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같은 음식 먹기가 주특기인 사람
매일 같은 음식을 먹고 사는 게 누군가에겐 따분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다. 나름의 비결은 '질리지 않는 음식'에 있다.
원래도 같은 음식을 며칠 연속으로 먹는 걸 좋아했다. 한 번 꽂히면 질릴 때까지 먹는 게 주특기였다. 떡볶이만 삼일 내내 먹고 같은 집밥 메뉴만 계속 만들어 먹었다. 하지만 더 맛있는 음식이 나를 유혹했기 때문에 매번 새롭고 다양한 음식을 찾는 일이 더 많았다.
그런데 자극적인 음식은 너무 쉽게 물렸다. 첫 입은 무척 맛있는데 갈수록 더 맛있어지지는 않았다. 맛의 즐거움이 짧았다. 특히 돈가스가 그러했다. 돈가스는 3조각까지는 정말 맛있다. 그런데 그 이상을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다. 정말이지, 튀긴 돼지고기는 내 몸에 상극인 것인지 돈가스 하나를 다 먹는 게 힘들었다. 배가 부르기도 전에 물려서 먹질 못했다. 분명 맛있는 음식인데 기이한 일이었다. 튀긴 음식을 잘 소화시키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꿋꿋하게 모른 척했다. 그래야 먹을 수 있으니까.
치킨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돈가스보다는 더 많이 먹을 수 있었지만. 치킨 역시 한 번에 많이 먹지는 못했다. 그래서 쉬어 가며 여러 번 나눠 먹곤 했다. 식은 치킨을 먹는 게 다반사였다. 물리는 치킨을 계속 먹으려면 치킨 무는 필수였다. 어쩌면 치킨보다 치킨 무를 더 많이 먹기도 한 것 같다. 치킨 무를 먹으려고 치킨을 먹었던 걸까. 치킨도 매번 몇 조각이 한계였다. 1인 1닭은 꿈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담백한 음식을 좋아했다. 기름진 음식보다 가끔 먹는 심심한 음식이 입맛에 더 잘 맞는 느낌이었다. 그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새로운 음식에 대한 흥미를 참지 못했다. 세상에는 내가 먹어 보지 못한 수많은 음식이 있다. 먹방에서는 매번 새로운 음식이 나오고, TV에서는 맛집 얘기가 쏟아진다. 그런 환경에 노출되니 내가 진짜 좋아하는 맛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화려한 음식, 달콤한 디저트가 나를 부르는 데 어찌 외면할까. 불가항력이었다. 그렇게 늘 새로운 맛에 끌려다녔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맛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많은 사람들이 맛있다고 하는 맛을 좇았다. 그게 진짜 맛있는 음식인 줄 알았다.
결국 탐식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건강에 나쁜 식습관과 불규칙적인 생활로 역류성 식도염과 위염이 생겼다.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먹지를 못하다니. 세상의 불행은 다 얻은 것처럼 좌절했다. 입맛도 잃었고 건강도 잃었다. 뒤늦게 음식의 중요성을 깨닫고 건강한 먹거리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식물식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자연식물식 집밥을 먹고 있다.
아침에는 과일을 챙긴다. 과일을 끼니로 먹거나 식전 과일로 가볍게 먹기도 한다. 밥은 현미밥과 제철 채소, 생김을 주로 먹는다. 현미와 함께 무, 콩나물, 당근, 완두콩 등 채소나 콩을 푸짐하게 넣어 밥을 지어먹는다. 반찬이 따로 필요 없다. 그 밥을 한술 떠 생김이나 잎채소에 싸 먹는 걸 가장 좋아한다. 간장을 넣어 비벼 먹기도 한다. 간식으로는 고구마를 즐겨 먹는다. 단순한 맛인데 먹을 때마다 놀라운 맛이다. 자극적인 맛에서 벗어나 자연스러운 맛에 익숙해지니 더 다채로운 맛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매일 먹는 음식은 질리지 않아야 한다. 자고로 집밥은 그래야 한다. 요즘 먹는 집밥은 도통 질리는 법이 없다. 1년 내내 먹는 고구마가 질리지가 않는다. 고구마는 왜 이렇게 맛있는 걸까. 아침마다 먹는 과일 한 접시도, 매일 먹는 현미밥도 도무지 질릴 생각을 않는다. 쌀밥만 떠먹어도 맛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맛볼 때마다 감탄을 한다. 어제 먹었는데도 오늘도 내일도 먹고 싶다. 순수한 입맛을 되찾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그래서 오늘도 감사하다. 이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어서, 이 맛을 즐길 수 있어서!
매일 똑같은 음식을 먹는 일상이 지루하지가 않다. '오늘 뭐 먹지? 내일 뭐 먹지?'를 고민할 필요도 없다. 더 이상 새로운 맛을 밖에서 찾지 않는다. 똑같은 음식에도 새로운 맛이 있다. 입맛이 단순해지면 늘 식탁에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예전엔 같은 음식을 먹는 날이 3일에 그쳤다면 요즘은 기본이 일주일, 심지어 한 달 가까이 간다. 주특기가 한층 강화되었다.
그저 제철 음식을 따라갈 뿐. 다음 이맘때를 기약하며 제철 과일과 채소를 떠나보낸다. 아쉬움이 남아야 다가올 계절이 기다려질 테니까. 무더운 여름도 생각나게 하는 마법 같은 일이다. 갈수록 계절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지만, 그 경계를 사수하기라도 하듯 제철의 맛을 고대하고 있다.
진짜 '맛'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