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 쓰는 취미는 없다. 어쩌다 보니 좋아하게 된 것들이 큰돈이 들지 않는 것일 뿐. 지금 내 취미는 독서, 글쓰기, 시 짓기, 필사와 낭독이다.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글쓰기 활동은 집에 있던 노트와 펜을 사용하니 애써 지갑을 열지 않아도 된다.
도서관을 서재처럼
독서는 접근성이 좋은 취미다. 책을 구입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책을 볼 수 있다. 지역 도서관의 대출권수는 기관마다 다르나 2주에 5~30권으로 많다. 요즘은 출퇴근길 이용할 수 있는 지하철 도서관도 많이 생겼다. 도서관에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시에서 운영하는 전자책 서비스를 통해 스마트폰으로 책을 볼 수도 있다. 읽고 싶은 신간이 있다면 희망 도서를 신청하면 된다. 도서관마다 구매 기준이 다르지만 보통 오래되었거나 절판된 책은 도서관 측에서 구입하지 않는다. 그런 책은 전자책이나 중고서점을 이용하면 된다.
오래도록 소장하고 싶은 책을 구입하는 게 아니라면 계속해서 도서관을 이용할 생각이다. 책을 보관하고 정리하는 일이 번거롭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도서관을 내 서재처럼 이용하는 게 훨씬 편하다. 또한 새 책을 구입하는 것도 자원 낭비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책을 소비하는 것이 아닌 공유하는 방식을 지향한다.
책 한 권 읽지 않던 사람
나는 어려서부터 책과는 거리가 멀었다. 몇 해 전 우연히 유튜브에서 알게 된 미니멀라이프에 대한 호기심이 동하여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도서관에 가서 가장 먼저 읽고 싶은 책을 딱 한 권만 빌려 왔다. 1~2주에 한 권씩 읽던 것에서, 일주일에 한 권, 다음은 3~4일에 한 권으로 차츰 독서량이 늘어갔다. 영양학, 건강, 자기 계발, 환경, 철학, 인문학, 문학 등 다양한 관심사를 따라 책을 읽다 보니 독서에도 탄력이 붙었다. 책에는 연결고리가 있어서 끊이지 않는다. 보통 이번에 본 책에서 알게 된 새로운 책을 찾아 읽게 되는 식이다. 그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것도 독서의 또 다른 재미다. 책에 흠뻑 빠졌을 때는 쉬는 날 하루 종일 책만 읽곤 했다. 앉은 자리에서 책 한 권을 읽는 게 쉬운 일이 될 만큼 책과 가까워졌다. 필요한 정보나 새로운 관심사가 생기면 우선 책부터 찾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지난 2년간 책 한 권을 사지 않고도 많은 책을 읽었다. 책을 사서 볼 때보다 더 자주 책을 읽고 있다. 이전에는 드물게 책을 한두 권 구입하여 읽는 게 전부였다. 그동안 샀던 책들은 기분 전환을 위한 쇼핑에 가까웠다. 책 제목과 표지만 보고 고른 책들은 나의 정신과 마음을 풍족하게 하기보다는 책장을 예쁘게 장식하는 역할에 그치곤 했다. 그리고 먼지가 쌓인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다. 지난날 읽었던 책들에 대한 기억이 흐린 것을 보면, 과거에는 책에서 좋은 영향을 받지 못 한 듯하다. 지루한 책보다는 더 재밌고 자극적인 것들을 쫓았던 때였다.
책이 이렇게 재밌는 것인 줄 몰랐다. 책을 억지로 읽으려고 했다면, 어떤 목적을 갖고 시작했다면 금방 포기했을지 모른다. 학창 시절 교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보는 친구나 쉬는 시간 자기 자리에 앉아 책을 읽는 친구를 이해하지 못했다. 반대로 지금은 책을 보지 않는 사람들을 의아하게 바라볼 정도로 책을 좋아한다. 독서는 정말 즐겁고 원해서 하는 일이다. 이렇게 뭔가를 좋아하고, 계속해서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을까. 나의 정신과 마음과 생활 전반에 이로움과 만족을 안겨 준 건 책이라는 존재가 처음이었다. 책을 읽고 나와 세상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졌다. 책을 통해 정서적 안정감을 찾았고 마음의 곁가지도 덜어낼 수 있었다. 책에서 세상을 배웠고 지혜를 배웠다. 미니멀라이프가 새로운 생활의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다면, 책은 세상을 이해하는 창구가 되어 주었다.
활자와 가까워지니 자연스레 이전에 좋아하던 게임과 유튜브, 영화, 드라마와 같은 매체와 멀어졌다. 좋아하는 취미가 바뀌었고 더 큰 만족감을 얻고 있다. 책을 꾸준히 읽다 보니 독서 리뷰와 서평부터 에세이까지 다양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독서는 다른 창작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훌륭한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독서가 습관이 되면 글쓰기도 어렵지 않은 일이 될 수 있다.
나는 지금 오래전 막연하게 '이렇게 살고 싶다'라고 생각했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시도 짓고 낭독을 하고 필사도 하며 일상을 보낸다. 미니멀라이프를 통해 얻은 빈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느냐 묻는다면 이런 시간들로 채우고 있다고 답하겠다. 비움으로 채울 수 있는 여유를 얻었다. 무엇보다 책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로움이 생긴 일상이 그 자체만으로 풍요롭다.
우리는 즐거움을 얻기 위해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행복을 얻는 데에 반드시 많은 돈과 값비싼 물건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빈손으로 걷는 산책도 취미가 될 수 있다. 산책길에서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시선에 담을 수 있는 풍경이 달라진다. 세상을 향유하는 데에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자신이 가진 것으로 일상을 누릴 수 있는 기쁨을 아는 자라면 세상에 제일가는 부자나 다름없다.
이제는 사색과 사유만 있다면, 그런 마음의 여유로움만 있다면, 언제나 삶이 무료하지 않겠노라 말할 수 있다. 겉멋도 허풍도 아니다. 대단한 철학과 사유를 지닌 것도 아니다. 살아보니 내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은 지천에 널려 있음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에 감사함을 기억하고 있다. 손에 잡히는 것들이 아니어도 우리가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어쩌면 즐거움이란 내 안에서 솟아나는 것이라는 걸 뒤늦게 발견한 건지도 모른다. 그 새로움의 발견을 만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