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히 매어둔 ‘마음고름’에 필요한 ‘풀쳐생각’
허리 치료를 받으러 다니면서 자주 듣는 얘기가 있다. 찾아오는 사람들 중 자신이 얼마나 아픈지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 그건 내 얘기이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일상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의 범위가 크게 줄었는데, 입원해서 누워 있을 만큼 강렬히 아픈 게 아니라서 그럭저럭 대안을 찾아가며 지냈다.
지금 생각하면 20분도 이어서 걷지 못하고 책 하나도 가방에 못 넣고 다녔으니 심하게 안 좋은 상태였다. 침대에서 나오기 전과 자기 전 한두 시간씩은 꼭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야 했다. 그런데 이런저런 치료를 받아봐도 뾰족한 수가 되지 않으니 이 정도는 별거 아냐, 하며 합리화하고 지 냈다. 되도록 아프다거나 힘들다는 말을 입에 올리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런 말을 습관처럼 하면 주변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을 테니까.
어느 날 잠을 청하려고 몸을 푸는데, 갑자기 눈에서 물이 나왔다. 일상에 달라붙은 불편이 지긋지긋했다. 잠시 그대로 이불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내내 힘들었고 울고 싶었다는 걸.
지금의 통증을 점수로 치면 몇 점일까요?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매번 이 질문을 받는다. 몇 번을 들어도 내 귀엔 어려운 수학 문제로 들린다. ‘지금의 아픔 또 는 불편감을 1에서 10점 범위 내에서 숫자로 환산하시오.’
몇 초 동안 많은 생각이 스친다. 이번 주는 얼마나 불편했지? 살면서 겪어본 제일 강한 통증은 어땠더라? 남들은 그 정도를 10점으로 볼까? 내 기준에서 말해도 되나? 그에 비하면 이번 주는 5점 정도일까? 아차차, 지난주보다 나아졌는데 지난주보다 점수가 높은 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다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충 떠오르는 숫자를 뱉고 만다.
차도를 파악하기 위해 참고하는 것뿐이니 까다롭게 기준을 찾을 필요는 없는데, 많은 사람이 점수 매기기를 어려워한다고 했다. 치료사의 설명이 흥미로웠다.
많이 아픈데도 절대 9점이나 10점이라고는 안 하는 분 들이 많아요. 잘 움직이지 못하는 분은 낮은 점수를 주는데 언뜻 보기에 괜찮은 분이 높은 점수를 주기도 하고요. 엄살이 아니라, 모든 사람한테 똑같이 적용되는 통증의 기준이 없어서 그래요. 전보다 상태가 좋아졌을 때 오히려 더 높은 점수를 매기는 경우도 있어요. 자기 몸에 대해 잘 모를 때는 아프다는 인지를 못 하기도 하고, 사소하더라도 지속적으로 불편한 게 오히려 불편감이 클 수 있거든요.
통증은 객관적으로 수치화할 수 없는 고유한 감각이다. 그러니 ‘아프다’와 ‘아프지 않다’를 정하는 기준은 아픈 자신의 느낌과 판단이다. 하지만 스스로 고통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고통을 느끼면서도 믿지 않으려 할 때도 있다.
마음의 통증에 대해서는 더 그렇다. 어디부터가 밖으로 표현해도 되는 정도일까? 아프다고 해도 될 때를 아는 유일한 사람은 자신인데도 스스로 외면할 만큼, 우리는 사랑받지 못하는 고통을 두려워한다. 적절한 사람이 되려고 자꾸 남의 기준과 견주어본다. 남과 비교해 내 통증 점수를 가늠하다 보면 통증을 표현하는 것보다 차라리 #마음고름을 꼭 매어두고 사는 게 편하게 느껴진다.
#마음고름: 마음속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단단히 해둔 다짐. ‘고름’은 ‘옷고름’의 준말 로 보는 견해가 많다.
마음고름을 단단히 매고 연약한 속살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면 삶이 단정하게 느껴진다. 대화할 때도 힘든 일을 털어놓지 않는 사람이 좀 더 어른다워 보인다. 나도 사람들에게 진짜 마음을 드러내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따로 두고, 상대방이 불편해하지 않을 모습으로 나를 꾸며냈다. 문제는 혼자 있을 때조차 괜찮은 척을 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타인의 시선을 내면화해 고통을 재단하는 습관 때문에 자주 ‘이게 힘들어할 일일까’ 하고 의심했다. 의심하는 그 순간, 감정은 해소될 기회를 잃었다.
내 동거인인 진은 잘 웃고 잘 운다. 웃고 우는 데 ‘능숙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처음 알아갈 때는 그런 그가 신기하고 당황스러웠다. 그는 마치 감정에 몸을 입혀 만들어진 사람 같았다. 기쁠 때 냉소적이고 슬플 때 덤덤한 척하는 나와는 반대였다.
만약 내가 전에 힘들었어. 근데 지금 행복해? 그럼 난 행복해!
그렇게 말하는 진을 보며 점차 ‘현재를 사는 사람이란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됐다. 울고 웃을 줄 아는 능력이 지난 일에 얽매이지 않는 힘이 되는 것이었다.
사람은 자기 마음의 문지기다. 스스로 통과시켜주지 않으면 감정은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머문다. 제대로 느끼고, 표현하고, 일찍 보내줘야 병이 되지 않는다. 부정적 감정을 쉽게 통과시키지 않는 마음은 긍정적 감정 앞에서도 문을 활짝 열지 못했다. 그래서 기쁜 일이 있어도 온전히 느끼기 어려웠다. 억지로 겉웃음을 웃고, 혼자 있을 때 눈물이 나도 늘키면서 속울음(시원하게 울지 못하고 꿀꺽꿀꺽 참으면서 느끼어 울다)을 울곤 했다.
지금은 불편한 감정이 들면 1분이라도 감정을 소화할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힘을 빼고 숨을 쉬며 그 감정을 바라본다. 복받치면 저항하지 않고 운다. 통증이 느껴져도 감정이 마음을 지나가도록 놔둔다. 참는 게 아니라, 내가 내 편이 되어 그 과정을 함께 해낸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아파. 아픈 걸 잘 느껴보자. 그러는 동안 좀 더 아플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 통증은 내 거야. 받아들여주면 곧 사라질 거야.’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를 문장으로 반복해서 말해보기 도 한다.
‘나는 지금 ○○○에게 내 수고를 인정받지 못해서 화가 난다.’
반복하고 또 반복하면서 감정은 점점 옅어진다. 내가 #풀쳐생각을 하는 방법이다. 자신을 마주할 때만은 마음고름을 풀어버리고 보호받지 않는 맨살을 어루만지는 방법.
#풀쳐생각: 맺혔던 생각을 풀어버리고 스스로 위로함.
내가 관대한 문지기가 되기를 바란다. 속마음을 보이지 않겠다는 다짐이 숨 쉬기 불편할 만큼 마음을 조이지 않기를, 풀쳐생각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나 자신이라는 걸 기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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