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아닌 것
6
“형식적인 겁니다, 선생님.”
김반장은 전화를 끊었다. 과수원 집으로 가택수사가 나갈 예정이다.
"조진수는 아직 못 찾았어?"
“아주 작정하고 숨었습니다. 핸드폰도 집에 두고 나갔어요. CCTV 피하려고 했는지 자전거로 국도를 탔습니다. 국도는 아무래도 CCTV가 촘촘하지는 않아서요."
신형사는 얼음을 깨물었다.
여름이 일찍 시작되었다.
집으로 들어섰다. 신혼집이라 리모델링을 했나. 깨끗하다. 아내가 사용했을 서재는 디지털 피아노가 창을 향해 있다. 책장에 책들이 가득하다. 세로 가로 정신없이 책들이 뒤섞여 있다. 맨큐의 경제학? 월가의 영웅? 유튜브에다 요리책 그리고 베이비 플렌… 응? 베이비 플랜? 그래도 아기를 가지려고 노력은 했구나.
“가슴에에 구우멍이~~ 있었나 보오네에~~”
자락을 구성지게 늘여보는 김반장이다.
“저기 반장님, 여기와 보셔야겠습니다.”
과학수사팀 한 명이 김반장을 욕실로 불렀다.
“으응, 갈게.”
욕실 문이 닫혔다. 불이 꺼졌다. 어둠 속에서 푸른 빛이 번졌다. 얼룩은 없다. 뭐야? 너무 깨끗하잖아!
욕실의 등이 켜졌다.
“이상합니다. 반장님. 생활 혈흔이 없습니다. 양치하다가 피가 날 수도 있고, 생리 혈흔이 미세하게 튈 수도 있거든요. 그리고 남편분이 코피를 흘릴 수도 있고… 그런데 너무 깨끗합니다. 아무것도 없어요. 전혀.”
김반장은 뒷 목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배수구 확인해. 아, 저기 배관까지.”
자신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욕실에 차갑게 울리는 게 느껴졌다.
“확인했습니다. 배관은 새것입니다. 사용하던 게 아니에요. 육안으로 봐도 변기, 타일, 거울 모두 새것으로 교체한 지 한 달도 안 된 겁니다. 증거가 없습니다.”
“알았어. 정리해. 아니…. 아니다…. 여기가 깨끗하다는 증거를 확보해. 교체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이 오히려 증거가 될지도 몰라.”
김반장은 확신했다. 이건 머리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본능적인 직감이다. 거실로 나왔다. 남편은 안방에서 아내의 옷을 꺼내는 것을 보고 있다. 둥글고 순한 얼굴. 오늘따라 눈빛이 맑게 빛난다. 자신 있는 얼굴이다.
“신형사!”
김반장은 남편에게 눈을 떼지 않고 신형사를 불렀다. 목소리를 낮추었다.
“정민아, 너… 남편이 과수원으로 내려오기 전에 무슨 일 했는지 알아봐. 인테리어, 목수, 혹은 건설 쪽으로 유심히 살피고.”
예상대로 삼 년을 넘게 산 부부의 욕실에선 아내의 머리카락 한 올 나오지 않았다. 물때조차 없었다. 증거 없음이 증거가 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소설에서만 유효하다. 그래서 그는 무죄였다. 이 죽음은 미제사건이 되었다.
가을바람이 스산하게 수풀을 쓸고 지나간다. 아, 바람이 아니다. 김반장은 수풀을 헤집으며 무언가 찾고 있다. 개복숭 나무. 까만 비닐 봉다리에 병이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나무 주변에 소주 한 병을 뿌린다. 그리고 나머지 한 병은 김반장 입으로 가져간다. 꼴꼴 꼴꼴 소주 넘어가는 소리.
"애써 잡으면 뭐 하나. 반성문 몇 장이면 감형이고, 초범이면 참작이고, 증거가 모자라면 무죄지."
우리는 사람을 쫓고 법은 종이 위의 문장을 본다. 김반장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마시다 남은 소주는 병을 거꾸로 세워 마지막 방울까지 흘려보냈다. 빈병은 다시 검은 봉다리에 넣었다.
"죄송합니다. 윤순이 씨. 범인에게 죗값을 치르게 해주고 싶었는데 말이에요. 그래도 너무 억울해 마십시오. 사람 법 피해도 하늘 법은 못 피한다더군요. 그놈은 더 무서운 벌을 받을 겁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는 마른 입맛을 다셨다. 쩝! 생명보험이라도 가입되어 있었으면 보험사가 물귀신같이 물고 늘어졌을 텐데 이래저래 아쉬웠다. 가을 하늘로 눈길을 돌렸다. 그래, 이제 하늘 법에 맡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