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만 마시는 사람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10대에는 뭔가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으로 커피를 동경해서 맛보기도 했다. 대학생 때는 밤샘하며 아메리카노를 들이부었을 때도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커피가 몸에 맞지 않았다. 커피만 마시면 가슴이 두근대고 밤에는 잠을 설쳤다.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몸이 되었다. 그 정도가 심해서 이후로는 커피를 먹지 않았다. 커피는 딱히 취향이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아쉬울 건 없었다.
좋아했던 차는 따로 있었다. 바로 홍차와 밀크티. 이상하게도 홍차의 카페인은 괜찮았다. 카페에 가면 밀크티나 홍차를 주로 시켰고, 타피오카 펄이 들어간 버블티도 무척이나 좋아했다. 집에서는 홍차와 함께 달달한 디저트를 즐겨 먹었다. 일상의 사소한 행복이자 가장 좋아하는 순간 중 하나이기도 했다. 분명 홍차와 밀크티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리 좋아하던 홍차와 밀크티도 더 이상 마시지 않는다. 모든 카페인 음료를 끊었다. 사실 '끊었다'고 표현하기엔 부적절하다. 그냥 자연스레 먹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까 '먹고 싶다'라는 영역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건 내 의지와는 관계가 없었다. 나는 이제 물만 마시고 산다.
이쯤에서 '디카페인 음료를 마시면 되지 않느냐?' 물을 수도 있겠다. 보리차, 녹차, 결명자차, 메밀차, 우롱차, 허브티, 캐모마일티, 레몬티, 히비스커스티... 차 종류도 정말 많다. 너무 쉽게 구할 수 있고 카페에 가면 온갖 차가 있다. 카페인 없는 차도 많다. 그런데 그냥 차를 마시지 않는 게 더 편하지 않나? '안 마신다.' 아주 간단하다.
역류성 식도염, 위염으로 고생했을 때 잠시 캐모마일티를 마신 적이 있다. 캐모마일은 카페인이 없고 위에 좋다고 한다.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특히 은은한 향이 좋아서 제법 취향에 맞는 차였다. 하지만 그때 이후로 더 이상 마시지 않는다. 이젠 그냥 물만 마시고 싶다. 어릴 때는 집에서 보리차를 마셨지만 지금은 정수한 물만 마시고 있다.
차와 음료를 마시지 않기 시작해서 그런가, 그 좋아하던 카페에도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가지 않는다. 앞으로 카페에 가게 된다면 과일 음료를 주문할 것 같다. "설탕, 시럽은 빼고 과일, 물만 넣고 갈아 주세요"라고 주문하겠지. 아니면 일행의 음료를 하나 더 시켜 주고, 옆에서 물만 마실 생각이다.
차(Tea)에는 더 이상 흥미가 없다. 커피나 카페인 음료 외에 건강에 좋은 차도 많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물론 건강에 나쁜 것은 아니나, 꼭 건강을 생각하며 차를 마실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차가 자연스러운 음식인지는 잘 모르겠다. 물만 마셔도 충분하다. 물 외에 모든 음료를 마시지 않는다. 가끔 콩이나 팥 삶은 물을 마시긴 하는데, 콩물은 식사로 먹는 것이고, 팥물은 그냥 버리기 아까워서 먹는다. 그게 전부다.
마시는 건 물 하나
얼마나 단순하고 좋은가?
나는 깨끗한 물 한 잔이면 충분한 사람이다.
내가 없이도 살 수 있는 것 17. 카페인(차)
- 필요 없는 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