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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May 11. 2023

비염이 사라졌다


코흘리개 시절. 나는 매일 코를 훌쩍이고 다녔다. 수업 중에 친구들 앞에서 콧물로 콧방울을 불었던 창피한 기억이 있다. 그때 많이 부끄러웠는지 나를 보던 친구의 눈과 웃음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 작은 손에는 휴지가 없었다. 보살핌이 조금은 부족했을지 모른다. 일종의 방치 속에 나는 그게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수업 중엔 항상 집중하지 못했고 늘 재채기를 달고 살았고 환절기마다 감기도 쉽게 걸렸다. 잠자리가 달라지면 어김없이 다음날 예민한 코가 말썽이었다. 나의 컨디션은 늘 '코'가 좌우했다.




늘 티슈를 옆에 끼고 살았다. 티슈가 없으면 불안했다. 밥을 먹을 때는 항상 코를 닦아야 했다. 특히 뜨겁거나 매운 음식을 먹으면 어김없이 콧물이 줄줄 흘렀다. 라면을 먹을 땐 항상 휴지가 대기하고 있어야 했고 라면을 다 먹고 난 자리엔 휴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그래서 밖에서는 라면을 잘 먹지 않았다. 코를 심하게 풀어야 했으니까.


가족이나 친구들과 같이 밥을 먹을 때는 괜찮았지만 중요한 식사 자리에서는 되도록 자극적인 음식을 피했다. 특히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첫 식사 자리라면 더더욱. 예전에 호감을 가지고 있던 사람과 처음 먹었던 팟타이가 생각난다. 그동안 먹어 온 팟타이는 맵지 않아서 아무 걱정 없이 골랐다가 혼쭐이 났다. 하필 그날의 팟타이는 매웠고 나는 그의 앞에서 연신 코를 훌쩍였다. 다행히 그 사람은 개의치 않은 듯했지만 나는 계속해서 코를 닦는 손이 민망했다.




내가 빨간 음식을 먹으면 콧물이 나온다는 걸 확실하게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추측만 할 뿐, 아니 알고 있지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거라고 생각한다. 만약 사실이라면 어려서부터 먹어온 음식들을 부정해야만 하고 무엇보다 좋아하는 음식들을 못 먹게 되니까. 나는 자극적인 맛을 포기할 수 없었고 비염이라는 불편함을 감내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게 얼마나 미련한 것인지도 모른 채. 여전히 고춧가루를 먹으면 콧물이 나온다. 그래서 빨간 음식은 가끔 먹고 있지만 이전만큼 즐겨 먹지는 않는다.


먹는 음식을 바꿨다. 비염이 계기였던 것은 아니지만 건강이 나빠져 식습관을 바꿔야만 했다. 가공음식을 피하고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챙겨 먹고 매일 깨끗하게 방을 청소했다. 음식을 바꾸고 몸을 살피기 시작하면서 어느 순간 비염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걸 알게 됐다. 뜻밖의 선물이었다. 평생을 달고 살았던 비염에서의 탈출이라니. 바라지도 않았고 가능한 일인지도 몰랐는데 말이다.







지금은 매번 돌아오는 계절이 무섭지 않다. 정말 그동안 고통받은 게 무색할 만큼 이제는 태연하다. 가끔 뜨겁고 매운 음식을 먹거나 추울 때 콧물이 나오지만 그때뿐. 더는 봄이 온다고 해서 겨울이 온다고 해서 계절에 방어적 태세를 갖출 필요가 없다.



이제는 온 마음으로 새 계절을 맞는다.

지긋지긋하던 봄도 사라졌고 완연한 봄만이 있다.

나를 괴롭게 했던 것들이 사라지고 꽃이 피었다.





이제는 손수건 한 장만 있으면 되는 일상의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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