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식사 일기
오늘 아침은 밥과 미역국이다. 보리가 섞인 백미 밥과 쌀뜨물에 간장만 넣어 끓인 미역국. 다른 반찬은 없다. 장을 볼 때가 되었지만 있는 대로 먹기로 한다. 장을 보지 않아도 찾아보면 분명 먹을 만한 게 숨어 있다. 웬만해선 먹을 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갓 지은 밥과 뜨끈한 미역국. 차린 게 없어도 맛있을 때가 있다. 오늘처럼. 오늘따라 유독 ‘밥맛’이 좋다. 그동안 현미보다 백미는 맛이 없다고 타박했었는데 어찌 된 일일까. 오늘 밥은 왜 이렇게 맛있는 걸까.
현미밥만 고집했던 게 무안해서 괜히 뽀얀 쌀을 한술 떠 입에 넣는다. 밥 따로 국 따로. 밥을 한 숟갈 크게 떠서 입에 넣고 오물조물 씹으니 쌀의 고소하고 달큼한 맛이 한 입 가득하다. 중간중간 존재감을 드러내며 한 알 한 알 톡톡 터지는 보리까지.
흰쌀밥이 부드러워서 덜 씹고 덜 음미했기에 이 맛을 몰랐구나. 며칠 먹은 식사 중에 가장 맛있었다고 하면 과장이려나. 밥만큼은 단연 으뜸이다. 가끔 맛있을 때 휘젓곤 하는 팔을 잠시 들었다 내렸다. 흰쌀밥도 ‘밥만 먹어도 맛있을 수 있구나.’
예능 프로그램 <아빠! 어디가?>에서 준수라는 아이가 밥솥을 끌어안고 작은 손으로 맛있게 밥을 퍼먹던 모습이 떠오른다. 마치 어린아이의 입맛처럼 순수해진 것 같아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 나도 한때는 순수한 입맛이었지.’ 새로운 맛이 아닌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내 안의 감각을 꺼낸다.
평소처럼 현미밥도 아니고 싱싱한 잎채소도 없고 아삭한 무 절임도 없는데 왜 이리 맛있는지. 있는 그대로 차린 단출한 밥상이 가져다준 만족. 역시 음식은 가장 단순할 때 그 맛을 즐길 수 있다. 더 없는 풍족함을 배운 식사였다. 오늘도 생활의 기본인 식사에서 ‘더하지 않아도 충분한’ 감각을 익혀 간다. 우연히 찾아온 한 끼에 감사를 더한다.
설거지하듯 깨끗이 비운 두 그릇. 웬만해선 음식을 남기는 법이 없다. 조금씩 장을 보고, 다 먹을 수 있을 만큼만 준비하고, 차린 밥상에 대해선 책임지고 먹는다. 혹여 남은 음식이 생기더라도 다음 끼니에 해결하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