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먹는 게 가장 단순한 사람
침대, 옷장이 없는 방에서 지내고 청소기, 세탁기를 쓰지 않고 청소와 빨래를 한다. 미니멀라이프 3년 차에 접어들어 많은 물건 없이도 잘 지내고 있다. 비움을 통해 물건으로부터 해방감을 느꼈고 기계에 의지하지 않고 내 힘으로 할 수 있게 된 많은 일들은 생활에 대한 자신감까지 길러 주었다.
그러나 내가 비워낸 많은 물건들보다 나를 자유롭게 한 것은 따로 있었으니, 그건 바로 음식이다. 나의 의식주에서 가장 미니멀한 건 단연 식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먹는 음식이 단순하면 생활도 더욱 단순해진다. 나는 지금 불필요한 곁가지를 덜어낸다는 미니멀리즘의 관점에서 간소한 식생활이 주는 가벼움과 자유로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는 먹는 것을 좋아한다. 어려서부터 먹성이 좋았고 언제나 잘 먹었다. 그런데 건강한 음식을 올바른 식습관으로 먹었느냐 하면은 그렇지 않다. 성인이 된 이후 다양한 편의점 음식과 배달 음식에 눈을 떴다. 식후엔 항상 달고 맛있는 디저트를 입에 달고 살았다. 늘 새로운 맛을 쫓았다. 음식을 고르는 기준은 언제나 '맛'이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바쁜 아침 식사는 거르기 일쑤였고, 늦은 저녁 야식을 먹는 게 습관이 되었다. 퇴근하면 지하철에서 배달 앱부터 켜고 저녁 메뉴를 골랐다. 집에 도착하면 바로 먹을 수 있게 딱 맞춘 시간까지 계산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늘 '오늘 뭐 먹지?', '내일 뭐 먹지'가 고민이었고, 음식을 먹지 않을 때는 먹방을 보면서 먹는 생각만 했다. 먹방에서 본 음식들은 다음 날이든 며칠 내로 꼭 먹어야 했고, 새로운 음식들은 나를 쉽게 현혹시켰다.
불규칙한 생활과 식습관은 결국 건강을 해쳤고, 위염과 역류성 식도염으로 고생해야 했다. 그제야 내 몸을 돌보기 시작했다. 나쁜 식습관을 바로잡고 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바람과는 달리 몸이 회복되는 속도는 더뎠다. 어떤 음식도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했고 먹지 못해 살은 계속 빠졌다. 매일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떨어지고 팔다리에 멍이 들었다. 몸을 일으킬 때면 어지러워서 비틀거렸지만 그래도 매일 걷기 운동을 빼먹지 않았다. 음식에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많은 건강 서적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식물식을 만났다.
지금 내 책상에는 사과가 올려져 있고, 거실에는 가지런히 줄 지어선 고구마가 있고, 부엌에는 싱싱한 초록 잎채소가 있다. 나는 더 이상 '오늘 뭐 먹지'를 고민하지 않는다.
평소 자연식물식에 기초한 식사를 한다. 보통 하루에 두 끼를 먹는다. 한 끼는 과일식, 한 끼는 제철 채소와 함께 현미밥이나 고구마를 주식으로 먹는다. 가볍게 먹고 싶을 때는 온전히 과일만 먹는 과일식을 하기도 하기도 하고 간식이 먹고 싶을 땐 제철에 따라 고구마, 감자, 단호박, 옥수수 같은 걸 자유롭게 챙겨 먹는다.
보통의 하루는 이렇다. 전날 씻어 둔 사과 두 알을 아침으로 먹는다. 공복에 먹는 과일은 소화가 빠르기 때문에 오전에 하는 일을 방해하지 않고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점심 또는 저녁으로 현미밥을 먹는다. 밥은 냄비밥을 지어먹고 있다. 전기밥솥이 필요 없다. 반찬으로는 생김과 생채소 혹은 나물, 가끔 국을 곁들인다.
주로 하는 요리는 밥을 하거나 고구마와 콩을 찌거나 채소를 살짝 익히거나 10분 안에 끓이는 된장국 같은 것들이다. 그냥 재료를 적절하게 익히는 수준에만 머무는 요리. 재료를 씻고 냄비에 올려 두기만 하면 완성된다. 나는 그것을 접시에 옮겨 담기만 하면 된다. 많은 양념과 조미료도 필요 없다. 재료 본연의 맛을 가리지 않게 대부분 소금, 간장, 된장, 고추장 중 하나의 조미료만 사용한다. 복잡한 요리는 없다. 부엌에 서서 지지고 볶고 하는 일도 더 이상 없다. 정말 미니멀한 요리다.
이렇게 먹고살면 뭐가 좋을까?
요리만 쉬운 게 아니라 식사 전후의 과정들이 모두 따라서 간소화된다. 일단, 설거지가 쉽다. 요리할 때 기름을 쓰지 않기 때문에 그냥 물로만 씻는다. 팬에 남은 기름과 가스레인지에 튄 기름을 닦을 필요도 없다. 옷에 음식 냄새가 베거나 진한 양념이 묻어서 빨래를 자주 할 일도 없고, 강한 음식 냄새가 나지 않으니 인센스를 피울 일도 없다. 식비 절약은 덤으로 된다. 유기농 쌀, 신선한 제철 과일과 채소를 먹어도 매주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외식을 할 때보다 식비가 덜 든다. 돈과 시간을 절약할 뿐만 아니라 건강하고도 단순한 이 식생활을 미니멀리스트로서 어찌 마다할까.
그렇다면 '맛'을 포기했느냐? 그렇지 않다.
자연식물식을 시작한 이후로 처음 먹어 본 음식이 수도 없이 많다. 새롭게 발견한 맛의 세계는 놀라웠다. 사과, 고구마에도 다른 이름과 맛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제철 과일과 채소를 하나 둘 눈과 입으로 손으로 몸으로 익혀 가기 시작했다.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제철을 맞은 음식과 새로운 음식을 찾아 먹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제철 음식은 식탁을 풍성하게 채웠고, 그 속에서 더하지 않아도 충분한 감각을 배웠다. 매일 먹는 한 끼에서 느끼는 만족감은 이전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행복이다.
나는 '푸드 미니멀리스트'로 산다.
물건을 비우는 것처럼 음식도 비울 수 있다.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면 많은 물건이 있어야만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걸, 적은 물건으로도 충분한 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적은 음식으로도 충분한 식사를 할 수 있다. 진정한 만족은 끝없이 채우는 것에 있지 않다. 단순하고 소박한 식사에도 분명 행복이 있다.
나는 단순한 음식으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찾았고 그 길을 계속 걸어가고 있다. 나의 해방 일지에서 그 자유의 가능성을 확인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