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묘보살과 민바람 Feb 28. 2024

ADHD 사람의 연애와 고통

나는 상대를 잘 살피지 못하는 편이다. 그걸 알기에 의식적으로 상대의 몸과 마음 상태를 헤아리려 노력하는데, 조급함과 아집을 떨치지 못했을 때 상대를 깊이 들여다보지 못하게 된다. 특히 억울함에 취약해서, 억울함을 풀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지면 뻔히 보이는 결과도 잘 볼 수 없게 되곤 한다. 지금은 전처럼 곧바로 실행에 옮기지 않고 상황을 보며 기다릴 줄도 알지만, 기다린 동안 쌓인 감정이 엉뚱한 때에 터져 오히려 좋지 않은 끝을 맞곤 한다.     


그렇게 소중한 관계를 잃고 나면 깊이, 오래 아프다.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괴롭다가 이런 나와 함께하지 않는 게 그 사람에게 좋은 일이라는 데서 이상한 위안을 찾는다.    

 

연애를 할 때마다 말실수가 문제였다. 나만의 맥락으로 오해받을 만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나 조급해질 때 상대방의 말을 못 듣고 흘리는 것, 지금은 때가 아니다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한순간 상황 판단을 놓쳐 마음에 있는 말이 나오고야 마는 것. 공감능력이라기보다 공감유지능력의 한계. 아무래도 충동성이고, 그래서 어느 정도는 ADHD의 영향을 받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나이기에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은 사무치는 일이다. 반추 사고가 많은 나는, 결과를 만들어낸 행동을 끝없이 자책해도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그 일을 하지 않았으면 누렸을 다른 결과를 생각하는 일을 멈출 수 없다.      


관계 단절을 겪을 때면 살기 위해 생각한다. 그게 내 한계였다는 것을, 내가 나인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아무리 그 사람과의 관계가 소중했어도, 아무리 내가 싫어도 나마저 나를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내가 아무리 부족한 사람이라 해도 누군가에게 맞추려 자기검열로 일상을 점철시켜 사는 건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려 노력한다. 애쓰지만 쉽지는 않다.

 

빠져나오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린다. 마음의 빈자리에 모르는 사이 사람들이 들어오는 일은 마치 정해진 일처럼 자연스럽지만, 그 자리에서 그 사람을 끌어내는 일은 고통스럽다. 나는 사람을 무척 까다로운 기준으로 좋아해서, 그 기준을 통과해 내게 들어온 사람은 그만큼 마음 전체를 장악해 있다.     


일이 이렇게 되기 전, 받고 있던 상담 끝 무렵에 상담 선생님께서 걱정스런 말씀을 하셨었다. 내 관계지향적인 면, 사람에게 크게 좌우되는 면 때문이다. 너무 많이 좋아할 때는 누구라도 그렇게 되지 않나 생각하면서도 어떤 면을 걱정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나는 사람의 전체를 사랑하고야 만다. 이해하지 않아도 좋을 면까지 이해돼 버린다. 장점일 수도 있지만, 나를 혹사하면서도 헤어나오지 못한다. 미워하지 못한다. 


그리고 결국은 그분이 걱정하신 그 면이 화근이 되어 관계가 부서졌다. 이 관계가 망가지는 것을 무척 두려워했기 때문에. 나에게 너무나 크고 귀하고 소중한 관계였기 때문에. 두려움에 의한 행동은 그 두려운 결과를 부른다. 그걸 뒤늦게 깨달았고, 그래서 두려움을 던지고 행동에 나섰을 때는 뒤늦은 타이밍으로 관계를 나락으로 밀어버리고 말았다. 타이밍을 잡는 능력은 공감능력과 상황판단능력에서 나온다. 감정이 판단을 앞질러 버릴 때 문제는 반복된다. 지난 연애를 통해 봤으면서도 피해 가지 못한 걸 보면 사람이란 같은 잘못을 반복하며 사는 존재일 수밖에 없는가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를 돌보고 돌봄 받으며 긴밀히 소통하는 관계를 오랫동안 꿈꿨다. 그렇게 평생을 함께하는 관계 속에 있고 싶었다. 물론 ADHD가 있다고 해서 연애나 결혼 생활을 안정적으로 할 수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아니란 걸 보여주시는 분들이 많으니까. 다만 나의 어떤 언행으로 인해 부서진 것이 분명한 관계의 상처 속에서 회복되는 일은 언제나 무척 어렵다.


나를 나로도 충분하다 생각하며 채울 수 있는 상태, 누군가에게 깊이 사랑받지 못하는 채로도 충분한 상태에 이른다면 이 모든 게 괜찮아질 수 있을까. 알고 싶다. (그런데 인간에게 그런 게 가능하긴 한 걸까?) 이렇게 아플 수 있을까 싶었던 고통들도 결국엔 지나갔었다는 것을 계속해서 떠올릴 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