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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Jun 11. 2023

쇼핑 없이 살기


1년 5개월 만에 옷을 샀다. 속옷 2장이 전부. 낡은 속옷을 새것으로 교체한 것뿐이다. 더 이상 기분 전환으로 쇼핑을 하지 않는다. 재작년 겨울에 샀던 흰색 목티도 밝은 상의 안에 입을 이너가 필요해서 오랜만에 장만한 것이었다. 그동안 일부러 옷을 안 샀던 건 아니다. 단지 사야 할, 필요한 옷이 없었다. 2년 전 이사를 하면서 옷을 한가득 정리했지만, 지금도 가지고 있는 옷이 많다. 안 입는 옷도 여전히 많다. 아직 정리해야 할 옷이 있을 뿐, 새로 들여야 할 옷은 보이지 않는다.


쇼핑을 좋아했지만 과한 지출을 하는 편은 아니었다. 흔한 명품 하나 없다. 대개 필요한 물건만 사는 편이었지만, 유일하게 기분파가 되는 때가 옷을 살 때였다. 옷을 좋아했다. 꾸미기도 좋아했고 패션에도 관심이 많았다. 유행에 따라 스타일을 바꾸지는 않았으나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었다. 기분 전환으로 옷 쇼핑도 즐겨하고, 옷을 사지 않더라도 매장에서 몇 시간씩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것도 좋아했다. 온라인으로 하는 아이쇼핑도 자주 했고, 즐겨찾기로 추가해 놓고 보는 쇼핑몰도 많았다. 보통 두루 입을 수 있는 기본 아이템을 선호했지만, 가끔 충동적으로 화려한 색감과 패턴의 옷을 사곤 했다. 당연히 그런 옷들은 얼마 입지 못하고 옷장에 박히는 신세가 되었다.


옷은 이제 필요할 때만 산다. 다른 물건도 마찬가지다. 정말 필요한 게 아니라면 구매할 의향이 없다. 앞으로 필요한 물건이 생기면 중고 거래를 할 생각이다. 속옷처럼 선택지가 없다면 새 상품을 구매해야겠지만 우선 중고 거래 앱에서 찾아보려고 한다. 중고 거래로 물건을 구매한 경험이 없어서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었다. 특히나 남이 입던 옷은 절대 못 입을 것 같았다. 그런데 용기가 생겼다. 올해 들어 환경과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새 물건에 대한 경계심과 헌 물건에 대한 느슨한 마음이 자라났기 때문이다.


새 옷을 사지 않겠다고 결심한 건 패션 산업이 유발하는 환경오염에 일조하고 싶지 않아서다. 한 다큐멘터리에서 접한 내용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흰색 티셔츠 한 장을 만드는 데 필요한 물의 양이 성인 1명이 3년 동안 마실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물만 많이 사용되는 게 아니다. 면화를 생산하는 과정부터 발생하는 환경오염을 따지자면 끝이 없다. 그 티셔츠를 폐기하는 비용까지 생각하자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내가 헌 옷 수거함에 넣은 옷들은 국내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해외로 수출되어 한 마을에 당도해 골칫거리가 되고 만다. 그 광경을 보며 새 옷은 더는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새 옷은 안 사기로 했다. 방구석에서 환경 운동을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리라.


안 입는 옷과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은 필요한 사람에게 나눔을 하는 방식으로 정리할 계획이다. 물건의 순환을 보다 중요시하게 되었다. 새로운 옷을 들일 때도 이왕이면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고르려고 한다. 다른 물건을 구입할 때도 마찬가지. 이전까지는 늘 가성비를 따졌다. 지금은 저렴한 가격보다는 제품의 기능성과 내구성을 우선으로 고려한다.


지금 입고 있는 옷들도 너덜너덜해져서 더 이상 입을 수 없을 때까지 입고 버릴 생각이다. 구멍 난 양말은 바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곤 했지만, 지금은 손바느질을 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옷이 많을 때는 옷이 해질 때까지 입는 일이 없었는데, 집에서 입는 옷은 한두 벌을 돌려 입으니 금방 해어진다. 티셔츠도 구멍이 나면 꿰매어 입고 있다. 바느질은 어렵지 않다. 단추가 떨어져도 단추 하나 달 줄을 몰랐는데 바느질은 그냥 하면 되는 것이었다. 실과 바늘만 있으면 엉성해도 구멍만 잘 메우면 된다. 바느질도 좋아하게 되었다. 손바느질을 한 땀 한 땀 놓다 보면 마음도 덩달아 차분해지는 기분이다. 명상이 따로 없다.



위시리스트 없는 삶


이번에 속옷을 사면서 확실히 알게 된 게 있다. 이제 쇼핑은 너무 귀찮고 피곤한 일이라는 것. 낡은 속옷을 새로 교체하고 나니 밀린 숙제를 다한 느낌이었다. 쇼핑에 대한 흥미가 팍 식었다. 최근 들어 화장도 하지 않기 시작했으니 새로운 화장품을 살 일도 없다. 수고로운 일이 줄어 들어서 기쁘다. 애초에 돈을 아낀다거나 절약이 목표는 아니었으나 덩달아 지출도 줄었다. 지금은 기분 전환이 필요한 상황도 드물고, 쇼핑이 아니더라도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았다. 애써 물건으로 만족감을 얻을 필요가 없다. 쇼핑의 만족감은 오래가지 않는다. 돈으로 물건으로 행복을 쉽게 사려고만 했다. 쉽게 얻은 행복은 그만큼 쉽게 사라졌다. 내가 찾은 진정한 행복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알고 내가 누린 것에 감사하는 것이 행복의 시작이었음을 보았다. 더는 함부로 내 기분과 행복을 사려 하지 않는다.


좋은 물건은 새 물건이 아니라 오래오래 옆에 두고 쓸 수 있는 요긴한 물건이다. 물건을 보다 가치 있게 쓰고 싶다.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가방을 메고 똑같은 신발을 신는다. 조금은 해진 옷을 입어도 아무렇지 않다. 그동안 옷을 애지중지할 줄만 알았지 잘 쓸 줄은 몰랐다. 매일 같이 쓰니 더 소중하다. 비로소 옷을 아낄 줄 아는 어른이 된 것 같아 어깨가 으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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