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녹취하는 이유

D-167 필사,녹취를 통한 자기치유의 글쓰기

by 심리여행가 하루켄

하루의 시작은 글쓰기로 시작한다. 간단한 체조를 하고, 책상에 앉는다. 미드 나잇 인 파리의 테마음악 Si Tu Vois Ma Mere 를 반복 듣기를 지정한다. 마음은 12시간의 비행한 듯, 파리의 어느 작은 카페에 도착한다. 아이패드를 열고 애플의 워드 page를 켠다. 매일 쓰는 일기지만, 쓰고 싶은 주제를 정한 후 글을 쓰기 시작한다. 2018년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변화에 대해서 쓰기로 한다.


올해 봄 3월부터 필사를 시작했다. 글을 쓰고 싶은데 뭔가를 쓰려고 하면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마음속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데. 그걸 글로 표현해내지 못한다. 수도꼭지가 꽉 막혀서 물이 나오지 못하고 압력만 높아지는 그런 느낌. 황심소(황상민의 심리상담소)에서 황 교수는 처음에 글을 쓰기가 어려울 땐,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필사해보라고 했다.


다이소에 가서 2천 원짜리 노트와 1000원에 2개 하는 젤 타입의 펜을 샀다. 파란색 잉크가 노트에 부드럽게 묻어난다. 첫 필사는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였다. 쓰기 전에 소설을 읽어봤다. 뭐. 이런 내용이 다 있나 싶었다. 70,80 년대 삼류 영화 스토리 같은 20대 초반 젊은이의 방황기였다. 필사를 해보라고 했으니. 꾹 참고 시작했다. 노트에 매일 조금씩이라도 쓰기 시작했다. 쓰기 귀찮다. 쓰면서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뭔, 의미가 있기나 한 건가?


3개월 동안 필사를 끝마쳤다. 뿌듯함이 느껴졌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인정해주는 것도 아닌데. 회사 일보다도 더 뿌듯하게 느껴졌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성취감이다. 필사를 하면서 느낀 것은 소설의 내용이 좀 더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눈으로 보면서는 이해했다고 느꼈는데, 사실은 대충 스토리 정도 훑고 지나간 거였다. 필사를 하면서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이 글을 썼을까? 소설에 쓰인 표현 대신 다른 단어를 넣고 상상해 보는 훈련을 했다. 이를 테면 소설에서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오면 나는 사케를 마시는 것을 생각했다. 또 소설 속 남자가 여자와 한 방에 있을 때, 그 장면을 디테일하게 상상해 보았다. 글에는 표현 안되어있는 상황을 상상하면서 구체적인 이미지로 내 나름대로 그림을 그려보았다.


아이패드에 블루투스 키보드를 붙여서 애플의 워드인 page 에 타이핑으로 입력했다. 놀라운 경험이 시작됐다. 처음 소설을 눈으로 읽은 것이 1번, 노트에 필사를 하면서 2번, 아이패드에 타이핑하면서 3번을 읽게 된다. 소설의 글들이 처음 읽었을 때와 다르게 좀 더 생생하게 내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2번째 필사한 책은 츠타야 서점의 대표 마스다 무네아키의 <지적 자본론>이다. 필사를 하면서 저자는 아이디얼리스트임을 느낄 수 있었다. M자 아이디얼리스트이기에 로맨의 불안한 정서를 제외하면, 아이디얼리스트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다. 상황을 받아들이는 그의 진취적인 모습이 좋았다. 찌질한 내 모습과 많이 대비되었다.


5개월 동안 필사를 하면서 글 쓰는 작업에 대해서 거부감이 좀 덜하게 되었다. 8월부터 살아온 이야기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면서 머릿속의 생각이 비비꼬이고, 꽉 막혀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같은 자리를 맴맴 돌면서 복잡하게 얽히고설켜있는 그런 느낌. 풀어내고 싶었다. 멋지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 그 생각이 글을 어렵고 난해하게 만들었다. 능력도 없으면서 작가처럼 폼나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멋지게 쓰지 않으면 차라리 안 쓰고 말지. 나중에 멋지게 쓸 수 있을 때 그때 쓰자. 뭐 이런 합리화가 자리 잡고 있다. 쓰자.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쓰자. 겨울 새벽 운동을 나갈 때, 이부자리에서 일어나기 얼마나 싫은가? 딱 그런 마음이다. 글 한 줄 쓰는데도 핑계가 수천만 가지가 생각난다. 내가 뭘 안다고 글을 쓰냐? 좀 더 정리된 다음에 쓰자. 귀찮다. 로맨-매뉴얼이 작동한다는 것을 느낀다. 머리로 쓰지 말고 손으로 쓰도록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간단히 맨손 체조하고, 양치질한 후 물 한잔 마시고 바로 책상 앞에 앉는다.


멋진 글을 쓴다는 생각은 지웠다. 내 글을, 내 생각을 표현하는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살아오면서 느꼈던 이야기, 뭔가 한다고 나름 이것저것 찝적되며 살아온 내 청춘과 중년의 시간들. 그 무한 삽질의 시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싸해진다. 지나온 시간들을 버리지 않고 하나의 연속선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하려고 한다. 나 같은 M자 아이디얼리스트들이 어떻게 삽질을 하며 살아왔는지 그 기록을 남기려 한다.


황심소 녹취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었다. 필사와 마찬가지로 녹취도 놀라운 경험을 제공해준다. 심리상담의 수행과정이라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 귀로 들을 때 못 느꼈던 디테일이 쿵하며 다가온다. 녹취를 하려면 수없이 반복해서 듣게 된다. 그 과정에서 단어 하나, 토씨 하나도 대충 듣지 않게 된다. 내담자의 상황을 듣고 특정 단서를 근거로 wpi와 연결해서 문제를 찾아내는 과정은 셜록홈스를 연상하게 한다. 셜록 황이라는 닉네임은 황 교수와 참 잘 어울린다.


최소한 매주 팟캐스트 1개를 녹취를 하게 되면 한 달이면 4개, 1년이면 48개를 녹취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욕심을 내자면 1년에 100개를 녹취할 수 있다. 100개의 팟캐스트를 녹취하게 되면 M자 아이디얼, 아이디얼리스트에 대해서는 그 패턴을 분석할 수 있을 거 같다. 로맨-매뉴얼도 있기에 그 부분에 대해서도 분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황 교수는 전체 5개 타입을 모두 연구하지만, 난 내가 제일 잘 알 수 있는 분류만 파고 들어가 볼 생각이다.


나의 기록, 황심소 녹취라는 2가지의 과정을 꾸준히 수련하는 1년이 될 것이다. 그 과정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이 현재 내가 생각하는 보람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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