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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세요?” 성폭력과 나잇값

[5화] 성폭력은 젊은 여성에게 일어난다는 통념

by 묘보살과 민바람

나를 성추행한 가해자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내려던 때, 처음 상담을 요청한 곳은 한 여성단체였다. 홈페이지에는 ‘먼지차별’(사소해 보이고 눈에 잘 띄지 않는 일상 속의 미묘한 차별적 언행))’의 개념을 알리는 큰 배너가 움직이고 있었다. 여기라면 2차 가해 걱정은 할 필요 없이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겠다는 인상을 받았다.


내가 쓴 내용증명의 내용에서 추후 문제가 될 만한 것이 없는지 검토받고 싶었는데, 마침 단체 홈페이지에 피해자 무료 법률 상담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눈에 띄었다. 전화를 걸자 친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2년 전쯤 성추행을 당했는데요…”

나는 상담사에게 사건 경위를 대강 설명했다. 그런데, 돌아온 질문은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20대세요?”

그 말에 심장이 덜컹했다.

“아뇨… 저 올해 마흔인데…”


안 그래도 나이에 맞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자격지심이 있었던 터라 나도 모르게 자책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니까… 20대 초반에도 성추행을 당했는데 아무 표현 못 하고 상대방이랑 계속 잘 지냈거든요. 그건 어려서 그렇다 치는데, 30대 후반이 되어서도 제대로 대응을 못 했다는 게… 스스로에게 너무 화가 나고….”


“결혼하셨어요?”

또다시 생각지 못한 질문에 당황했다.

“아니요.”

“아직 안 하셨고.”

사실 나는 결혼을 ‘아직’ 안 한 게 아니라 비혼이었다. ‘그런 질문들이 왜 필요하지?’라는 생각이 지나갔다. 하지만, 그런 것을 하나하나 따져 말하기도 뭐해서 그냥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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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628487304.jpg (출처=pixabay)


상담사는 법률 상담을 신청하려면 전화로 예약하고 지정 상담소에 내방하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또, 너무 그렇게 자책하는 생각에 빠져있으면 본인에게 좋지 않다는 말로 통화를 마무리했다. 나는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성폭력은 피해자의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전화를 끊고 나자, 당황스럽고 찜찜한 마음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건 아닌데.나이와 결혼 여부가 성폭력 상담에 어떤 도움을 주는 정보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2년 동안이나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얘길 듣고, 어리숙하니 20대일 거라고 판단한 걸까? 아니면 성폭력은 매력적인 젊은 여성에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한 걸까. 배우자가 없기 때문에 내가 성추행을 당한 거라고 보는 걸까?


상담사의 의도는 알 수 없지만, 정서적으로 민감한 상태에 있는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하기에 섬세하지 못한 질문인 것은 분명했다.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에 대한 신뢰를 잃고 싶지 않았기에, 내 생각을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용기를 내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다른 상담사가 받았다. 나는 건의할 게 있다고 운을 뗀 후, 차분하게 방금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왜 갑자기 20대냐고 물으셨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분도 진심으로 저를 위해 주시는 게 느껴져서 감사했는데, 안 그래도 자책하는 피해자들이 많을 테니 좀 더 신경을 써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아… 그러셨군요…. 성폭력은 젊은 여성한테만 일어나는 게 아닌데, 편견이 작용한 것 같네요. 마음이 불편하셨겠어요. 이 점은 제가 상담사들과 공유해서 개선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화를 받은 분은 당황하거나 나를 예민한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진심으로 더 나은 방향을 찾으려 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한 번 더 용기를 내어, 불필요한 맥락에서 결혼 여부를 묻는 게 차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했다. 상담사는 이번에도 활짝 열린 자세로 얘기를 들어주고, 받아주었다.

“그렇군요. 이렇게 말씀을 해 주시니 저희도 한 번 더 돌아보고 배울 수 있어서 좋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통화 후, 답답했던 마음이 풀렸다. 내 생각을 말하지 않고 넘겼다면, 상처에 또 다른 작은 상처들이 덧입혀진 채 지내게 됐을 것이다. 그리고 부당함을 느끼면서도 입을 다무는 나 자신이 또다시 무력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나잇값’이라는 편견


영화 〈69세〉(임선애 감독, 2019)에서 주인공 심효정은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사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그러나 가해자에 대한 영장은 기각된다. 29세의 가해자가 69세의 피해자를 강간할 개연성이 충분치 않다는 게 이유였다. 영화는 노인이 겪는 사회적 편견과 무시, 먼지차별을 조용히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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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69세〉(임선애 감독, 2019)에서 주인공 심효정(예수정 분)은 관절이 좋지 않아 입원해 물리치료를 받던 중 간호조무사 이중호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심효정이 그를 고소하자 담당 형사는 무심결에 말한다. “(이중호가) 친절이 과했네.” 영화는 노인 여성 성폭행 사건에 대한 한국 사회의 무지와 편견을 생생히 보여준다. 영화 스틸컷 중에서.


성폭력은 젊은 여성에게 일어난다는 생각은 편견이다. 성폭력 피해는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50대도, 60대도, 70대나 80대도 성폭력을 당한다. 내가 만난 50대의 상담사 선생님도 최근 길에서 여러 차례 성희롱당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68세의 내 어머니도 일터에서 성폭력 위험과 싸우는 게 일상이다. 그리고 성폭력에 곧바로 적절히 대응하기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고소 문제를 고민할 때 찾아간 한 상담소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상담사는 내가 살아오며 겪은 성추행 얘기를 다 듣더니 이렇게 말했다.

“확실히 나이에 비해서 상황에 이끌려가는 면이 있으시네요.”

생각지 못하게 나를 평가하는 말이 나오자 나는 깜짝 놀랐다. 마치 내가 나이가 많은데도 야무지게 행동하지 못해서, 제대로 판단하지 못해서 성추행이 일어났다는 뜻처럼 들렸다.


‘나이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은 개인을 억압하고, 그런 기준을 성폭력 피해 상황과 연결 짓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 또, 성폭력 피해를 고백하는 상황에서 ‘상황에 이끌려가는 성향’을 평가받는다는 것은 피해의 책임을 피해자 쪽에 지우는 것으로 해석되기 쉽다고 느꼈다.


앞서 언급한 영화 〈69세〉에서 자신을 도와달라는 심효정의 부탁을 거절한 수간호사는 안쓰러운 마음에 무심코 말한다.

“에휴, 조심 좀 하시지….”

그러자 심효정은 묻는다.

“조심요? 어떻게요?”


나는 이후에 그 상담사에게 내가 들은 말이 상처가 됐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상담사는 실수를 바로 인정했다. ‘-답다’ 또는 ‘-답지 않다’라는 기준이 누군가를 평가하는 상황에서 쓰일 때 결코 좋지 않은 말임을 알고 있는데도, 의도와 다르게 말이 나왔다고 했다. 이 일로 상담사에 대한 신뢰가 더 깊어졌고, 2년 넘게 상담을 지속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성폭력은 피해자 때문에 발생하는 게 아니다


사실 성폭력을 피해자가 몸가짐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해서, 철저히 대응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로 여기는 통념은 아직도 우리 안에 조금씩 스며있다.


‘피해자의 노력으로 피할 수 있었을 일’이라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출 때, 우리는 심판자가 된다.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일을 겪었다는 안타까움에서 출발한 생각이라고 해도, 그것은 피해자에게 다시 한번 깊은 상처를 준다.


‘나이가 많으면 성추행을 잘 당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피해 사실을 지워지게 만들고, ‘나이가 많을수록 성추행에 잘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피해를 피해자의 탓으로 만든다.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편견이 성범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서 피해의 원인을 찾는 사회 통념을 더욱 공고하게 만든다.


내 안에도 그런 편견이 없지 않다. 그래서 내 잘못이 아닌 일에도 자책하고 자격지심을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각각의 성폭력은 저마다 다른 관계와 복잡한 상황 조건 속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성폭력은 특히 가해자가 자신의 성별 권력과 위계를 확인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성적 매력’이 성범죄를 일으킬 것이라는 생각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성폭력 피해 수기와 대응 방법을 담은 책 『허들을 넘는 여자들』(이야기모란단, 2022)에서도 “성폭력은 누군가의 어떤 특징 때문에 일어나는 게 아니라, 가해자가 자기보다 취약한 존재를 선택하고 상대를 폭력으로 제압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썼다.


‘나잇값’이라는 사회적 편견이 성폭력 문제에 얽힐 때, 우리는 정말 봐야 할 것들을 보지 못하게 된다. 성폭력과 관련한 인식에서 깨어 있어야 할 성폭력 상담사들의 말속에서조차 이런 편견을 발견한 것은 무척 아쉬웠다. 하지만 그에 대해 이견을 꺼내고 공감받는 과정에서 내 안에 스며있던 편견 역시 덜어낼 수 있었다. 익숙하다는 이유로 의심 없이 답습하는 통념들이 얼마나 개인과 사회를 억압하는지도 여실히 체감했다.


지금은 전보다 좀 더 민감하게 감지한다. 얼핏 사소해 보이는 편견이나 통념들이 내 숨을 막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전보다 많은 순간, 내 생각을 표현하기로 결정한다. 그런 경험들을 통과하며 나는 점차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설사 말해서 당장 달라지는 것이 없어 보여도, 내 목소리를 냄으로써 나 자신은 분명히 변화하고 성장한다는 것. 그리고 그게 더 많은 것을 바꿔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필자 소개] 민바람. 자신의 경험으로 사회 구조를 비추는 글을 쓴다. 퀴어, 여성, 신경다양성, 빈곤, 지역 문제의 교차성 탐구에 관심이 많다. 『나는 ADHD 노동자입니다』(2025년 재출간), 『낱말의 장면들』(2023) 등을 출간 후, 퀴어 소설을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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