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의 변용

D-121 마리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1

또 한 해가 시작되고 있다. 지난 12월에 무리한 스케쥴을 소화하느라 감기에 걸렸다. 피곤하기도 하고, 감기약 먹으면 졸립다는 핑계로 글쓰기를 미뤘다. 오랜만에 글을 쓰려니 쓰기가 싫다. 역시. 일상의 꾸준한 노력은 쉽지않다.

지난 밤 꿈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즐겨 꾸는 꿈이 2종류가 있다. 하나는 고등학교때 시험보는거나, 학교가기 싫어서 지각하는 꿈이다. 두번째는 군대 다시 재입소하라는 통보를 받는거다. 분명 제대해서 예비군까지 끝난거 아는데 병무행정 실수로 다시 입대하라는 거다. 오늘은 고등학교 꿈이다. 교실을 찾지못해서 수십 바퀴를 돌다가 결국 수업을 2개가 제끼게 된다. 일어나면 머리가 띵하다. 세월이 이렇게 흘러도 난 그 시절이 그렇게 싫다.

2

시치프스의 형벌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돌을 굴려서 언덕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독수리에게 쪼이게되어, 돌에서 손을 떼는 순간, 돌은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다시 처음부터 굴려서 올라가기를 반복한다. 의미없는 반복이 시작된다.

내 일상에 ‘의미’ 없는 반복적인 패턴에서 탈피하고 싶다. 작은것부터 시작해보자. 인스타그램을 한지 4,5년 되었다. 하나말다 반복하고 있다. 재미가 없다. 남들처럼 여행사진 올리고, 일상사진을 올려도 봤다. 재미가 안 느껴진다.

책상에 덩그러니 놓여져있는 책 한권이 눈에 들어온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라는 심리소설이다. 그녀의 일생을 심리적인 측면에서 다룬 소설이라고 들었다. 책이 워낙 두꺼워서 큰 맘 먹고 읽으면 쉽게 질릴거 같다. 하루에 두세페이지 읽으면서 편하게 보기로 한다.

서문에 흥미로운 문구가 있다.

‘ 보통 사람이란 그런 수난을 혼자서 감내해야만 하며 예술가들처럼 고통을 작품이나 혹은 지속적인 다른 어떤 형태로 변용시키는 축복 속의 구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

변용 ? 사전적 의미는 모습이나 형태가 바뀌다. 이다.
전기에너지를 빛에너지로 바꾸는 전기램프. 자신의 고통을 예술이라는 형태로 변용하는 예술가들. 그들은 그 에너지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알고있다. 결국 예술이라는것은 자신의 내재된 에너지를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바꾸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이야기. 자기의 말이 자기의 에너지이다. 남의 말, 남의 생각을 빌려다가, 또는 베겨다가 그럴듯하게 치장하는것은 에너지의 변용이 이뤄지지 않는다.

인스타그램에 내가 하고싶었던 글을 올렸다. 나름의 ‘의미’ 가 있다고 생각이 되는 글과 이미지의 조합으로 포스팅했다. 살짝 만족스럽다. 뭐, 이렇게 별나게 할까 ? 인스타를 누가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하고 할까 ? 뭐..이런 생각이 나를 결박한다. 나를 묶은 저 밧줄은 누가 묶은것일까 ?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지레 겁먹고, 남의 눈치를 보면서 나 스스로 묶은 것이다.

세상은 어차피 나에게 관심없다. 내가 쓰는 글을 좋아해줄 수있는 한명의 독자. 바로 나. 아직 그녀석도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있다. 녀석은 움찔움찔하면서 눈치를 본다. 좋아해도 될까 ? 그래도 될까 ? 그래... 그래도 된다... 자주 만나자.







매거진의 이전글한라산 백록담 라면동지 12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