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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장면들》작가 인터뷰 내용

'문학, 나눔' 대담에서

by 묘보살과 민바람

지난 2월 22일 대구 구수산도서관에서 2024년 ARKO 문학나눔도서 선정 작가들이 시민들을 만나는 '문학, 나눔' 행사가 있었습니다.


저는 대담 1부 행사에 송현지 평론가님의 사회로 최휘웅 작가님, 박서련 작가님과 함께 참여했습니다.

지난 번에는 간략하게만 후기를 전했는데요,


늦었지만 그때 이야기 나눈 내용을 공유드립니다.

(질문은 송현지 평론가님께서 작성해 주셨고 긴 질문은 일부 잘라서 올립니다.)



[공통 질문]


1. 워밍업 차원에서 이번 작품(책)을 중심으로 세 분의 작가님들께서는 어떤 세계로 독자분들을 적극적으로 초대하고 싶으셨는지 간단히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책의 부제로 제가 처음 생각했던 건 ‘삶을 위한 우리말 처방전’이었습니다. 우리말과 삶 두 가지에 초점을 뒀는데요, 먼저 순우리말이라면 예쁘지만 고리타분하다는 인상이 있는데, 사실은 다같이 알고 있다면 의사소통면에서도 경제적이고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말이 많다는 점을 알리고 싶습니다. 또 한 가지는 낱말이 메시지 전달을 위한 수단만이 아니라 그 낱말 자체의 힘으로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생각이었어요.


해결되지 않은 마음의 문제들로 일상이 힘들고 어떤 해답이 필요한 순간에 굵직굵직한 마음치료도 있지만, 낱말이 품고 있는 뜻과 소리의 말맛을 느낌으로써 이 조각조각으로 마음의 빈틈을 메우기도 하고, 헤진 마음을 군데군데 기워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 거창하게 말씀드리면 어학과 문학이 어우러지고, 사전과 삶의 경계를 허무는 글을 쓰고 싶었어요. 내 마음을 위로해주고 세상을 보는 눈을 바꿔주는 좋은 낱말들을 자신의 어휘사전에 넣음으로 해서 지금 머문 자리에서 한 걸음 나아가는 기분을 느끼게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2. ‘다른 세계로의 초대’라고 이 자리에서 우리가 쉽게 말을 해서 그렇지, 사실상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고 여겨집니다. 이를 위해 작가님마다 고민하신 방법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독자분들이 작품(책)을 읽으며 기존의 생각과 상상의 경계를 넘을 수 있도록 어떤 방법(장치/형식/도구)을 사용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때 특별히 유의하시거나 고민하신 부분이 있다면 함께 이야기해주셔도 좋겠습니다.


제 경우는 순우리말 낱말 소개를 제 삶의 경험이나 깨달음과 엮어서,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그 낱말의 뜻이나 특징 중에 우리 삶의 어떤 점과 닮아있는 부분들을 짚어가면서 글을 풀어갔습니다. 읽는 분들이 읽고 나서 새 낱말도 알게 되고, 다친 마음이나 막혀 있는 생각에 대해 조금 숨통이 트였다는 느낌이 들기를 바랐어요.


처음에 저 자신을 위해 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는 글 꼭지 하나에 몇 개의 순우리말을 넣는지 딱 정하지 않고 유연하게 썼습니다. 표제어는 1-2개를 두었지만 어떤 때는 여러 개를 소개하기도 했어요.


글들을 책으로 엮으면서 고민됐던 점 중 하나는, 독자님들이 글을 읽다 중간에 모르는 낱말과 그 뜻이 주석으로 들어가는 게 거부감이 들진 않을까 하는 거였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순우리말을 더 소개하고 싶은 욕심도 들어서, 글 하나에 순우리말 몇 개를 넣어야 할까?로 편집자님과 많이 소통했습니다.


처음에는 에세이와 순우리말의 무게를 5:5 정도로 생각했다가, 그렇게 하면 학습서 느낌이 날 수 있고, 많이 소개하는 것보다 순우리말은 이야기에 고명처럼 들어가는 편이 오히려 많은 분들께 토박이말의 매력을 알리는 길일 거라는 편집자님 의견에 동의해서 표제어 2개로 이야기를 엮게 됐어요. 대신에, 순우리말 중에 우리말이라서 특별히 뜻을 설명하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짐작할 수 있는 낱말들도 있는데, 이런 걸 그냥 느껴보는 경험도 드리고 싶었어요. 이런 건 뜻 소개 없이 글에 녹여넣거나 주석으로만 뜻을 넣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주석의 위치도 세심하게 정했는데, 글을 읽다가 바로 옆에 있는 뜻을 보고 돌아와 이어 읽을 수 있도록 주석을 페이지 하단에 넣지 않고 중간중간 본문 옆에 걸쳐지는 형식으로 넣었습니다.



3. ‘다른’ 세계로의 초대는 어떻게 보면 지금의 세계를 만족스럽게 여기지 못하는 것과 연계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작가님들이 어떤 것을 문제적으로 바라보며 이번 작품(책)을 쓰셨는지 이야기 나눈다면 전달하시고자 하는 바가 조금 더 분명해지리라 여겨집니다. 이와 더불어 현실의 어떤 점들이(예컨대 사회문제, 혹은 우리의 태도 등) 우리의 생각과 상상력의 확장을 막는다고 생각하시는지도 함께 이야기 나눠보고 싶습니다.


<낱말의 장면들>을 쓰게 된 문제의식이라고 하면, 쓰임새가 좋은 말들이 사어에 가깝게 되어 있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먼저였어요. 제가 언어 자체를 좋아해서 여러 외국어를 건드려봤는데요, 정말 좋아서 취미처럼 습관처럼 익히기도 했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뭐라도 능력을 높여야한다는 조바심도 컸습니다. 그런데 순우리말 사전을 봤을 때, 충격을 받았어요. 살려 썼을 때-소통이 된다고 할 때 굉장히 효율적이고 경제적이고 말맛이 아름다운 순우리말들이 이렇게 많은데 소수의 연구분야에 머물고 누가 가르치지도 않고 배우지도 않는다는 게 아까웠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됐지? 싶었어요. 제가 아무리 익혀도 상대방이 모르면 편하게 쓰기 어렵잖아요. 잘난 척하는 느낌이나 소통을 단절시키는 느낌을 줄 수도 있고.


이런 상태를 바꾸고 싶을 때 걸림돌은 자신의 목소리를 과소평가하는 것, 내가 뭔가를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내 글이나 말이 시장에서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요. 브런치에 처음 순우리말로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자기만족에 가까웠어요. 사람들이 순우리말에 관심이 있을까? 생각했죠. 그런데 책으로 나오고 후기를 써주시는 독자님들의 대부분이 책에 실린 낱말을 활용해서 글을 써 주시는 걸 보고 놀랐어요. 변화가 생길 수 있구나 하는 실감이 들었습니다.


또 이건 소수자가 자기 언어를 찾을 때 특히 그렇다고 생각하는데요. 퀴어소설이 문학의 주류에 들어서는 걸 보면서 실감했어요. 10대 20대 때, 퀴어이야기를 정말 쓰고 싶었는데 당연히 서브컬처에서 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2019년에 박상영 작가님이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으로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으셨을 때 정말 신기했고, 그 후의 흐름이 지금도 신기하게 느껴져요. 각자 고립된 채로 포기하면 자신만의 욕구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한 사람이 목소리를 내고 공유하기 시작하면 ‘아 이게 나만의 생각이거나 틀린 것이 아니구나’ 하고 반향이 일어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개별 질문]


민바람 작가님 『낱말의 장면들』


1. 이 책에서 인상적인 것은 ‘낱말’을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두기보다는 이 낱말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그 의미대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하는가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일 텐데요. 그래서 작가님의 삶이 책에는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새로운 낱말을 소개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에게 필요한 언어’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라고 여겨졌는데요. 마지막 글인 <자기 사랑이 어려운 순간>에서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다 “내가 나의 양육자 되기”라는 명징한 말로 생각이 정리되는 순간 많은 것이 달라지는 장면이 제게는 크게 와닿았습니다.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언어의 힘은 무엇인지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에게 언어의 힘이란 비유적으로 말씀드리면 형체가 없는 자신에게 육체와 설 땅을 주는 것입니다. 출력과 입력면으로 나누어서 말씀드릴 수 있어요.


- 출력면에서, ‘말과 글로 나를 표현’한다는 건 자신의 생각과 느낌에 형태를 주는 것입니다. 그게 분명히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자 허락되는 것임을 보게 되고, 나와 그것을 분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과정이 돼요. 예를 들어 저는 어려서부터 감정을 억누르는 습관이 있었고, 어떤 증상들이 저를 굉장히 괴롭히는 걸 절절히 느꼈지만 그것의 이름을 찾지 못하고 헤맨 시간이 길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보듬어주기보다 많이 미워하고 책망하면서 살았는데, 전작인 ADHD 에세이를 쓰면서 그 모든 과정을 글로 정리한 뒤에는 다른 삶을 살게 됐어요. 저의 모든 감정이나 특징, 면면을 모두 인정하고 수용하게 됐고, 감정이 나를 괴롭힐 때는 혼자서라도 반드시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는 걸 알게 돼서, 이제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감정이 있을 때는 책에 적은 것처럼 꼭 문장으로 소리 내서 말해봅니다. ‘나는 누가 나에게 어찌어찌해서 지금 억울하다/서운하다/찜찜하다..’ 그러고 나면 반드시 가벼워져요.


- 입력면에서, 새로운 말과 글을 받아들이는 것은 새로운 그릇을 갖는 일입니다. 이 그릇은 이미 존재하는 사물이나 개념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 그것들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등을 보여주는 역할을 해요.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말과 글을 배우면 자기자신을 새로운 방식으로 검토하게 되고 그게 자신을 변화시킵니다. 한편 새로운 말과 글은 물처럼, 내가 가진 그릇을 씻어주기도 합니다. 부정적인 말들을 오래 들어와서 뇌의 편도체가 과잉활성화되는 사람이라면 다른 시각을 보여주는 말과 글을 많이 접하면서 헹궈낼 수 있어요. 언어는 경험이기 때문에 신경가소성을 통해 뇌의 신경계를 바꾸도록 자극합니다.


그런 면에서 언어는 저를 세상에 발붙이게 하면서도, 세상의 부정적 영향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도구입니다.



2. 이번 책에서 작가님께서는 새로운 낱말들을 많이 소개해주시면서 <낱말 모음>을 책의 뒤편 부록으로 담고 있기도 한데요. 앞서 ‘언어의 힘’에 대한 질문을 드린 것과 어쩌면 겹치는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작가님께서 생각하실 때 이렇게 ‘몰랐던 낱말을 알게 되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준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름이 있다는 건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고 누군가가 이미 그런 생각을 했다는 뜻이에요. 생각지 못했던 것에 이름이 붙어있는 걸 알게 되면서 그 개념이 내 삶에 어떤 가치를 더해줄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돼요. 좋은 낱말은 생각을 확장시켜주고 정서적으로 힘이 됩니다.


예를 들면 ‘개부심’이라는 말은 세 가지 뜻이 있는데요, 첫 번째는 ‘큰 비가 명개(갯가나 흙탕물이 지나간 자리에 앉은 검고 보드라운 흙)를 다시 씻는 것’, 두 번째는 ‘엎친 데 덮친 격’, 세 번째는 ‘아주 새로워지거나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 세 뜻의 연결이 오묘하고 의미있다고 저는 생각했어요. 우리를 흔드는 큰 사건이 생기고 또 한 번 큰 사건이 겹치면 우리는 상황이 부정적으로만 흘러간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그것은 있던 것을 부수어내고 새로운 틀을 짜는 과정일 수도 있는 거죠.


단 세 글자 낱말일 뿐이지만,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전해주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내일은 《낱말의 장면들》을 바탕으로

'내 마음을 위한 우리말 처방전'이라는 제목의 줌 강연을 합니다.




참여해 주시는 분들께 나를 살리는 말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자신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나아갈 길을 찾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무료 강연이고 책 내용을 바탕으로 하지만 책이 없어도 충분히 이해 가능한 내용이니

부담 없이 함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시는 6월 26일(목) 오후 7시 ~ 9시입니다.


* 행사 신청 링크:

https://www.gimpo.go.kr/reserve/webEtcResveList.do?key=114&rep=1&etcProgramSection=EVENT&searchKrwd=%ED%92%8D%EB%AC%B4%EB%8F%84%EC%84%9C%EA%B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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