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결 May 08. 2023

흰쌀밥과 미역국

미니멀 식사 일기


오늘 아침은 밥과 미역국이다. 보리가 섞인 백미 밥과 쌀뜨물에 간장만 넣어 끓인 미역국. 다른 반찬은 없다. 장을 볼 때가 되었지만 있는 대로 먹기로 한다. 장을 보지 않아도 찾아보면 분명 먹을 만한 게 숨어 있다. 웬만해선 먹을 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갓 지은 밥과 뜨끈한 미역국. 차린 게 없어도 맛있을 때가 있다. 오늘처럼. 오늘따라 유독 ‘밥맛’이 좋다. 그동안 현미보다 백미는 맛이 없다고 타박했었는데 어찌 된 일일까. 오늘 밥은 왜 이렇게 맛있는 걸까.


현미밥만 고집했던 게 무안해서 괜히 뽀얀 쌀을 한술 떠 입에 넣는다. 밥 따로 국 따로. 밥을 한 숟갈 크게 떠서 입에 넣고 오물조물 씹으니 쌀의 고소하고 달큼한 맛이 한 입 가득하다. 중간중간 존재감을 드러내며 한 알 한 알 톡톡 터지는 보리까지.


흰쌀밥이 부드러워서 덜 씹고 덜 음미했기에 이 맛을 몰랐구나. 며칠 먹은 식사 중에 가장 맛있었다고 하면 과장이려나. 밥만큼은 단연 으뜸이다. 가끔 맛있을 때 휘젓곤 하는 팔을 잠시 들었다 내렸다. 흰쌀밥도 ‘밥만 먹어도 맛있을 수 있구나.’


예능 프로그램 <아빠! 어디가?>에서 준수라는 아이가 밥솥을 끌어안고 작은 손으로 맛있게 밥을 퍼먹던 모습이 떠오른다. 마치 어린아이의 입맛처럼 순수해진 것 같아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 나도 한때는 순수한 입맛이었지.’ 새로운 맛이 아닌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내 안의 감각을 꺼낸다.


평소처럼 현미밥도 아니고 싱싱한 잎채소도 없고 아삭한 무 절임도 없는데 왜 이리 맛있는지. 있는 그대로 차린 단출한 밥상이 가져다준 만족. 역시 음식은 가장 단순할 때 그 맛을 즐길 수 있다. 더 없는 풍족함을 배운 식사였다. 오늘도 생활의 기본인 식사에서 ‘더하지 않아도 충분한’ 감각을 익혀 간다. 우연히 찾아온 한 끼에 감사를 더한다.





설거지하듯 깨끗이 비운 두 그릇. 웬만해선 음식을 남기는 법이 없다. 조금씩 장을 보고, 다 먹을 수 있을 만큼만 준비하고, 차린 밥상에 대해선 책임지고 먹는다. 혹여 남은 음식이 생기더라도 다음 끼니에 해결하면 그만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