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릿내’ 나는 관계에도 ‘새물내’ 나는 순간들이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후각장애를 갖고 계셨다. 감기였는지 축농증이었는지, 제때 병원에 못 가 냄새를 맡지 못하게 되 었다고 한다. 나는 그 사실을 자주 잊어버려서 “이거 냄새가 좀 이상하지 않아요?” “냄새 너무 좋다. 그쵸?”라고 눈치 없 이 묻곤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먼 지역에 혼자 살게 된 후로는 나도 그 사실을 잊지 않게 되었다. 찾아갈 때마다 아버지의 거처 와 차에서 묵은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냄새를 맡지 못하니 ‘괜찮겠지’ 하며 쌓아두거나 다시 쓴 물건이 많았을 것이고, 옆에서 지적해줄 사람도 없었다. 우리 아버지가 어디 가서 냄새나는 사람이 되는 게 싫어서 문제의 물건을 알려드리면 아버지는 무척 민망해하셨다. 냄새를 맡지 못하는 게 아버지의 치부였는지도 모른다.
냄새는 아버지의 옆자리가 비어 있음을 말해주었다. 나에게는 마치 아버지의 마음속 빈방에서 나는 냄새인 것만 같았다. 부모님은 그 시절 많이들 그랬듯 선 한 번 보고 연애 없는 결혼을 했다. 두 사람은 상극이었고, 이런저런 사건이 있은 뒤 내가 열네 살이 되었을 때 헤어졌다.
하지만 다툼과 비난은 그 후로도 이어졌다. 늘 생각했다. 뭐가 두 사람을 저렇게 만든 것일까. 거기에는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어떤 힘이 작용하는 듯했다. 나는 어느새 관계에 대해 섣부른 믿음을 갖고 있었다. 이를테면 사람 사이의 ‘상성’은 노력으로 극복될 수 없다는 것. 사람은 절대로 변하 지 않는다는 것.
겁이 났다. 나는 어떻게 살게 될까? 내 안에도 건강하지 않은 면들이 넘치는데, 그걸 무한정 받아줄 사람을 만날 확 률은 얼마나 될까? 혹시 나도 상처에 상처를 덧입히며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마음 습관을 관계 속에서 고쳐나가는 건 긴긴 고문 같아 보였다.
아버지에 얽힌 기억 때문인지, 나는 ‘#자릿내’라는 낱말 에서 사람 사이의 갈등을 떠올린다.
#자릿내: 오래도록 빨지 않은 빨랫감에서 나는 쉰 듯한 냄새. 이 말은 물건이 아닌 이념이나 현상에 대해서도 쓸 수 있다. 제때 청산되어야 할 것이 오래 남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때, 그 영향을 은유적으로 이르는 것이다. 《좋은 문장을 쓰 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154쪽)에서는 이러한 예로 ‘우리 사회의 밑바닥에 엉겨 붙은 일제시대의 찌꺼기’나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군사독재의 잔재’를 들고 있다.
관계에서도 자릿내를 맡게 되는 때가 온다. 살아오며 쌓인 감정이 제때 빨아내 지 않은 빨랫감처럼 쌓여 있을 때, 밖으로 풀어내지 못한 분노와 원망, 제대로 위안받지 못한 외로움, 직면하지 않고 쌓아둔 상처 등 다 풀지 못한 마음의 숙 제가 어느새 관계의 숙제가 되고 만다.
한 사람과 3년 반을 만났다. 관계에 자신이 없던 나와 달리 그는 아주 건강한 마음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마음의 벽을 허물 수 있었고, 그는 내가 단점이라 여겨 온 부분까지 사랑해주었다. 처음 느껴본 완전한 안락이었다.
하지만 그 애의 결핍은 나 못지않았다. 우리는 사소한 일에도 쉽게 마음이 상해 한 달에도 몇 번씩 큰 파도를 넘었 다. 그럴 때 그는 가시투성이였고, 나는 찔렸을 때 남보다 아파했다. 갈등을 덮기 위해 내가 참은 감정은 훗날 튀어나와 그를 공격했다.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어 보일 때가 많았다.
다시 붙일 수 없을 것처럼 관계가 부서질 때마다 나는 예전에 그 애가 들려준 얘기를 떠올렸다. 그 애는 어느 날 친구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했다.
내가 이 관계를 오랫동안 지킬 수 있을까?
지키긴 뭘 지켜. 관계는 누리는 거지.
돌아온 말이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고 했다.
나 역시 관계는 흠집이 나지 않게 지켜야 하는 것으로 여겼다. 어떤 관계든지 훼손되고 나면 되돌리기 어렵고, 긴 시간 훼손되지 않기란 불가능하니 길어지면 모두 망가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천천히 알게 되었다. 관계는 그런 게 아니었다. 훼손된 흔적을 지워야만 건강하게 지속되는 게 아니라, 시간 위에 함께 남기는 흔적 그 자체였다. 가시밭길 위에서 같은 경로만 맴돌더라도 그 시간이 쌓여 더 큰 연민과 사랑이 되기도 했다. 서로를 적으로 여기며 전쟁처럼 다퉜어도 그런 고난을 함께 헤쳐온 사람 역시 상대방이었다.
관계 안에서 완벽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정답도 없다. 그러니 말끔했던 처음과 같이 되돌리려 애쓸 필요가 없다. 답이 하나 있다면, 앞으로 더 나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는 진심으로 매번 새로워지는 것이 아닐까. 마음만큼 잘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관계의 가치를 믿는다면 관계는 지속된다. 소모되는 감정보다 작은 변화에 집중한다면, 관계는 변할 수 있다.
이 사람이라면 내 부족함을 전부 받아줄 거라 기대하게 될 때가 있다. 모든 성격은 동전의 양면인데도 우리는 한 면만 보고 그게 나를 구원할 거라 믿는다. 시간이 지나면 상대 가 세상을 보는 틀도, 행동 습관도, 결핍도 그대로 드러난다. 생각지도 못했던 뒷면에 실망하고, 때로는 배신감마저 느낀다. 그리고 갈등을 반복하며 스미듯이 알게 된다. 처음에 나를 구원했던 앞면은 나를 지옥으로 밀어 넣은 뒷면이 있기에 존재했다는 걸. 둘은 절대로 나눌 수 없고, 양면으로 이루어진 상대방은 불완전하면서도 그 자체로 완전한 보통의 인간임을. 나 자신처럼 말이다.
오래 같이 살며 매일 본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내가 될 수는 없다.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이 타당하게 느껴져도 상대에게 똑같이 생각하고 느끼도록 만들 수 없다. 남이기에 집착할 필요가 없고, 남이기에 나를 이해하고 받아주는 부분들이 고마운 일이다.
관계는 고마움이 당연함을 이길 때 지속된다. 고마움에는 새로움을 발견하게 하는 힘이 있다. 헤어져 있는 동안 나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내가 진짜 그에게 바라는 것이 내 옆에 존재해주는 것 말고는 없었다는 거다.
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정신적 고비를 넘기기도 했지만 나는 이 관계를 포기하지 못했다. 각자 성장한 부분이 내게는 보였다. 점차 누구의 숙제인지 따지는 일이 의미 없음을 깨달았다. 드러나는 모든 문제를 ‘우리’의 숙제로 받아들이는 게 중요했다. 풀어가는 과정을 같은 편에서 함께하겠다는 뜻을 전하는 것. 튀어나온 부분으로 서로 찌르고 모자란 부분 때문에 서로를 갈망하던 사람들도 방향을 조금 비틀면 맞물려갈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나는 그렇게 믿는다.
묵은 빨래를 한 번에 깨끗이 빨아 햇볕에 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이 뒤척일 때도 바삭한 햇볕 냄새와 #새물내만을 상대에게 안길 수 있다면. 그러나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처음 알아갈 때는 서로의 그윽한 향 수 냄새에 끌렸다. 지금은 더 많은 냄새로 서로를 기억한다. 곤히 자고 난 아침이면 방 안을 떠도는 타분한 숨 냄새, 매일 씻어도 살갗에서 풍기는 살냄새, 제때 내놓지 않은 음식물쓰레기의 냄새를 같이 맡는다. 그게 의식 저 밑에 남아 서로를 붙드는 생활의 향, 시간의 향이라는 걸 배워간다.
#새물내: 빨래하여 이제 막 입은 옷에서 나는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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