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것에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혹자는 무모하거나 혹은 대단하거나 혹은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우리는 타인이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 그가 그것을 포기하거나 놓친 것으로 간주하는 오류를 쉽게 범하곤 한다. 아마 그 일들이 자신이라면 당장 하기 힘든 일이거나 자신의 삶에 대입했을 때 포기해야 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가진 것을 내려놓는다는 건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내가 충분한 만족을 얻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명백한 진실이라 해도 그 오해는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는다. 애써 내 행복에 대해 설명하고 싶지는 않으나, 매번 받는 시선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을까 하여, 그보다는 서로의 마음을 조금은 가볍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뜻에서 혼자만 간직하고 있던 글을 내놓는다. 세상의 다름을 모두 이해할 필요는 없으나 마찬가지로 오해를 안고 살아갈 필요도 없다. 이 글이 내 생활의 근본을 이해하는 데 부족함이 없길 바란다.
없이 살면 부족하지 않느냐고?
아니 감사하다. 내 몸이 건강하여 손수 빨래를 할 수 있다는 사실, 내 손이 멀쩡하여 밥을 지어먹을 수 있다는 사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매일 식탁에서 마주하는 생명들에 감사하다. 매일 깨끗이 씻을 수 있는 물이 있어 감사하고 이 한 몸 누일 수 있는 방이 있어 감사하다. 더없이 감사한 삶을 살고 있는데 어찌 부족함을 느낄까. 그럴 새가 없다. 누린 것을 즐기기에도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나의 하루는 그만큼의 것들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래서 자발적으로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다.
유복한 가정은 아니었으나 부족함 없이 자랐다. 나는 넘쳐나는 사랑을 받고 자랐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걸 가슴으로 알기까지 여전히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뿐. 모자람은 없었다. 어려서부터 친구들과 똑같은 것을 가지고 똑같은 것을 할 수 있는 그런 평범함이었다.
나는 가난을 모른다.
삶을 할퀴고 사람을 처참하게 만드는 가난. 우리를 옥죄는 가난은 돈이 아닌 마음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쉽게 부수는 가난을. 나는 가난을 모르고 자랐다. 풍족한 시대에 태어나 평범함을 누리고 살아왔다. 그래서 이렇게 내 발로 내 손으로 많은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나이가 지긋한 어른들이 겪었던 가난을 나는 모른다. 책으로만 배운, 말로만 전해 들었던 가난에 감히 공감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이 왜 그리 모자람에 목을 매고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이 그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면서도 말이다.
과연 가난을 모르는 내가 빈손을 가질 수 있을까? 빈손이 될 수 있을까? 이것도 허울에 지나지 않을까? 경계한다. 그래야만 한다. 일말의 당위성이라도 챙기려면. 그러나 나의 자발적 내려놓음은 그런 당위성도 필요치 않을 만큼 너무도 정당한 것이 아닌가. 그것은 우리가 태초에 생을 부여받음과 동시에 가지고 온 빈손에 있다.
우리는 빈손으로 태어났다. 사람이 쥐고 태어난 수저의 빛깔을 떠드는 자들의 입에 나는 동조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가지고 태어난 자는 없다. 그리고 다시 빈손으로 돌아간다. 어느 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 나는 살면서 많은 것들을 내려놓음으로써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을 미리 준비할 뿐이다. 우리가 이곳에 왔던 것처럼.
나는 죽음을 삶과 떼어놓고 이야기하는 어리석음을 싫어한다. 그는 삶을 모른다. 죽음 없는 삶이란 없다. 죽음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다. 그것을 알고 살아가는 것과 모르고 살아가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삶과 죽음이 함께한다는 것을 알면, 죽음을 마주 보면 오늘의 감사함을 안다.
감사를 아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생에 누릴 수 있는 최대의 사치다.
나는 죽음을 바로 보길 원한다. 죽음으로 잃어버린 것들만 보지 않고 죽음을 마주할 수 있기를 원한다. 그것은 멀지 않다. 그것을 깨닫는다면 죽음이 두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죽음이 두려우나 산다는 것. 그게 곧 삶이자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감을 증명하는 유일한 사실이다. 그것을 알기에 빈손이 되려고 한다. 나로 살기 위해 내려놓고자 한다. 그래서 없이 사는 것이다.
빈손이 되어 돌아가려는 것이다.
이 땅에 빛으로 온 순간처럼.
이것이 내가 빚을 지고 살아가는 세상에 잠시나마 아름답게 머물 수 있는 방식으로 선택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