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결 Jul 07. 2023

미니멀리스트의 여행 가방

에코백 메고 떠난 일주일 살기


때는 작년 봄의 일이다. 통영에서 일주일 살기를 한 적이 있다. 이 여행의 특이점은 캐리어도 배낭도 없이 에코백만 달랑 들고 떠났다는 것이다. 짐은 당일 꾸렸다. 옷을 매일 빨아 입기로 결정하니 에코백 하나로 충분해 보였다. 가벼운 장바구니에 짐을 나눠 어깨에 양쪽으로 하나씩 가방을 멨다. 에코백을 들고 간 이유는 배낭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챙겼던 짐은 대략 22가지.


수분크림, 선크림, 폼 클렌저, 샴푸
수건, 손수건, 치약, 칫솔, 치실, 수세미
잠옷 바지, 긴팔 티, 반팔 티, 팬티, 양말, 머리끈
지갑, 스마트폰, 충전기, 이어폰, 책, 장바구니

(생각나지 않는 작은 물건 제외)


입고 간 옷은 흰색 셔츠에 긴 바지. 바지를 제외하고 옷을 매일 빨아 입었다. 샴푸는 작은 공병에 담았고, 폼 클렌저와 화장품은 그대로 들고 갔다. 청소용 수세미는 집에서 쓰던 낡은 걸 가져 가서 사용하고 버렸다. 일주일 집을 비울 터라 남은 음식(현미 한 줌, 토마토 몇 알, 김 몇 장)도 싸 갔다. 책을 포기하지 못해 통영 여행지에 대한 책 한 권을 마지막으로 챙겼다.



지난 일주일 여행의 짐



아무래도 짐을 최소한으로 꾸리다 보니 불편한 점도 있었다. 바디로션을 공병에 담지 못해 가져가지 않았는데 피부가 몹시 건조해서 애를 먹었다. 현지에서 구입하려고 하다가 그냥 며칠 참기로 했다. (지금은 화장품을 바르지 않아서 없어도 괜찮다.) 특이점은 숙소에 헤어드라이어가 없었다는 것인데,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꼼꼼히 닦고 자연 바람으로 말렸다. 느린 일상의 여유를 맛본 듯하여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저녁에는 바닷바람이 쌀쌀했던 탓에 다음에는 가벼운 외투를 꼭 챙기기로 했다. 이 외에 숙소가 깨끗하지 않아서 물티슈를 구입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좋은 점이 더 많았다. 여행 마지막 날 숙소를 나오기 전 빠르게 짐을 챙길 수 있었다. 짐이 적으면 여행을 마치고 나서도 편하다. 집으로 돌아온 후 짐 정리가 금방 끝나니 피곤하지 않았다. 여독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미처 다 풀지 못한 짐은 때로 스트레스가 된다. 여행 가방에도 미니멀이 필요하다. 가방에 짐을 넣기 전에 '만약'을 위한 물건인지 '꼭' 필요한 물건인지를 먼저 따져 보는 걸 추천한다.



지금 일주일 여행의 짐을 꾸린다면?



손수건, 수건, 속옷, 잠옷 한 벌, 얇은 외투
비누, 칫솔, 스마트폰, 충전기, 지갑, 물병, 머리끈


계절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이 정도가 된다. 숙소 상황에 따라 수건, 비누는 생략이 가능하다. 외투와 머리끈을 착용하고 간다면 11가지로 줄어든다. 더 이상 생각나는 물건이 없어서 스스로도 놀랍다. 이전과 달라진 점은 화장을 하지 않고 비누 하나로 씻기 때문에 다른 세안제나 화장품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 여행에서 화장품이랑 세안용품을 그대로 들고 가다 보니 짐이 적은데도 가방이 제법 무거웠다.


무거운 책 역시 따로 챙기지 않을 것 같다. 책이 없어도 여행지에서 볼거리는 많다. 만약 책을 꼭 읽어야만 한다면, 얼마든지 방법이 있다. 실제로 지난 여행에서 도서관에 잠깐 들르기도 했고, 우연히 숙소 사장님께서 시집과 수필집을 빌려주시기도 했다. 아니면 전자책을 읽으면 되니 문제없다. 다음엔 여행 가방을 훨씬 가볍게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여행도 미니멀해졌다. 예전에는 2박 3일, 3박 4일의 짧은 일정에도 캐리어 하나에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가는 게 기본이었다. 거기다 어깨에 멘 가방에도 휴대용 소지품이 한가득이었다. 며칠 내 다 입지도 못하는 옷을 여러 벌 챙기곤 했다. 심지어 여행지에서 입기 위해 새 옷을 산 적도 있다. 더는 여행 가서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하지 않는다. 지금은 여행지에서 매일 똑같은 옷을 입는다. 여행에서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 건 여행지에서 입었던 예쁜 옷이 아니라, 그때 봤던 풍경과 마음에 담아 온 그 시간이라는 걸 배웠다.


새로운 여행을 떠난다면 최소한으로 필요한 짐만 챙길 생각이다. 더 가벼운 발걸음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부푼다.





매거진의 이전글 돈 한푼 안 드는 취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