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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의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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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Jun 08. 2023

만족의 그릇을 안다는 것


어느 누구도 내게 적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법을 가르쳐 주는 이가 없었다. 무소유라는 말을 들어보기만 했을 뿐. 그런 것은 도를 닦는 스님들이나 하는 것이라 여겼다. 종교도 없고 이룰 뜻도 없는 나는 욕심만 가득하여 소유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돈은 많이 벌수록 좋고, 좋은 것은 많이 가질수록 좋은 것인 줄 알았다. 행복의 조건은 부에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되려고 노력했으며 그런 꿈을 꿨다.


나는 만족을 몰랐다. 정확히는 만족의 기준을 몰랐다. 내가 얼마큼 일을 해야, 얼마나 많은 물건을 가져야, 얼마나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지내야 만족하는지를 몰랐다. 만족을 얻는 방법도 몰랐다. 그저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많은 사람들이 가는 대로 따랐다. 그 길을 가다 보면 내가 원하는 만족도 찾을 수 있으리라.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그곳엔 그토록 원했던 충만함도 없었고 나도 없었다. 끝없는 갈망과 공허함만이 나를 채웠다.




그리고 삶에서 잠시 멈춰 가야 하는 시기가 찾아왔을 때 미니멀라이프를 만났다. 우연히 혹은 마치 필요했던 것처럼 그렇게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것 같다. 필요한 것만 가지고 살아가는 미니멀라이프는 말 그대로 신세계였다. 적게 가진 것으로도 만족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과 적은 것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동안 내가 행복에 대해 알고 있던 사실과는 너무도 다른 것이었다. 그동안 가지고 살아온 사고방식을 뿌리째 흔드는 충격이었다. 책에서 본 미니멀라이프는 이전에는 생각도 못 했던, 꿈꿀 수도 없었던 새로운 삶의 가능성의 발견이었다.


'아,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이렇게 살아가면 되겠구나'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미니멀리즘은 세상의 모든 것이 짐으로 느껴졌을 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줬다. 단순한 삶의 방식을 몰랐다면 나는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갔을 것이고, 많은 것을 가지고도 계속해서 더 많은 것을 가지길 바라고, 끝이 없는 것만을 쫓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가지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을지 모른다.


필요한 것만 가지니 만족을 알 수 있었고, 진정한 만족은 채움에 있지 않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드나듦의 균형을 익히며 비움으로 얻는 행복을 배우고 진정으로 나를 채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만족이란 세상의 기준이 아닌 내 안에서 자라나는 씨앗이었다. 내 만족의 크기는 나의 생각에 미치지 못할 만큼 아주 작은 것이었다. 매일 나를 웃음 짓게 하는 일은 대개 사소한 것들이었다. 그 티끌이 모여 나의 일상을 채우고 있었다.




어느덧 나는 사과 두 개, 고구마 두 개, 쌀밥 한 그릇과 마른 김, 깨끗한 물 한 잔이면 충분한 사람이 되었다. 내가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그릇은 실로 소담했다. 그 크기는 더욱 작아졌으나 나는 어느 때보다 삶을 누리고 있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가지려고 애썼을까. 내 행복이 이리도 가까이에 있음을, 너무도 쉽게 쥘 수 있는 것임을 왜 몰랐을까. 이미 내 손에 쥔 그릇을 왜 보지 못하였을까. 지난날의 나에게 미안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비로소 마주한 진실에 감사한 오늘이다.


행복은 멀리 있다고 믿었다. 행복은 노력으로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진짜 행복은 더욱 커다랗고 나를 꽉 채우다 못해 흘러넘치는 존재일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행복이란 너무나 사소하며 때론 찰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때로 보잘것없음에도 행복이 피어남을 보게 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행복마저 모두 잃고 나서야 나는 깨닫게 된 것이다. 더는 행복과 만족의 기준을 밖에서 찾지 않는다. 내 그릇 밖의 것을 탐내지 않는다. 이미 나는 충분하게 가졌으며 만족을 알고 있다. 애써 채우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감각은 오롯이 나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이자, 삶을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만드는 용기이다.


매일 깨끗한 물과 신선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깨끗한 물로 몸을 씻을 수 있고, 이 한 몸 누일 수 있는 작은방이 있으면, 나는 더는 부러울 게 없다. 자기만족을 아는 자는 인생이 두렵지 않다. 만족의 그릇을 안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이것이 내가 목격한 진정한 행복이었다.




이제는 비우는 삶에서 나아가 나누는 삶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의 경험을 언어로 옮김으로써 지난 시간 내가 배운 것들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사소함에도 가치가 있으며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충분한 인생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다. 이 작은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닿아 새로운 가능성의 씨앗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비워낸 자리에 세상에 대한 따듯한 온기가 자라났다. 비웠더니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더 나은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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