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달라 힘들다고 느꼈던 건, 남들이 사는 대로 살아서는 행복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닐까.
버티면 나아질 거라는 말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마음으로 심리센터에도 다녔다. 상담선생님은 내가 기대치를 낮추고 불완전한 내 모습에 만족하는 기술을 늘리기를 바라셨다. 나는 다닐수록 오히려 사람에게 의지만큼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한번 바닥을 친 자존감은 천적 같은 환경 속에서는 올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 천적. (유튜버 신기율 선생님의 '마음찻집'에서 들은 표현이다.) 동식물이 그렇듯이 사람도 자신의 특징에 따라 잘 살 수 있는 환경이 있는 것이다. 나는 타인의 시선에 적나라하게 노출되고 즉각적으로 평가되는, 나에게는 쥐약인 환경 속에 나를 몰아놓고서 서둘러 잘 자라기를 자신에게 독촉했다.
비효율의 극치구나. 아까웠다. 내가 노력하면 하는 만큼 이루어낼 수 있는 분야가 분명히 있는데. 그것은 그대로 두고서 열 배를 노력해야 겨우 조금 나아지는 종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동안 투자한 시간과 돈과 노력, 맘고생이 아까울 일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뇌까렸다. 나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없는 것을 만들려 하는 짓은 그만두고 내 안에서 흘러넘치는 것들을 조금씩이라도 사용해 보고 싶다.
그간 글을 쓰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자신을 필요 이상으로 몰아세우고 있을 때 나오는 글은 코푼 휴지 같은 감정의 쓰레기들뿐이었다. 오랫동안 내 글은 다 거기서 거기였다. 이런이런 점은 나아졌다, 이런이런 점은 노력해야겠다,에서 시간이 갈수록, 점차 이만큼이나 노력했는데 왜 극복이 안 되지, 뭐가 문젤까, 안되는 건 안되는 거야. 그런 내용들이 어휘만 조금씩 달라진 채 비공개 게시판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그것을 깨달은 날에 나는 글을 써온 모든 블로그를 삭제했다. 스스로에게 질려서 더는 아무것도 쓸 수가 없었다.
그 후에도 이 뇌까림을 몇 년이나 반복하고 나서야 나는 이 일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있었다. 희망고문이 이렇게 무섭다. 점차 편해지겠지 하는 생각 말이다.교사로서의 강점도 많았기에 최고의 교사처럼 느끼는 순간도 많았고, 부족했던 점도 처음과 비교하면 큰 발전이 있었다. 그런데 앞으로도 그런 무리를 해야 내가 만족하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 글을 쓸 정신적 에너지를 지켜내기 어려울 거라는 사실은 자명하고도 자명했다.
어떤 일은 마음을 알고 몸이 나서서 결정해 주기도 하나 보다. 다행스럽게도(?) 작년부터 작은 스트레스에도 심한 두통이 오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마음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지 말라고, 제발 좀 그만!, 그만 좀 해달라고!! 몸이 시위를 하는 것처럼. 이런 상황에 가져다 쓰기에는 우스운 말이지만 일에는 모두 때가 있다. 이렇게 긴 시간 준비운동을 하고 나서야, 나는 현재의 경제력과 관계없이 생활력을 잃는 데에 조바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글쓰는 일과 다른 직업(전업 개념의 직업)을 병행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도 분명히 알게 되었다.
패기는 닳아 없어졌지만 깊어진 것이 있다
나는 어리석다. 뻔한 것도 부딪혀 봐야만 안다.거듭거듭 부딪히고도 '그래도 혹시…' 한다. 선택의 기로마다 결국 상황유지를 택했던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좀 더 일찍 마음을 정리했더라면 이렇게 몸과 마음이 축나지는 않았을 테니. 나는 끝까지 가는 내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 같다. 끝장을 보고 훌훌 털고 싶었다.
어쩌면 나의 이런 끈기도 '버티기'를 미덕으로 여기고 가르쳐온 한국사회의 분위기를 착실히 흡수한 순진함 때문일 것이다. 자신을 잘 알고 버틸 곳에서 버텼더라면 끈기였겠지만, 나의 깡다구는 자신을 희미하게 만들어가는 미련한 오기가 아니었나 싶다. ‘강의년수로 딱 10년만 채워보자.’ 라는 생각과 ‘박완서 작가가 등단한 마흔 전에만 등단하는 거야. 글 쓰는 데에 늦은 나이는 없어.’(알고 보니 이것은 수많은 ‘소싯적 문학소년소녀’들의 핑계였지만) 하는 생각을 함께 갖고서 내 가능성을 지켜보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다.
의미없는 경험이 어디 있을까? 특히 글을 쓰는 데에 자산이 되지 않는 시간이 어디 있을까. 일을 끌어안고 자신과 싸우는 동안 순수한 패기는 닳아 없어졌지만, 인간을 이해하는 눈은 깊어졌다. 그렇게도 치열하게 지켜본 나 자신과 내가 만난 사람들의 각양각색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귀한 자산이다.에고가 강했던 나는 부서지고 깨지며 나를 객관적으로 보게 됐다. 그리고 나에 대한 사용설명서를 쓸 수 있을 정도로 나를 속속들이 알게 됐다. 그래서 가장 커다랗게 남은 마음은, 내가 있는 힘을 다해, 말 그대로 힘이 더 남지 않을 때까지 부딪혀 봤다는 만족감과 홀가분함이다.
사람마다 결이 있다. 나는 나를 발전시킬 수 있지만, 내가 가진 결대로 살 때 가장 편안하고 행복하다. 어떤 사람은 타고나지 못한 부분을 굳이 자책하거나 미안해하지 않고서도 교사 생활을 할 수 있었겠지만, 그것은 나에게는 되지 않는 일이다. 내가 어디까지를 할 수 있는지 알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보았으니 이제 나 자신에게 더 친절하게, 적극적으로 나답게 살면 되는 것이다. 글을 쓰는 일 또한 십 년쯤, 아니 오 년도 못 되어 아무리 노력해도 늘지 않는다며 허망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허망해할 수 있을 만큼 한번 해 보기를 바란다. 그렇게 하지 않은 채 모든 시간을 보내버린 다음이, 진짜 후회할 때라는 것을 안다.
나 사용법 대로
잘할 수 없는 일을 잘할 수 없다고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글 쓰는 3년 백수로 살기로, 일을 위한 일은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서도 내가 쌓아온 스펙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 공고가 나면 며칠 밤을 고민한다. 얼마 전에는 하필 집에서도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인 데다 대체인력 채용이라 조금 늦은 나이에도 들어가기에 딱 좋은 자리가 있었다. 고민 끝에 서류를 정성들여 써놓고도 접수하지 않았다. 외국인을 관리하는 사무직이었다. 안 해 본 종류의 일도 아니었고 자기계발에도 좋은 자리였지만, 그렇기에 더 잘 알 수 있었다. 나는 나와 관계된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또다시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할 것이고, 그로 인해 보람을 넘어서는 병과 스트레스를 얻을 것이라는 것. 계약기간 내내 이번에도 글을 택하지 않은 것을 후회할 거라는 것.
참으로 쿨하지 못하게도 나는 그 후 일주일 넘게 속이 상했다. 꼭 그 일이 내가 했어야 하는 일처럼 느껴졌고, 그 건물 앞을 지날 때마다 마음이 괴로웠다. 이렇게 우유부단하고 미련이 덕지덕지 붙은 게 나인 것이다... 비슷한 상황이 올 때마다 나는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할 것이고, 기회를 흘려보낼 것이고, 속상해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 사용법을 잘 알고 있다. 불나방처럼 타죽을 곳을 향해 날아가는 욕심에 대해서. 마음의 우선순위를 모른 체 하는 버릇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일이 모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다만 그 일이 삶을 탈탈 털어서라도 겪어보고 싶은 일일 때, 불 속으로 날아들어가는 것이다.
글을 쓰는 하루를 보낸다. 설거지를 하며 오디오북을 듣고, 시가 될 조각을 적는다. 자기 전에는 내가 오늘 무엇을 읽고 썼는지 기록한다. 내일 하루도 그러기를 바란다. 더 쓸 것이 없을 만큼 나의 무늬를 다 그려낸 뒤에, 남은 일들은 그 뒤에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