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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Jun 12. 2023

술 없이 살기


술을 '안' 마시는 사람


내가 기자를 업으로 삼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술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술을 마시지 않는 기자는 업계에서 생존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니까. 비단 기자만이 아니라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은 술로 인한 사회생활의 고초를 겪기 마련이다. 그만큼 음주 문화는 이 사회에서 주류 문화이고,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은 소수로 살아가기가 힘들어 그 무리에 섞인다는 떠밀린 선택을 하고 만다.


술을 못 마시는 게 아니라 안 마시는 사람은 더욱 유별난 대접을 받는다. 나 또한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불필요한 주목을 받아 왔다. 이 주목이란 건 안타까운 시선과 아니꼬운 시선과 이해하지 못한다는 시선들이 뒤섞여 있는 것으로 회식 자리에서 술을 거절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이야기다.




유년 시절 술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부정 그 자체였다.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것도 잠시, 술은 파괴적이고 암울함의 온상으로 변했다. 점잖아 보이던 사람도 술만 마시면 목소리가 커졌다. 술에 취한 어른들의 모습을 통해 술의 실체를 확인했다. 그리고 성인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통과의례를 따라 술을 마시며 어른 행세를 했다. 내가 보고 자란 어른들과 같은 모습으로. 아무 생각 없이 건네는 술잔을 받고, 아무 생각 없이 눈앞에 앉은 상대의 술잔을 채우고 함께 목을 적셨다. 오직 술잔을 부딪히는 게 목적인 양 친구들과 밤새도록 술을 나눴다. 또래와 어울리는 게 좋았으리라. 그 나이에만 할 수 있는 청춘의 몸짓인지 모른다. 아니, 나는 왜 그러고 있는지를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나는 술을 잘 마셨다. 타고난 체질이 술에 약하지 않았다. 술자리가 파하면 일행들을 살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정도였다. 같이 어울리던 친구들도 인사불성으로 마시는 타입이 아니었고 나 역시 취하도록 마시지 않았다. 어린 나이지만 자제력을 발휘하려고 했다. 여태껏 술에 취해 본 적이 없던 나는 사람들의 술과 얽힌 부끄러운 경험담에 공감하지 못했다. 술은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라 믿었다. 술에 지는 사람들이 한심해 보였다. 그렇게 자부하던 나도 술에 된통 당하고 말았으니. 그때 처음 술과 싸워 이기려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단체 회식 자리. 나는 그동안 정확한 내 주량을 알지 못했다. 나의 한계라도 시험해 보고 싶었던 걸까, 당시 마음을 주고받던 사람과 잘되지 않아서 홧김이 동한 걸까, 아님 오랜만에 갖는 술자리에 들떠서일까. 처음으로 술 앞에서 방심을 했다. 그 자리에서 동료들이 주는 잔을 모두 비워냈더랬다. 그 모임에 처음 나타난 나는 그들에게 다소 재밌는 흥밋거리였고 당사자도 그걸 즐긴 듯하다. 예쁨 받는 것에 취하고 술에 취했다. 그 최후는 뻔했다. 사람들 앞에서 보기 좋게 게워냈고 혼자 몸을 가누지 못했다. 정신은 멀쩡한데 몸이 제어가 되지 않았다. 추태를 보여 연신 미안하다며 사과하기 바빴지만 입을 제외한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도 그들에겐 그저 술주정이었으랴. 내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난생처음 겪는 일이었다. 다행히 의식은 멀쩡하여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귀가 SOS 요청을 보냈다. 집으로 가는 길 용무가 급해 들어간 공중 화장실에서 나는 한동안을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아 그대로 필름이 끊겨 버린 것이다. 내 생애 첫 블랙아웃. 다음 날 깨질 듯이 아픈 머리통을 부여잡고 이게 말로만 듣던 숙취로구나, 감탄 아닌 한탄을 했다. 몸에서는 술 냄새가 진동했다. 두통, 술 냄새, 지난밤 내가 쏟아낸 것들이 뒤섞여 내 안의 모든 불쾌한 감각을 끄집어냈다.




이 일이 있은 후로 술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사람들 앞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이 창피했고 부끄러웠다. 무엇보다 내 의지와 다른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자각과 어린 날의 술에 대한 반감, 좋아하지도 않는 술을 왜 마시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을 내놓은 것이다. 술을 안 마시겠다는 내 선언에 장난으로 받아치는 친구들의 반응에 응수하기를 몇 번. 친구들도 처음에는 가벼이 여기다가 이 녀석이 진심이라는 걸 알고는 그 결정을 존중해 줬다. 그리고 이내 술과의 인연을 끊었다. 다행히 친구와의 인연은 끊기지 않았다. 맥주를 마시는 친구들 옆에서 나는 탄산수를 마시거나 무알콜 음료나 칵테일을 두고 시간을 보냈다. 지금까지 연이 닿는 친구와 만날 때면 카페에 가서 담소를 나누곤 한다. 지인들과는 술잔을 기울이지 않아도 얼마든지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다.


대개 술을 마시지 않으면 사회생활이 어렵다고 한다. 인간관계가 끊기고 소외당할 거라 걱정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술 때문에 멀어질 사람이라면 애초에 좋은 관계는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있다. 나의 친구들은 내가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해서 나를 밀어내지 않았다. 물론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야 큰 문제가 될 게 없다. 문제는 단체 생활이다. 학교, 직장, 모임에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회식 자리에서 술을 안 마신다고 발언하는 순간 나는 이상한 사람이 된다. 회식 자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요즘은 다를까?) 많은 사람들이 술을 '못' 먹는 것은 이해해도 '안' 먹는 것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했다.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을 꼭 듣고야 말겠다는 눈빛이었다. 종교적 신념이나 건강상의 이유라면 고개를 끄덕여도, 단순히 먹지 않겠다는 개인의 선택에 대해서는 존중받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나는 거기에 굴하지 않고 회식에 참석했다. 못 마신다는 비겁한 핑계도 대지 않고 솔직했다. 보란 듯이 물이 든 잔을 비우며 자리를 지켰다. 그 뻔뻔함은 스스로도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때 몇 번이고 무너졌다면 나 자신에게 부끄러웠을 터.


하지만 지금이라면 애써 그러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억지로 회식이나 술자리에 참석하지 않는다. 원하지 않는 자리에는 웬만하면 가지 않는다. 이제는 눈치를 안 보는 뻔뻔함까지 생겼다. 요즘은 워낙에 '강요'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에 서로가 조심하는 편이기도 하고, 지난 직장들도 그런 점에서 자유로운 곳이었다. 이전보다 사회적 분위기가 나아진 것도 같지만, 술에 관대한 건 여전해 보인다.




나는 술에 있어서만큼은 관대하고 싶지 않다. 아량을 베풀 곳은 따로 있다. 술이야말로 내가 먹고 마셔야 할 것에서 가장 먼저 제외되어야 할 대상이다. 나는 술을 담배와 한 세트로 묶어 무익한 존재라고 여긴다. 담배가 백해무익하다면 그나마 술은 한두 가지 쓸모가 있긴 하나, 내겐 무의미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내가 느낄 수 있는 수치심의 한계를 넘어선 경험을 계기로, 나는 남들보다 빠르게 '벗어남'이라는 선택을 했다. 나의 위선을 바로잡고 나의 본심을 지켰다. 나는 맑은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다. 술에 기대어 살아가기엔 세상은 아름답다. 맑은 눈으로 보는 세상은 그러하다. 설령 세상이 아름답지 않다 하여도 내 선택을 지킬 수 있도록 나를 지키며 살아가기로 했다.


혹자는 술을 안 마시면 무슨 재미로 사냐고 묻는다. 술이 없으면 인생사 '노잼(재미 없음)'일 거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미안한 얘기지만 그 말인즉슨 그만한 삶의 낙이 없다는 반증이 아닌가. 인생에서 술 하나 없다고 고달파서야. 나는 그렇게 답하고 싶다. 이건 어디까지나 존중을 모르는 사람들을 향한 말이니 오해 없기를. 내가 술을 선택하지 않듯 당신이 선택할 자유가 있음과 마찬가지로 선택하지 않는 자유 또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는 뜻이다. 내가 살아가는 곳이 다름의 자유를 존중하는 사회이기를 바란다. 그보다 술에 기대어 살아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면 좋겠다.






내가 없이도 살 수 있는 것 28. 술
- 필요 없는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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