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 만두, 냉동 피자, 냉동 치킨, 후식으로 아이스크림, 케이크, 떡까지 갖은 냉동식품을 즐겨 먹었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면 냉동식품을 구입하여 냉동실을 가득 채우곤 했다. 대파를 총총 썰어서 소분하여 얼리면 꺼내어 먹기 편했다. 냉동 떡갈비, 김말이를 꺼내어 에어프라이어에 넣고 돌려서 간편하게 밥상을 차렸다. 분명 그런 때가 있었다.
지금은 냉동실을 쓰지 않는다. 아이스크림을 비롯한 모든 가공식품을 먹지 않고 찬 얼음까지 먹지 않으니 냉동실이 필요가 없어졌다. 삶은 옥수수, 단호박, 고구마를 냉동해 놓고 먹지도 않는다. 여름에 먹을 수 있는 옥수수와 단호박은 제철에 충분히 즐기고, 고구마는 바로바로 쪄 먹는다. 한 철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부러 사계절 내내 먹겠다고 욕심부리지 않는다. 아쉬움은 다음 계절을 위해 남겨두어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으니까. 한번 냉장고에 들어갔다 나온 옥수수는 갓 삶은 옥수수의 맛에 비할 바 없다. 냉동 보관을 위해 사용되는 지퍼백, 일회용 비닐 쓰레기도 발생하지 않으니 좋은 일이다.
밥과 반찬은 냉장 보관만 해도 충분하다. 매일 집밥을 먹지만 밥이 아닌 반찬을 미리 만들어 두는 경우는 드물다. 반찬을 만들더라도 그때그때 요리하여 바로 먹거나 채소 절임도 오래 보관하지 않고 며칠 내로 소진한다. 그러니 음식이 상할까 봐 냉동실로 옮길 일도 없다. 음식은 신선할 때 먹자는 주의다. 물론 어디까지나 나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다.
가족들과 살고 있다. 내가 쓰는 냉장실 칸을 제외하고는 우리 집 냉장고는 변함이 없다. 냉동실을 가끔 열어 보면 대체 무엇이 들어 있는지, 언제 넣었는지,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장을 보지 않고도 온 가족이 한 달은 족히 먹을 수 있을 만한 식량이 있음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음식들로 채워진다. 냉동실은 연중무휴 만원 상태. 장을 보고 냉동실에 음식을 채워 넣을 때면 매번 자리가 부족하여 원하는 만큼 구입하질 못했다. 냉장고가 포화 상태인 건 비단 한 가정만의 사정은 아닐 터다.
과연 냉동 보관해 가면서까지 꼭 먹어야 할 음식이 있을까? 우리는 음식을 냉장고에 보관하면 신선도가 유지될 거라고 믿는다. 냉장고를 지나치게 과신하는 경향이 있다. 일단 넣고 본다. 일단 채우고 본다. 우리가 매일 하는 일이다. 냉장고를 채우지 못해 안달 난 사람들처럼. 사람 인심은 곳간에서 나온다는 말 때문인지 끊임없이 채우기 바쁘다. 때문에 냉장고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음식들이 상하고 썩어가는 일이 부지기수다. "가족들의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냉장고부터 점검하라"는 말이 떠오른다. 냉장고 안을 들여다보면 그 집 사람들의 식습관부터 생활 습관을 대략 짐작할 수 있다.
가공식품을 줄이고 건강한 식단을 챙기는 사람들도 바쁜 아침과 저녁에 꺼내어 먹기 좋게 음식을 소분하여 냉동 보관한다. 부족한 시간을 쪼개어 쓰기 위해 음식도 미리 나누어 보관한다. 무어 그리 바쁘다고 부지런할까? 자기 몸에 들어가는 음식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 우리는, 나는 왜 그렇게 바쁜 척을 하고 살았을까?
지난날을 돌아보며 지금 냉장고에 무엇이 들어 있나 떠올려 본다. 현미, 간장, 들깨. 단번에 파악이 된다. 장을 보면 과일과 채소로 채워졌다가도 이내 텅 비워지는 냉장고. 최근 몇 달 새에는 들어가는 것이 몇 가지 없었다. 아무래도 냉장고를 비울 때가 된 것 같다. 월세 세입자가 방을 빼듯이 나와야겠다. 가진 짐도 몇 개 없으니 이사하느라 수고할 일은 없을 것이다.
냉동실은 '언젠가'를 위해 존재한다. 지금 당장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이 아니라 나중을 위해 보존제가 들어가고, 꽁꽁 비닐로 포장되어 음식은 질식되어 버린다. 그런 음식을 꺼내어 먹으며 우리는 그 음식이 여전히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 죽은 음식을 먹으면서.
없이 살기 시리즈 60. 냉동식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