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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May 07. 2023

바나나 하나 먹기가 힘들었다

역류성 식도염 극복기


자연식물식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역류성 식도염과 위염 때문이었다. 불규칙한 식습관의 여파로 하루아침에 죽도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는 몸이 되었다. 그제야 정신이 번뜩 들어 식습관을 바로잡기 시작했다.


자연식물식(WFPB, whole food plant based diet) : 자연에서 유래한 식물성 음식(통곡물, 채소, 콩류, 견과류)을 최대한 가공/정제하지 않고 먹는 식단.


 




역류성 식도염


때는 2021년 9월. 역류성 식도염이 생겼다. 자고 일어났는데 목에서 이물감이 느껴지고 신물이 올라왔다. 증상을 검색해 보니 역류성 식도염과 비슷했다. 몸을 숙일 때 역류하는 느낌이 들었고 특히 누워 있기가 힘들었다.


처음에는 역류성 식도염에 나쁘다는 음식을 철저히 배제하고 소화가 잘 되고 위에 좋다는 음식으로 식단을 꾸렸다. 육류, 달걀, 유제품을 먹지 않고 두부, 감자, 양배추, 숙주나물, 버섯으로 반찬을 만들었다. 요리할 때는 기름을 쓰지 않고 음식의 간은 최소한으로 하는 저염식을 했다. 소화를 방해한다는 국물 요리도 일절 먹지 않았고 식전, 식후에는 물도 마시지 않았다. 매일 30분~1시간씩 걷기 운동도 꾸준히 했고, 잠들기 전까지 절대 눕지도 않았다.


그런데 몸은 쉬이 나아지질 않았다. 뭘 먹어도 소화가 잘되지 않았고 속이 불편했다. 입맛도 없었고, 바나나 한 개를 먹기 힘들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다. 많이 먹지 못해 2주 만에 체중이 급격히 줄고 머리카락이 빠지고 온몸에 멍이 들었다. 몸에 나쁘다는 음식은 안 먹고 있는데 '왜 낫지 않는 거지?' 노력에 비해 회복이 더디어 속상했다. '혹시 먹는 음식이 잘못된 건가?' '내 몸에 맞지 않는 음식인가?' 어느 것에도 확신을 갖지 못했다.


두부가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이라고 했는데 그렇지 않았고, 양배추, 바나나가 위에 좋다고 했는데 가스가 많이 차는 것 같았다. 나한테는 맞지 않는 음식 같았다. 역류성 식도염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다 달랐고 나는 직접 시도해 가며 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 식단이나 따르기에는 위험 부담이 있었고 인터넷으로 접한 정보에는 한계가 있었다. 음식에 있어서도 제대로 된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으로 배운 자연식물식


《몸에도 미니멀리즘》이라는 책을 시작으로 자연식물식과 관련된 전문서적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자연식물식뿐만 아니라 채식, 건강, 영양학 등 많은 책을 통해 건강한 음식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인터넷이 아닌 책을 통해 내가 알고 있던 건강한 음식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고 잘못된 지식을 바로잡았다. 그렇게 자연식물식을 시작하게 됐다.






자연식물식의 효과


역류성 식도염, 위염에는 과일이 안 좋다는 말에 한 달 가까이 좋아하는 과일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런데 과일은 사실 가장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이었다. 과일은 소화가 빠르고 소화시키는데 많은 에너지가 들지 않는다. 처음엔 많이 먹지 못해서 사과 한두 조각씩 먹기 시작하여 차츰 양을 늘려 갔다. 과일은 무엇보다 배변 활동에 큰 도움이 됐다. 먹는 양이 줄어들어 극심한 변비로 고통받았는데 아침 과일을 챙겨 먹기 시작하면서 증상이 개선됐다.


자연식물식은 책에서 배운 정석을 그대로 따랐다. 가공 음식은 피하고 매일 과일과 채소를 잘 챙겨 먹었다. 소화력은 빠르게 개선됐다. 역류성 식도염, 위염 때문에 복용하던 내과 약도 끊었다. 장 운동도 활발해지니 식욕도 생겼고 먹는 양도 차츰 늘면서 빠졌던 살도 다시 붙었다. 지긋지긋하던 어지럼증도 사라지고 일상의 생기를 되찾았다.


역류성 식도염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건 몸에 좋은 음식을 챙겨 먹은 것보다 좋지 않은 음식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건강이 아닌 오로지 맛으로만 먹는 음식들(라면, 냉동식품, 기름진 배달 음식, 편의점 음식 등)을 철저히 피했다. 물론 외식도 하지 않고 집밥만 먹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하고 음식을 천천히 먹고 운동도 꾸준히 하며 규칙적인 생활을 한 덕분에 비교적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연식물식으로 완전히 식이를 전환하지 않았다면, 몸이 나아졌다고 그대로 이전의 식생활로 돌아갔다면, 병은 분명 재발했을 거라 확신한다. 왜냐하면 나는 달고 기름진 음식을 정말 좋아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입맛이 완전히 바뀌었다. 기름진 음식은 입에 맞지 않고 채소와 과일을 있는 그대로 먹어도 충분히 맛있다는 걸 알아버렸다. 순수한 입맛을 갖게 되었는데 애써 잃을 필요가 없었다. 힘들게 되찾은 건강은 더욱이 소중했다. 내가 역류성 식도염과 싸워 얻은 영광이 있다면 바로 내 몸을 살뜰히 보살피는 마음과 이 건강한 입맛이다.






여전히 자연식물식


지금은 자연식물식이 가져다주는 건강 상의 이점보다 자연스럽고 맛있는 음식과 간소화된 생활의 편리함에서 더 큰 만족감을 얻고 있다.


라면을 즐겨 먹던 사람이 이제 현미국수를 먹고, 팥에 연유를 뿌려 먹던 사람이 그냥 삶은 팥만 퍼먹고, 토마토에 설탕을 뿌려 먹던 사람이 그냥 토마토만 집어 먹는다. 그런데 그렇게만 먹어도 너무 맛있다. 맛있어서 자꾸만 먹게 된다. 매일 집밥을 해 먹을 수 있게 된 것도 음식을 바꿨기에 가능한 일이다. 바쁠 때는 과일과 채소를 그냥 씻어서 먹기만 하면 되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큰 수고로움 없이 건강한 밥상을 차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자연식물식은 내가 매일 먹는 음식, 좋아하는 음식 그리고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소소한 행복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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