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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Nov 15. 2023

매일 설거지하는 히키코모리


나는 매일 설거지하는 히키코모리다. 밥을 먹고 바로 설거지를 한다. 식사와 설거지는 한 세트다. 먹자마자 엉덩이를 떼고 주방으로 향한다. 꾸물댈 시간이 없다. 주저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저 몸을 일으킨다. 몸에 밴 습관이다.


매일 같이 집밥을 먹을 수 있는 이유도 설거지가 간편하기 때문이다. 물로만 씻는다. 설거지를 대충 하는 게 아니다. 나는 기름을 먹지 않는 채식을 하고 있다. 따라서 강한 세제를 쓸 필요가 없다. 수세미로 꼼꼼히 닦기만 하면 된다. 내가 쓰는 수저와 식기는 따로 있다. 그러니 가족과 함께 생활해도 위생상 문제가 되지도 않는다.


우리 집은 설거지를 몰아서 했다. 그래서 매번 설거지 전쟁을 치렀다. 한번 설거지를 하고 나면 진이 빠졌다. 쌓인 설거지는 그야말로 '일'이 된다. 쌓여 있는 만큼 귀찮은 일이 된다. '치워야 한다'는 생각에서부터 피곤해진다. 쌓아 두지 말 것. 바로 할 것. 나중의 나를 위해 먹고 바로 치울 것. 새로운 습관을 들였다.


습관을 바꾸기 위해 처음에는 라면처럼 바로 먹어야 하는 음식이 아니라면 먼저 치우고 먹었다. 뜨거운 음식이 먹기 좋은 온도로 식을 동안 요리하는 데 사용한 프라이팬, 도마, 식칼 등을 미리 설거지했다. 식사 후 그릇과 수저만 치웠다. 한 번에 하는 것보다 조금씩 하니 더 수월했다. 그리고 가족들의 설거지도 도맡아 했다. 설거지가 쌓여 있으면 밥을 먹기 전 설거지부터 했다. 싱크대 물기까지 깔끔하게 닦고 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이제 설거지를 바로 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미루는 게 편한 게 아니라 불편하다.


식사 후 설거지를 바로 하는 것이 습관이 되려면 '먹는다'와 '치운다'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 마치 '치우지 않을 자 먹지도 마라' 주문을 외운 것처럼 당연하게 숨 쉬듯 해야 한다. 물론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고 귀찮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루가 며칠이 되고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된다. 그렇게 습관이 된다. 습관으로 만들면 일도 아니다. 그냥 몸이 자동으로 움직인다. 생각하기 전에 이미 몸이 하고 있다.


누구든 할 수 있다. 혼자 살아도 가족과 살아도 설거지를 미루는 사람과 함께 살아도 전혀 제약이 되지 않는다. 내가 하면 된다. 나부터 하면 된다. 내가 변화하는 데에는 어떤 환경도 가로막지 못한다.


습관이 달라지고 나는 설거지를 귀찮게 여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자연식물식을 시작한 뒤로는 설거지가 한결 더 수월해졌다. 설거지를 하고 물기까지 닦아 그릇을 선반에 넣기까지 3분이면 충분하다. 과일이나 고구마를 먹을 때는 30초도 안 걸린다.


기름진 음식을 먹어도 한 끼 식사 설거짓거리는 많지 않을 것이다. 미루지 않고 쌓아두지 않는다면 전혀 번거로울 일이 아니다. 나를 위해 미루지 말자. 설거지를 보며 스트레스를 받게 두지 말자. 언젠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지금 당장 하자. 일을 만들지 말고 바로 하자. 밥을 먹고 개운한 마음으로 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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