구 팬들은 늘 화나있다' 라는 말이 맞는 것도 같다. 이겨도 화날 때가 있고, 지면 당연히 화 난다. 경기 시간과 호흡이 긴 스포츠인 만큼 사소한 플레이 하나하나를 곰씹을 타이밍이 충분하기 때문에 더 화가 난다. 스트레스 풀러 야구장 갔다가 되려 돈도 날리고 시간도 날리고 스트레스를 얻어오는 경우도 부지기수고. 플레이 하나하나에 화를 내며 보는 나를 보고 엄마는 '그럴거면 야구를 보지마라' 라며 타박을 하지만 (하지만 엄마도 화 내면서 야구보고 있음) 그게 또 내 마음대로 되는게 아니거등요...
어제의 역적이 오늘의 영웅이 되는 것이 야구이고, 9회말 2아웃 상황에서도 경기를 뒤집을 수 있는 것이 야구다. 한 경기에 한타석 나올까 말까하는 대주자 선수가 결승타를 때려낼 수 있는 것이 야구고, 다신 야구를 하지 못할 것라는 이야기를 듣던 선수가 팀을 7연패에서 구해내는 것이 야구의 재미다. 시간 제한이 없는 스포츠, 팀을 위한 희생을 기록하는 스포츠, 룰이 복잡한 스포츠 그 모든 게 야구의 매력인걸. 화가 나고, 스트레스 받아 가면서도 야구를 보는 건 그 스트레스를 뛰어 넘는 카타르시스와 중독성이 있다.
야구인들은 종종 야구를 인생에 빗대어 말하곤 한다. 평균 경기 시간이 3시간이 넘는 경기 속에서 수많은 작전이 오가고, 서로의 타이밍을 살피며, 큰 한방을 통한 역전이 가능하며, 어처구니 없는 실책도 나오는 그 모습을 희로애락이 담긴 인생으로 빗대는 것이다. 야구는 인생이다. 이 말을 보는 순간 나는 야구가 조금 더 좋아졌다.
집에 있으면 각자 방에 있기만 하던 우리 가족들은 야구가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거실로 모인다. 밖을 나가서도 내 핸드폰은 야구를 틀어두느라 만지지 못하고, 가족끼리 야구를 보러가기도 한다. 사이가 나쁘면 나빴지 좋지는 않던 동생과도 함께 야구장에 가서 야구를 보게 됐다. 물론 야구 보면서 감독도 아니면서 서로 선수 기용에 대해서 얘기 하다가 많이 싸우기도 하지만...
그렇게 야구를 보면서 블로그에 기록도 하고 했더니 이렇게 출판사에서 야구 책 리뷰 요청받는 팬이 되었습니다. 내 블로그에 야구 관련해서는 경기 진날 적어둔 욕이랑 쌍딸님 책 리뷰 밖에 없는데 대체 뭘보고 리뷰를 맡겨주신걸까. 이건 얼른 읽고 리뷰를 써보는 걸로...
어쨌든 나는 야구라는 스포츠가, 엘지 트윈스라는 야구 팀이 정말 좋다. 때로는 사람 복장을 뒤집고, 미칠 것 같을 때도 있지만 그것조차 포함해서 엘지의 야구가 좋다. 그러니까 내 엘지야 제발 부탁이니 열받게 하지말고 강팀다운, 작년 디펜딩 챔피언 다운 야구를 보여줘라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