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알쓸신잡3>에서 김영하 작가가 하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저는 아주 오래전부터, 절대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의 100%를 다 사용해서는 안 된다, 한 60~70%만 써야 된다, 절대 최선을 다해선 안 된다는 게 제 모토였어요. 인생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그 일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능력이라든가 체력을 남겨둬야 합니다. 집에서는 대체로 누워 있어요. 함부로 앉아있지 않아요.”
아. 내가 그렇게 힘들었던 이유가 이 말에 다 들어 있었다. 나는 내 능력치를 모르고 무조건 영혼까지 끌어다 쓰면서 ‘인생은 왜 이렇게 힘든가’를 고민했다. 무리한 계획을 세워 조바심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번아웃과 가족 같은 사이로 살았다.
어려서부터 사람 사는 게 너무 지루하고 밍밍했다. 밥 차리면 밥 먹고, 먹으면 상 치우고, TV 보고, 몸 씻고, 자고… 어제도 그랬고 그제도 그랬다. 설마, 이게 다일 리가 없어. 기껏 이렇게 태어났는데 세상이 이렇게 시시한 곳일 리가 없어. 어딘가에는 기가 막히게 재밌고 짜릿한 경험도 있고, 눈을 믿을 수 없게 색다른 풍경도 있고, 그런 것들을 마주하면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어떤 굉장한 느낌'을 느껴볼 수 있을 텐데. 그게 진정한 인생의 맛이지. 지금은 산다는 게 더 좋은 걸 찾아서 누리기 위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오랫동안 그렇게 살았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새로운 걸 찾아나섰다. 대학 때는 3곳의 동아리활동과 아르바이트 2개를 병행하느라 한때 행사가 겹칠 때면 아침마다 '모닝코피'를 쏟으며 기상했다. 약골 주제에 100이 아닌 200, 300을 하려 하니 몸 여기저기 말썽이 늘었다.
제발 적당히 좀 하자, 깡다구야
처음 아르바이트가 하고 싶어진 건 초등학교 때였다. 어머니가 돌리시던 석간신문을 나눠 돌리던 게 재밌어서 중학교에 들어가자 본격적으로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교과서보다 <교차로>를 더 꼼꼼히 읽었다. 눈에 띄는 카페에 전화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열심히 물었다. 사장님들은 내 나이를 듣고 실소를 터뜨렸다. 욕하지 않고 좋은 말로 끊어주셨지만 어린 나는 분했다.
그렇게 의욕만 쌓아가던 고1 때 매력적인 일을 알게 됐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꼭대기층까지 올라가서 계단을 빙글빙글 돌며 날쌔게 종이를 붙이는 일. 전단지 배포는 중독성이 있었다. 다다다 달려서 신나는데 돈도 준다니! 휴일에 공부를 한다고 나가서는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전단지를 돌렸다.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학교생활도 집안 분위기도 답답했는데 알바를 하면 뭔가는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장 아저씨가 하는 말에도 어깨가 으쓱했다.
"야, 너는 다른 애들하고 다르다. 너는 깡다구가 있어, 깡다구. 그게 뭔지 알아?“
돌아보면 그 ‘깡다구’는 싫은 것을 견디는 끈기나 인내심보다는 ‘이때다!’ 하고 쏟아내는 과잉행동에 가까웠다.
우리 어머니는 내가 은행원이나 공무원 같은 일자리를 갖기 바라셨고, 나는 안 맞는다며 일찍 선을 그었다. 불안정한 집안 사정을 생각하면 내가 철이 없다 싶었지만, 그래도 상상이 안 됐다. 한곳에 오래 있거나 단체활동에 끼어야 할 때면 지하실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대학 졸업 후에는 10여 년간 여기저기 떠돌며 1~2년 단위로 일했다. 중간에 공무원 비슷한 일도 해 봤지만 불면증을 겪다 뛰쳐나갔고, 동시에 손끝에 닿는 일거리는 뭐라도 붙잡고 아등바등했다.
내 깡다구에는 목표도 방향성도 없었다. 하고 싶어지면 그냥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내 욕망들이 끄는 마차에 타고 그것들을 부리면서 신나게 질주한다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바로 내가 욕망에 채찍질당하며 손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마차를 끌고 있었다.
사람들은 끝도 없이 새로운 일을 벌이는 날 신기해 했다. "야, 너는 진짜 대단하다." 처음엔 오히려 그런 말들이 신기했다. 대충 다들 이렇게 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고? 그럼 내가 의욕만은 정말 대단하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 그런 평가를 자부심으로 만들어 부족한 자존감을 채워보려 했던 것 같다.
나의 가혹하고 상냥한 ADHD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내가 열정부자인 것마저 부족한 도파민의 영향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많은 전문가들이 ADHD를 가진 사람의 특성 중 하나로 ‘자극과 신기한 것을 추구하는 경향’, ‘열정과 과몰입’을 언급한다. ADHD가 있으면 도파민 분비가 원활하지 않으므로 분비를 자극할 수 있는 대상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래 전 누군가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자꾸 새로운 걸 추구하는 건 뇌 신경이 자극에 둔해서 그런 거래.”
그럴 듯한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꽤 전문적인 얘기였던 거다. 정확히는 신경전달물질의 문제였지만.
반갑고 신기한 한편 묘하게 맥이 빠졌다. 늘 내 연구 대상이던 내가 타인에 의해 명료하게 설명되는 순간이 올 줄이야. 만일 이만큼 나다움이라고 생각했던 게 증상이었다면, 내 삶에서 증상에 지배받지 않은 부분은 찾기 어려운 거 아닐까?
물론 ADHD가 있다고 해서 다 그런 건 아니다. 같은 ADHD라고 해도 사람마다 증상과 경향성이 다르게 나타난다. 주변의 저평가와 자책 때문에 무기력감으로 고생한 이들도 많다. 그리고 이런 유노윤호급 열정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점차 무력감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늘 원해서 일을 시작하면서도, 막상 일을 하면 매번 속을 까맣게 태웠다. 날이면 날마다 눈물을 감추고 콧물을 삼키며 왜 나만 이렇게 실수가 많지, 왜 이렇게 눈치가 없어, 이놈의 것을 해, 말어, 하며 머리털을 뜯었다. 내가 대인 관계와 의사소통, 임기응변에 매우 서툴다는 것을 새록새록 깨달으면서 선택지도, 마음이 설 땅도 좁아졌다. ‘하고 싶음’은 그대로였지만 ‘할 수 있음’은 서서히 작아져 갔다.
바닥과의 일체화가 기본 자세인 내 동거인, 그리고 할 일을 마치고 드라마를 보면 더 바랄 것 없다고 하시는 우리 어머니를 보며 생각했다. ‘단순하게 사는 사람 부럽다.’ 특별히 이루고 싶은 게 없다면 현실과 이상이 어긋나 괴로울 일은 없을 테니. 잡다한 하고 싶음에 끌려 다니다 글을 쓰지 못한 것도 아쉬웠고, 정작 중요하게 생각했던 꿈에 쓸 체력까지 탕진해 버린 것도 후회스러웠다.
여기엔 일종의 어리광도 있었다. 아티스트이자 유머리스트 이반지하는 이런 말을 했다. “원래 남들 잘 되는 건 되게 단순하고 심플하고 한결 같이 잘 되는 것 같고, 나는 복잡하게 안 되는 것 같잖아.” 이런저런 삶을 들여다보면 정말 그렇다. 어떤 사람들은 ‘하고 싶음’ 자체를 느껴보지 못해 자신에 대해 회의를 갖고 있었고, 여러 가지를 다 잘 해내려 애쓰는 내 모습을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사람들은 뭔가에 몰입해서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 했다. 꿈과 욕망이란 건 잘 풀리든 아니든, 녹록지 않은 현생을 버텨 나가는 구심점이 되기도 하니까.
삶에 있어 안정성이란 것도 허상이 아닐까. 정확한 설계로 무너지지 않을 탑을 쌓는다 하더라도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탑이란 없다. 어떤 이들에게는 일단 쌓을 돌 하나를 찾는 것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결국 누구나 눈앞에 있는 돌을 쌓아올릴 수 있을 뿐이다.
마치 모든 날씨가 하루에 공존하듯 요란했던 나날은 ‘나름대로 할 수 있는 만큼 해 봤다’는 느낌을 남겨주었다. 나를 정신 없이 흔든 ADHD 증상이 현생을 버틸 힘도 약간은 만들어준 셈이다. 이 주관적인 안정감은 객관적으로 불안정한 현 상태를 지탱해준다. 일례로, 금융권에서는 내가 비빌 언덕이 없다는 이유로 신용카드 한 장 안 만들어주지만 서럽지도 부끄럽지도 않다.
원래 나는 남들보다 사리에 한참 어두웠는데, 경험욕 덕분에 세상을 배워 그나마 사람 흉내는 내게 된 게 매우 다행이다. 여전히 현실감각 없이 붕 떠서 살긴 하지만.
무엇보다 큰 소득은 내가 뭘 할 때 제일 편안하고 행복한지 더 분명히 알게 된 것. 겨울인 요즘은 방에서 손끝을 비벼가며 타자를 치다가 내킬 때 나가서 방방 뛰어다닌다. 객관적 불안정과 주관적 안정 사이에서 멋대로 몸을 놀리며 사는 그 자체가 나에게 안정을 준다.
나, 그리고 ADHD
신경학자 올리버 색스는 이렇게 썼다. “병력은 개인에 대해 그리고 그 개인의 ‘역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질병에 걸렸지만 그것을 이기려고 싸우는 당사자 그리고 그가 그 과정에서 겪는 경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전해주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좁은 의미의 ‘병력’ 속에는 주체가 없다.”
ADHD와 나를 분리해서 보려는 노력이 의미가 없는 이유는, 내가 살아오면서 형성한 정체성에서 ADHD를 가진 내 모습만을 가시 발라내듯 발라내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불편들이 이룬 나를 ‘틀림’의 영역으로 규정하고 ‘순수한 나’만을 추출해 내려는 시도는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사회의 기준을 내면화한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나는 가끔 인생의 중요한 순간 일곱 장면을 떠올려 본다. 훗날 눈을 감을 때 떠오를 법한 순간들 말이다. 하나씩 떠올리다 보면 알게 된다. 내 삶에는 생각보다 눈부신 순간들이 많았고, 그때마다 곁에는 나를 아끼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빛나는 순간 속에서 나는 ADHD를 가진 인간의 한 표본이 아니라, 나만의 길을 찾아 걸어온 나일 뿐이다.
나만의 기질과 내가 만들어온 경험들, 하나하나 고민하며 쌓아온 선택의 총체가 나다. 삶이라는 요리에 ADHD가 주재료라 할지라도, 요리법을 결정하고 조절하며 맛을 내는 주체가 나라는 건 변함없다. 우리를 나타내는 어떤 수식어도 우리 자신보다 앞에 나올 순 없다.*
* <달러구트 꿈 백화점2>에서 '와와슬립랜드'의 말
* 덧붙이는 말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은 실행, 운동, 동기 부여, 각성, 강화, 보상 등에 관여합니다. ADHD인들이 게으르다는 오해와 동시에 호기심과 열정이 많다는 모순적인 평가를 받는 것은 도파민의 양면적 기능과 관계가 있습니다. 도파민은 욕망회로(중변연계 회로)와 통제회로(중피질 경로)의 두 가지 경로로 작동합니다. 무언가를 한없이 원하게 하는 욕망회로가 폭주할 때, 통제회로는 제동을 걸어주고 추상적 사고와 전략 구상으로 '계획'을 가능하게 합니다.
ADHD를 가진 사람들은 평소 도파민 분비가 원활하지 않기에 부주의하고 불성실해 보이는 한편(욕망회로 작동 이상), 충동적이며 감정조절에 어려움(통제회로 작동 이상)을 겪습니다. 새롭고 신기한 것, 모험과 자극을 추구하는 경향도 있는데, 정신의학계에서는 이것이 부족한 도파민을 분비하기 위한 보상적 현상이라고 봅니다. 통제회로의 기능이 약해 '만족 지연'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과감한 결단성과 행동력으로 나타납니다.
책에는 브런치보다 많은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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