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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May 13. 2023

맥시멀 가족과 살면서 혼자 미니멀하기


가족들과 살면서 혼자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기란 어렵다. 특히 가족들이 정반대의 생활을 하고 있다면. 흔히 물건을 버리냐 마느냐와 정리를 하느냐 마느냐로 실랑이를 한다. 한쪽은 물건을 쌓아두는 게 못마땅하고 한쪽은 물건을 버리는 게 못마땅해서 갈등은 더욱 커진다. 이건 서로를 원하는 방식으로 바꾸려고 해서 생기는 일이다.




나에게도 그런 어려움이 잠깐 있었다. 한창 물건을 비우고 버리는 일에 빠져있을 때의 일이다. 내가 가장 먼저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한 건 '옷'이었다. 이사 전에 많은 옷을 정리했다. 나는 그전까지 정리정돈이란 걸 몰랐고, 옷장에는 늘 옷이 가득했다. 어릴 때 엄마가 어디선가 얻어 온 옷들, 성인이 되어 내가 산 옷들, 심지어 초등학생 때 입던 옷까지 그대로 있었다. 오래된 옷들은 거의 입지 않고 몇 년 동안 그대로 옷장에만 박혀 있던 신세였다. 불편한 옷, 안 입는 옷, 낡은 옷을 모두 과감하게 버리기로 했다. 


며칠 내내 옷을 한가득씩 날라 헌 옷 수거함에 넣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는 결국 한 소리를 했다. 상처가 되는 말이었다. 그건 당신께도 상처였을 텐데. '엄마,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초등학생 때 입던 옷을 다 큰 성인이 되어서야 버리겠다는데 그렇게 잘못한 일인가? 옷을 버리는 데 왜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 걸까?' 화가 났다. 엄마는 낡은 옷들에 무엇을 이입한 걸까.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기도 싫었다. 생채기 난 마음이 더 아팠으니까.


나는 그때 알았다. 더 이상 엄마와 물건으로 씨름하지 않아야겠다고. 이런 소모적인 일이야말로 필요 없다고. 그래서 물건을 버리거나 정리할 때는 혼자 조용히 처리한다. 그리고 가족들과 살면서 내가 지키려고 하는 것들이 있다. 첫 째는 가족들의 물건은 절대 손대지 않기, 둘 째는 잔소리하거나 참견하지 않기, 셋 째는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2년 전 이사를 올 때 내가 책상, 전신 거울, 컴퓨터와 몇 개의 박스만 들고 온 것에 비해 가족들의 짐은 이삿짐 트럭에 한가득이었다. 끊임없이 집 안으로 밀려드는 짐들.. 부모님은 새 집으로 가서 정리한다며 있던 짐을 거의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들고 오셨다. 그 짐들은 거실과 방 곳곳에 쌓여 한참이나 방치되어 있었다. 나의 불편한 마음과 함께.


지금 집에는 창고가 두 개나 있다. 처음엔 집 안 가득 쌓여 있는 물건들에 넌더리가 났다. 많은 짐을 보관하기 위해 손수 선반을 만드시는 걸 보고 머리가 아팠다. 대체 무슨 짐인지, 저게 다 필요한 것들인지, 뭘 저렇게 많이 이고 지고 사는지 불손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지금도 그 물건들을 보면 그런 의문이 가시진 않지만,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그건 내 몫도 아니고 내 짐이 아니니까.



새집으로 이사 왔지만 변함없는 우리 집.
그 속에 바뀐 건 나였다.



이제는 애써 다른 사람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누군가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사람을 바꾸는 건 다름 아닌 바로 '자신'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배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은 늘 어렵다. 그래서 항상 연습한다. 나도, 사랑하는 사람도, 물건도, 음식도, 세상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가족들과 따로 산다고 해서 반드시 모든 갈등이 해결되리라는 법은 없다. 가족들과 영영 안 보고 살 게 아니라면 말이다. 무엇보다 겨우 물건 때문에 가족들과 틀어진다면 슬픈 일이다. 나는 더 이상 가족들을 바꾸려고 하지 않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길 바라지 않고, 나와 같은 생활을 하길 바라지 않는다. 나는 나대로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각자의 라이프가 있는 거니까. 내가 단순한 생활을 소중히 하는 것처럼 가족들의 맥시멀 라이프도 존중하려고 한다.






어쩌면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한 건,


집 안에 쌓여 있는 물건들보다

나중에 그것들이 내 짐이 될 거라는 얼룩진 마음이었고,


정돈되지 않은 거실과 주방보다

가족을 미워하는 못난 나를

스스로 채찍질하는 마음이었을지 모른다.


이제는 그 마음도 비운다. 가끔씩 차오르는 마음이지만 이것도 계속 비워낸다. 비우다 보면 정말 비울 수 있지 않을까. 그동안 버리지 못했던 물건들을 비워낸 것처럼. 이 마음도 온전한 내 것이 아닐 테니, 불편한 마음도 훌훌 털어버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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