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뉴얼이라는 틀

D-153 로맨-매뉴얼 특성 알아보기

by 심리여행가 하루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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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벙커 1> 초창기인 2014년에 황상민 교수가 진행하는 <집단 상담소>를 발견했다. 내담자를 벙커로 초대해서 음성변조, 커튼으로 얼굴을 가린 후 공개적으로 상담을 하는 프로젝트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관점으로 내담자의 문제를 바라보고, 그에 대해서 각자 코멘트를 한다. 황 교수는 전문가의 시선으로 상황을 관찰하며 필요할 때 제한적으로 참여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내담자는 물론 우리들까지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꿀 수 있다는 실험적인 상담이다. 진짜 흥미롭지 않은가?


지난밤. 늦은 시간에 커피를 마신 탓도 있겠지만 밤새도록 <집단 상담소>를 몇 편 연거푸 듣느라고 새벽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 몸 컨디션은 안 좋지만, 뭔가 힌트를 얻은 듯해서 마음은 뿌듯하다.


내용은 이렇다. 결혼을 얼마 앞두고 예비신랑이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유사 성행위하는 오피스텔을 간 사실을 예비신부인 내담자에게 들킨다. 친구들과 나눴던 카톡을 여자 친구가 보게 된 것이다. 결국 이 사건 때문에 파혼에 이르게 됐다. 내담자인 여자 친구는 새로운 남자를 찾아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고, 현재 옛 남자 친구가 가끔씩 연락을 하며 지낸다고 한다. 결혼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될까요?.라는 사연이다.


여자분은 전직 교사 출신이고, 규범적인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예민한 감성이 느껴졌다. 그에 반해서 남자는 덜렁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사람 좋다는 소리를 들을 만한 성격의 활발한 느낌이다. 여자의 까탈스러움을 다 받아주고, 그에 대해서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거 같다. 남자는 사과를 하며 자신의 잘못을 잘못을 반성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있다. 반면에 여자분은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언제까지라도 사과를 하라고 말한다. 무섭다. 심리상담 내용을 들으면서 이렇게 안타깝고 답답한 적이 있었던가 싶다. 나 또한 로맨-매뉴얼 성향이 있기 때문에 그 마음은 이해가 간다. 자신이 정해놓은 틀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어떻게 해야 남자 친구의 진심을 확인할 수 있을까? 남에게 적용하는 잣대가 너무 강하다고 느껴진다.


찬반 투표가 붙어졌다. 두 사람의 결혼을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오디오 방송이기에 알 수는 없지만, 방송의 흐름상으로는 두 사람의 결혼은 반대쪽이 우세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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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서 클레임이 접수된 적이 있었다. 콜센터에서 통화를 했지만, 수긍하지 못하고 결국 내가 통화를 하게 되었다. 고객은 매우 흥분한 상태였고, 자신이 무시당했다는 듯 거침없이 욕을 하더니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다. 이후 계속적으로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서 상담직원들을 힘들게 했다. 교환으로 종결처리되었다.


나 또한 고객들에게 너무 완고한 잣대를 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클레임에 대해서 조사할 권한도 없고, 조사할 만한 어떠한 객관적인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클레임에 대한 대처는 원리원칙대로 처리되어야만 한다는 일종의 매뉴얼이 강하게 작동되고 있다. 누구도 행복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아마존 미국은 클레임에 대해서 허용치가 넓다. 사실상 속이려고 하는, 또는 의도치 않았던 과실을 알지 못하고 있는 고객의 클레임을 어떻게 판매자가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있겠는가? 내부적으로 클레임에 대한 매뉴얼을 수정했다. 판매사가 클레임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사전교육 및 예방에 관련된 콘텐츠 보강에 더욱 힘을 쓰고 있다.


상담내용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로맨-매뉴얼 만빵인 내담자 분은 그 남자분과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내담자 분은 예민한 로맨 성향이면서 매뉴얼이 과도하게 높다. 이 상태로는 결혼을 했어도 원만한 생활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결혼뿐이 아니라 본인의 생활 자체에서도 다양한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예민한 감정을 공유하고 이해해주는 사람을 원하고 있다. 쉽지 않다. 아니.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상태라면 그런 사람은 주위에 남아 있지 않을 거 같다. 다양한 사람들의 관점과 시각을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나 역시 매뉴얼 성격 때문에 생활 속에서 경직돼있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머리로는 이해를 하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경우도 있다.


글을 쓰면서 나도 알지 못하는 나만의 관점을 느낄 때가 있다. 브런치를 쓰고 있는 이유다. 누군가는 내 글을 보면서 자신의 관점과 충돌되는 지점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충돌을 통해서 매뉴얼이라는 틀이 깨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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