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졸업한 립밤. 입술에는 아무것도 안 바른다. 립밤은 오래전부터 사용하지 않은 물건이다. 어떻게 보면 가장 먼저 비운 화장품이 아닐까 싶다. 이건 미니멀라이프를 알기 전의 일이다.
무슨 성분 때문인지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으나, 립밤을 쓰면 입술 주변(턱 밑)에 피부 트러블이 생겼다. 립밤을 바르고 나면 매번 가려운 느낌이 들었다. 특히 립밤의 유분감은 몹시 불편했다. 한동안은 그걸 무시하고 립밤을 사용하기도 했다. 유명 브랜드의 제품, 사람들이 많이 추천하는 제품, 성분이 안전하다는 제품을 이것저것 사용해 봤지만 모두 똑같았다. 비교적 순하고 향이 없는 제품을 오래 썼으나 그마저도 맞지 않았다. 그래서 립밤을 쓰는 횟수가 차츰 줄어들었다. 립밤을 수시로 바르기보다는 화장을 하기 전이나 건조할 때만 겨우 바르는 정도였다.
립밤 대신 꿀을 발라 보기도 했지만 별로였다. 이후 몇 년간 바세린을 사용했다. 역시나 화장 전에 잠시 발랐다가 닦아내고 그 위에 립 제품을 발랐다. 입술에 틴트나 립스틱을 바르려면 기초공사를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쓰는 격이었다. 바세린이라고 괜찮은 건 아니었고 마찬가지로 가려웠다. 오래되어서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시중에 입술 전용으로 나오는 보습 제품들이 내게 안 맞는 것 같았다. 내게 맞는 립밤을 찾지 못했고 결국 안 쓰게 되었다. 지금은 립밤뿐만 아니라 립스틱, 틴트도 사용하지 않는다.
겨울에 가끔 너무 건조하다 싶으면 수분크림을 가볍게 톡톡 바르기도 했다. 립밤보다는 얼굴 피부에 맞는 수분크림을 바르는 쪽이 훨씬 나았다. 입술은 민감한 부위라 꼭 전용 제품을 써야 된다는 얘기가 있는데, 임시방편으로 소량 사용해도 별문제는 없었다.
입술 각질 관리법
립밤을 바르지 않아도 입술 각질은 관리하고 있다. 사실 관리라고 하기도 민망할 만큼 10초면 끝나는 일이다. 매일 양치 후에 바로 입술 각질을 제거한다. 스크럽 같은 건 필요 없다. 손가락만 있으면 된다. 물을 닦지 않은 상태에서(중요) 손가락을 펴서 입술 위에 나란히 놓고 가로로 슥슥 문지르면 각질이 벗겨진다. 살살 문질러야 한다. 가볍게 몇 번 문지르면 끝.
이렇게 각질을 제때 제거해 주기만 하면 입술이 트거나 갈라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각질이 쌓여서 굳게 되면 그 상태에서 입술이 갈라지고 찢어지게 된다. 하루라도 거르지 않는 게 포인트. 매일 이렇게만 해 줘도 전혀 문제가 없다. 입술 각질은 수년째 이렇게 관리해 왔다.
입술을 건조하지 않게 유지하려면 보습 제품을 챙기는 것보다 수분 보충을 잘해 주는 게 더 중요하다. 평소에 입이 마르는 차나 음식을 피하고 물을 자주 마셔 주기만 해도 크게 건조함을 못 느낀다. 입술을 손으로 자꾸 만지거나 뜯지 않아야 하고, 입술에 침을 바르는 습관도 좋지 않다. 그런 행동만 자제해도 충분히 입술 건강을 지킬 수 있다.
입술에 바르는 립스틱은 음식을 먹으며 함께 섭취하게 된다. 립밤도 마찬가지다. 입술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으니 제품 성분에 대한 안정성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런 점에서 내 입술도 자유를 찾은 셈이다.
내가 없이도 살 수 있는 것 29. 립밤
- 필요 없는 물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