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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Jun 05. 2023

속옷의 교체주기는 누가 정한 걸까?

미니멀라이프


얼마 전 속옷을 새것으로 교체했다. 한동안 낡은 속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팬티가 찢어지는 것을 생전 처음 보았다. 3장을 돌려 가며 입으니 1년이 되기도 전에 금방 해지고 늘어나고 구멍이 난다. 진작 바꿀 때가 되었는데 얼마나 더 입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속옷에 처음 구멍이 났을 때 꿰매어 보려고 했으나, 옷감 자체가 워낙 얇아서 바느질을 하기가 까다로워 보였다. (사실은 귀찮았다.) 입는 데는 지장이 없어서 얼마나 버티나 지켜봤다(방치했다). 버티는 쪽은 속옷이 아니라 나였다. 일종의 한계를 시험하는 걸 즐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몇 년째 애용하고 있는 팬티의 소재는 모달. 얇은 모달은 쉽게 찢어진다. 빨래가 잘 마르고 입은 듯 안 입은 듯한 착용감이 장점이지만 면에 비해서 내구성은 좋지 못하다. 면은 늘어나긴 해도 쉽게 구멍 나진 않는다. 그래도 빨래가 쉽다는 장점 때문에 아직은 모달에 더 손이 간다.


속옷의 교체 주기는 6개월?


그러고 보면 이전까지 속옷에 구멍이 나서 버렸던 기억은 없다. 속옷이 여러 장 있었기 때문에 쉽게 해지는 일이 없었다. 내 몸도 모르고 덜컥 샀다가 입기 불편해서 버리거나 대충 바꿀 때가 되었다는 이유로 새 제품을 사면서 멀쩡한 것을 버리기만 했다.


속옷의 교체 주기를 검색해 보면 6개월이라고 나온다. 그건 누가 정한 걸까? 매일 깨끗하게 빨아 입으면 위생상 문제 될 일도 없다. 더욱이 속옷을 여러 장 구비하고 있으면 하나의 속옷을 그렇게 많이 입지 않게 된다. 예외는 있지만 물건의 수명은 쓰기 나름이다. 해가 되지만 않는다면 굳이 억지로 단축시킬 필요가 있을까. 속옷도 입을 수 있을 때까지 입고 버리면 된다.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하기로 했다. 언제든 그렇게 할 수 없을 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을 때 그만두면 되는 일이다. 단지 입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기간이 늘어났을 뿐. 그런 의미에서 여유로워졌다고 해야 할까. 이 느슨한 기준도 나쁘지 않다.


매일 같이 늘어나고 구멍 나고 찢어진 누더기 옷을 입고 보고 만지면서도 아무렇지가 않았다. 그저 이런 받아들임이, 나의 모습이 더 신기할 뿐. 1년 전만 해도 늘어난 속옷은 창피하고 입기 싫어했다. 분명 구질구질하고 초라하고 궁색 맞은 모습이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왜일까? 아까운 줄 알게 되어서? 함부로 버리지 않는 게 더 중요해서? 더 이상 물건에 나를 이입하지 않게 되어서? 어떤 의미든 좋다. 그냥 ‘아직 입을 만하면 입는다’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어서 좋다. 구멍 뚫린 레이스, 티 팬티도 입는데 겨우 이 정도 찢어졌다고 못 입을 일은 없지 않나. 핸드메이드 레이스 팬티라는 농담도 나온다.




참, 사람 일은 모르는 일이다. 예쁜 속옷이 나를 위한 선물이라 여겼던 적도 있었다. 이런 변화는 가끔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전의 모습도 지금의 모습도 그때의 모습 그대로 자연스러운 일. 오늘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본다.


수고한 옷에 감사를 보내며 새로 들인 속옷 두 장과 1년을 잘 보내 보기로 한다. 이 작은 옷이 힘든 교대 근무에도 잘 버텨 주길.



해진 옷을 입었다고
해진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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