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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 Nov 03. 2024

밤의 미매장(未埋藏) - 박인환

─ 우리들을 괴롭히는 것은 주검이 아니라 장례식이다.

이 시는 "당신과 내일부터는 만나지 맙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시를 읽다 보면 누군가는 남겨진 사람의 슬픔과 상실감을 또 다른 누군가는

떠나려는 이의 마음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고

이 시에서 내가 느낀 분위기는 '떠나는 사람의 메시지'에 가까웠다.


<밤의 미매장 - 박인환>

처음 시를 들었을 때,

화자에 대한 이미지는 마치 담담하게 이별을 이야기하고 뒤돌아보지 않을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 사람 참 차갑고 냉정한 사람이네. 남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미련도, 배려도 없이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리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시를 계속 들으면서, 어쩌면 그가 전하고 싶었던 것은 냉정함이 아니라,

그저 남겨진 사람들이 자신을 편히 잊고 평온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진심을 건조하고 담담하게

표현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너무 슬프고 마음이 아파서 낭송을 듣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밤의 미매장 - 박인환>

그러다 시간이 지나, 다른 성우님의 낭송으로 이 시를 다시 들었을 때 그 느낌은 이전과는 또 달랐다.

이번에는 “이 사람, 정말 마음 편히 갈 수 있는 걸까? 왜 이렇게 걱정이 많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떠나는 화자가 남아 있을 사람들의 슬픔을 걱정하며, 그들에게 자신이 떠나는 불가피한 이유를

차분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시선은 남아 있는 이들에 대한 깊은 배려로 가득했고, 떠나야 하는 이유를 담담하게 전하려는

화자의 마음은 따뜻하게 느껴졌다.


'당신과 내일부터는 만나지 맙시다'라는 말은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작별 인사처럼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느낀 이 시의 메시지는 그저 이별의 통보가 아니라,

자신에게 그리고 상대방에게 전하는 마지막 배려이자 작별의 인사로 다가왔다.


낭송을 통해 시를 듣는다는 것은, 글을 읽을 때와는 다른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낭송자의 목소리와 표현에 따라 같은 시가 전혀 다른 감정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이 경험들을 통해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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