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미니멀라이프
자연식물식을 접하고 '꼭 모든 재료가 있어야만 만들 수 있다'는 요리에 대한 사고방식이 깨졌다. '있는 재료로' 할 수 있는 요리를 만들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이제는 레시피 없이 내 입맛대로 요리한다. 없으면 없는 대로 만드는 게 2년간 외식 없이 오로지 집밥만 먹을 수 있었던 비결이랄까. 매일 먹는 집밥에는 느슨함이 필요하다.
김밥에 단무지는 꼭 들어가야 한다? 아니다. 내 김밥에는 단무지도 햄도 계란도 없다. 불도 쓰지 않고 생채소와 무생채만 넣고 김밥을 둘둘 말아 먹는다. 가끔은 시금치, 당근을 찜기에 올려 살짝 익힌 다음 한 김 식혀 김밥을 싸기도 한다. 넣을 채소가 없으면 없는 대로 한두 가지 채소만 넣는다. 밥이 없으면 고구마로 고구마 김밥을 만들어 먹는다. '있는 대로 김밥'이다.
나물을 할 때도 간단하다. 깨끗이 씻은 나물을 채반이 있는 냄비에 올려 가볍게 찐 다음 소금 또는 간장으로 조물조물 무쳐 간을 한다. 조금 더 고소한 맛을 느끼고 싶다면 참깨를 솔솔 뿌린다. 마늘, 참기름, 고춧가루, 젓갈 등 갖은양념을 더하지 않아도 나물 본연의 맛과 향으로 충분하다. 무를 잘게 채 썰어 물, 소금만 넣고 뭉근하게 끓이면 달큼하고 시원한 무나물. 찜기에 곰취를 올려 5~10분 찐 다음 건져서 소금 간을 하면 향긋한 취나물이 완성된다.
특별한 요리를 할 때도 조미료나 재료를 따로 구매하지 않는다. 떡볶이는 간장 떡볶이에는 간장만 넣고, 고추장 떡볶이에는 고추장만 넣는다. 대신 채소를 듬뿍 넣는다. 양파가 없으면 양배추를, 양배추가 없으면 무말랭이나 콩나물을. 채소도 그때그때 있는 재료를 활용한다. 다시마와 한두 가지 채소로 충분한 맛이 우러나온다. 미역국도 쌀뜨물에 미역과 간장만 넣고 끓인다. 김치를 담글 때도 마찬가지. 소금이 기본이다. 단맛은 사과나 배 같은 과일로, 색감은 고춧가루로 더한다.
있는 재료로 요리한다는 원칙은 냉장고 비우기에도 탁월한 방법이다. 식재료가 떨어지기 전까지는 장을 보러 가지 않는다. 더 이상 털어먹을 수 없을 때까지. 혹시 냉장고에 상하기 직전의 채소가 남아 있거든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밥을 할 때 같이 넣고 지어 보자. 영양도 좋고 간편한 한 끼 식사가 된다. 재료는 역시 넣는 사람 마음이다. 채소밥에 김을 싸 먹거나 간장이나 고추장을 비벼 먹거나 김치를 곁들여 먹으면 그만이다. 부러 다른 반찬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
냉파(냉장고 파먹기) 요리의 끝판왕은 바로 맨 밥에 김. 가끔 맨 밥에 김을 싸 먹곤 하는데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매 끼니 이것저것 차릴 필요가 없음을 느끼는 순간. 이따금씩 이렇게 대충, 그러나 몸에 해로운 음식은 배제한 식사를 즐긴다. 몸도 가벼워진다. 덩달아 음식의 참맛도 알게 되니 음식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절로 솟아난다. 한 번 맛보고 반한 '그냥 김밥'은 이제 든든한 집밥 메뉴로 자리매김했다. 생김 한 장을 펴 밥을 넣고 말아 통으로 들고 간장을 살짝 찍어 먹으면, '역시, 단순할수록 맛있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요리에는 정해진 룰이라는 건 없다. 요리 다운 요리라는 것도 없다. 비빔밥에 들어가는 나물 가짓수가 많을 필요도 없고, 김밥의 색깔이 알록달록 예쁠 필요도 없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곤 하지만, 무엇이든 과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기본에 충실한다면 보기에도 먹기에도 좋은 음식이다. 요리라는 건 입맛에 잘 맞고 하루의 기운을 가져다주는 것이면 충분하다.
요리를 할 때마다 챙길 것이 많다면 시작부터 하기 전에 진을 빼기 십상이다. 요리도 편하게 하자. 요리가 복잡해진다고 해서 더 많은 정성이 들어가는 건 아니니. 단출한 식탁에도 나를 위한 정성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다. 새로운 식재료로 냉장고를 채우기 전에 먼저 있는 재료도 다시 보자. 누가 아는가? 당신의 손에서 기가 막힌 새로운 레시피가 탄생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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