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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없이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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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Jun 09. 2023

영화 없이 살기


영화를 안 보기 시작했다


영화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코로나가 터진 이후로 영화관에 간 적이 없다. 물론 극장에 가지 않고도 집에서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네이버, 유튜브…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했다. 넷플릭스는 막상 결제를 하고 나면 볼 게 없어지는 공식이라도 있는 걸까. 매번 돈이 아까울 만큼 결제일을 기준으로 이용하는 횟수가 점점 줄었다. 그래서 구독을 끊었다. 지금은 이용하는 OTT 서비스가 아무것도 없다. 마지막으로 이용한 서비스와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무엇이었는지 당최 기억이 안 난다. 왜, 언제부터 영화랑 이렇게 사이가 멀어진 걸까?


나는 영화를 좋아했다. 천만 영화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지만. 그런 영화는 명절에 TV에서 몇 해에 걸쳐 방영을 하고 나면 그제야 뒷북으로 보곤 했다. 아직도 안 본 천만 영화가 많다. 내 영화 취향은 대개 잔잔한 로맨스나 드라마 쪽이었다. 가끔 보고 싶은 영화를 결제해서 보는 정도였다. 그러다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특히 망치를 휘두르는 금발머리의 신이 나오는 영화를 시작으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매력에 빠졌다. 빵빵한 사운드와 큰 화면으로 보는 액션, 왜 사람들이 극장을 찾는지 그 이유를 뒤늦게 알아버렸달까. 이후 영화광까진 아니어도 영화 개봉 소식에 바로 극장으로 달려갈 만큼 영화관에서 영화 보는 걸 즐겼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왜 지금은 영화를 보지 않냐고 스스로에게 묻고 싶다. 음, 딱히 보고 싶은 영화가 없어서? 맞긴 한데, 요즘 무슨 영화가 나오는지조차 모른다. 그럼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안 들어서? 아무래도 이게 정답인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싫어진 건 아니다. 아마 지금도 취향에 맞는 영화가 있으면 분명 재밌게 볼 테지만. 굳이 찾아서 보고 싶지 않을 뿐이다. 영화 대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게 더 재밌다. 그러니까 더 재밌고 더 좋아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진짜 이유를 찾았다.


아무튼 영화 없이 살고 있다. 마치 '영화 같은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진부한 대사 같은 생각을 한 것도 아닌데, 영화를 안 보고도 그냥 잘 살고 있다. 이러다 또 언제 다시 영화에 빠질지 모르겠으나, 일단 '영화 없이 살 수 있다'에 제법 뭉근한 표가 던져졌다. 사실 나는 어둡고 밀폐된 공간인 영화관을 썩 좋아하진 않는다. 지금은 영상 매체도 잘 보지 않고 음악도 듣지 않으니, 극장을 가게 되면 너무 큰 소음에 화들짝 놀랄 것만 같다. 화려한 영상미와 배우의 뛰어난 연기에 몰입하기보다는 평범한 일상과 조용한 시간을 더 즐기게 된 모양이다. 영화를 보지 않아도 무료하지 않은 건, 정말로 영화 속 이야기보다 나의 이야기, 나의 삶에 집중하게 되어서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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