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창작수업-최옥정
가슴이 크게 뛰었다. 출발해야 한다. 이 말은 거의 날개치고 있다고 해도 좋았다. 내 주변으로부터, 나를 속박하고 있는 미의 관념으로부터, 내 어린 시절의 불우한 환경으로부터, 나의 말 더듬 증세로부터, 나의 존재 조건으로부터, 하여간에 출발해야 한다.
금각사 - 미사마 유키오
이 구절을 읽고 스물여섯의 크리스마스 아침, 나는 혼자 여행을 떠났다.
직장을 그만두고 전공과 경력과는 상관없는 웹디자인을 배우겠다고 얼마 되지 않는 퇴직금을 털어 학원에 등록해 둔 상태였다. 개강하기 전에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 나 자신에게 칭찬과 위로, 격려를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새로 걷게 될 길 위에서 두려움으로 벌벌 떨고 있는 나의 의지에게 "넌 충분히 혼자 걸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때의 지도는 조정래의 태백산맥이었다. 그 소설의 무대가 된 벌교, 화순, 순천, 낙안읍성을 시외버스를 번갈아 타며 돌아보았다. 구례역 앞의 다리를 건너 식당에 들렀다. 식사를 하면서 혹시 민박집이 있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식당 쪽방에서 하루 자고 가란다. 내가 짐을 풀자마자 서울에 올라가지 말고 여기서 좋은 총각 만나 결혼하고 살라고 했다. 화장대로 돌아앉아 주변 노총각? 들에게 전화를 돌리던 식당 아주머님의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남도 여행기는 다음 기회에...)
2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 나는 최옥정작가의 소설창작수업에 있는 추천 도서목록을 들고 있다. 그녀의 지도를 들고 보물을 찾아 여행하는 기분이다. 그녀의 목록 첫 리스트에 금각사가 등장한다. 혼자만의 첫 여행을 이끌었던 단 한 구절. 그것을 품고 있는 금각사는 대체 어떤 작품일지 궁금증이 일었다. 그래, 금각사는 내가 기어이 읽어야만 했던 책이었구나. 대학시절 일본문학을 공부했을 때 스쳐갔던 책이 세월을 돌고 돌아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나다니. 그래, 우리 만나야겠다.
하지만 금각사는 대출 중이었다. 예약을 걸어두기는 했지만 ‘내 이름은 빨강’, ‘자기 앞의 생’,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읽어내기까지 그 책은 반납되지 않았다. 두어 달이 지나도록 공공도서관의 책을 반납하지 않은 채 감감한 그 사람은 대체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을까?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큰 병으로 중환자실에서 있을지도, 이사를 한 후 아직 풀지 못한 짐 앞에 망연히 서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어디선가 잃어버렸거나 파손되었을지도 모른다. 책을 사랑하고 심성이 부드러운 그 사람은 너무나 미안한 마음에 도서관에 다시 발걸음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도서관을 지날 때마다 고개를 돌리며 미안함, 죄책감을 억지로 누르며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을지도.
아무튼 나는 그 사람 덕분에 리스트의 두 번째 책인 ‘내 이름은 빨강’부터 읽게 되었다. 그리고 놀랐다. 내가 늘 집어 들던 책과 결이 완전히 달랐다. 이슬람 문화에 대한 거부감은 사라졌다. 나는 한 인간의 심연으로 초대되었다. 깊고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글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내 초라한 글을 떠올리고 자책하는 것은 시간낭비였다. 오르한 파묵은 잔잔히 웃고 있었다. 죽음으로 이르기까지의 내적 외침, 죽음 이후의 고독과 육체를 떠난 영의 상태. 그 표현에 나는 무릎을 꿇었다. 예술의 경지. 신적영역과도 같은 그 끝. 그곳에 이르기 위해 자신이 파괴되는 것쯤은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광기. 육체를 벗어나지 않고는 다가설 수 없는 금단의 영역. 왜 인간은 그곳으로 이끌리고 나아가는 것일까.
이 책 이후에 만나게 되는 책은 너무 시시할 것 같았다. 맛이 느껴지지 않으면 어쩌지? 강력한 항생제에 적응해서 다른 약은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과 비슷했을까. 아니, 걱정 아닌 경탄이다. 감동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의 영혼이 꿰뚫리는 느낌이었다. 반납일이 되어 책을 돌려줄 때, 나는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내는 심정이었다.
"잠시 이별하자. 이 보물지도를 들고 떠난 여행이 끝나면 다시 돌아올게. 그때는 또 다른 느낌으로 만나게 될 거야."
나는 그 책에 깊이 파묻히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최옥정작가가 내민 다음 책을 집어 들었다. 그 책은 리스본행 야간열차였다.
"어? 리스본이 어디더라? 베른은 또 어디인 거야?"
세계지도를 머릿속에 넣어뒀으면 훨씬 재미있었을까. 페이지를 다섯 장 정도 넘겼을 때 나는 또 탄복했다. 파스칼 메르시어의 글은 한 문장 한 문장에 깊은 철학이 담겨있었다. 세계는 넓고 천재는 많구나. 나중에 작가의 소개란을 보니 그는 언어학, 철학에 능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랬구나. 자유자재로 색깔과 농도를 조절하며 단숨에 휘갈기듯 붓질해서 만들어 낸 듯한 엄청난 필체에 반했다.
아마데우의 어린 시절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죽음 이후의 그의 글. 그리고 그 주변사람들의 회고와 증언을 통해 살아났다. 그리고 나는 아마데우에게 사랑을 느꼈다.
"당신이 이끄는 곳이라면 그 어디라도 갈게요."
파스칼 메르시어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싶었다. 머나먼 동쪽 나라의 독자는 아마데우에게 사랑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당신의 책은 단지 인쇄된 글자가 아니라고. 그러나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장면이 오버랩되었다. 그레고리우스도 책을 읽고 저자를 찾아 떠난 여행이었는데, 나도 파스칼 메르시어를 찾아 떠나고 싶어졌다. 떠나려는 찰나 그 작가의 죽음을 알게 되다니. 나는 몸을 돌려 최옥정작가에게 물었다.
"자, 다음 책은 뭐죠? 다음은 저를 어디로 이끌 건가요?"
다음 책은 ‘위대한 개츠비’였다.
잠시만.
나는 첫 책을 건너뛰고 지금 가고 있는 거잖아. 최옥정 작가의 추천 리스트는 가나다 순서도 아니었다. 분명 글쓰기에 첫발을 디딘 사람을 위, 점진적으로 나아가게 하는 큰 그림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이대로라면 작가의 지도 순서와 다르다. 순서대로 가보자. 다른 도서관을 검색했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서 ‘금각사’를 찾을 수 있었다. 그 지도의 시작점이 궁금했다. 책을 첫 장부터 읽지 않고 중간 부분을 읽다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어떤가. 헤매다가 다시 돌아올 수도 있지.
결국 오랜 세월 돌고 돌아 그렇게 하여 금각사를 읽었다는 이야기다. (책 한 권 읽은 것을 참 길게도 늘어놓았지.) 강한 항생제에 적응이 된 나는 어딘가 마비가 된 채 얼얼한 기분으로 책을 덮었다. 금각사의 리뷰는 쓰지 못할 수도 있다. 나는 이미 다른 아름다움에 매료되었고 금각사는 그 감각을 깨뜨릴 만큼의 힘이 없었다. 오래전에 묻어두었던 타임캡슐을 열었는데 그 시절의 유치함에 헛웃음이 난 기분이 이럴까. 결코 금각사가 유치한 작품이라는 뜻은 아니다. 오르한 파묵과 파스칼 메르시어가 너무 강렬했을 뿐.
파스칼 메르시어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싶어 져서 지도에서는 잠시 벗어났다. 잠시 곁길로 간 길은 무라카미 하루키에게까지 이어졌다. 지도가 있다는 건 이렇게 안심이 되는구나.
어디까지 가고 싶어, 글로리아?
마음껏 가. 그 어딘가 어디쯤에서
돌아오고 싶다면
그땐 나를 펼치면 돼.
세상은 넓고 읽을 책은 많으니까.
글로리아의 보물지도 (소설창작수업 참조)
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내 이름은 빨강-오르한 파무크
리스본행 야간열차- 파스칼 메르시어
위대한 개츠비-F 피츠 제럴드
설국-가와바타 야스나리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파트릭 모디아노
자기 앞의 생-에밀 아자르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 조지 오웰
슬픈 짐승-모니카 마론
새벽의 약속-로맹가리
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키 잔챠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