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값을 정하는 자리.
5.
“내연남이 있었다고?”
김반장은 낮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살인은 보통 이성문제 아니면 돈문제다. 최악은 이성에게 돈까지 물렸을 때다. 윤순이는 어느 쪽일까.
“네, 반장님. 영장 받아 확인했습니다. 통화기록, 카드 내역, 계좌 흐름까지요. 그리고... 윤순이씨는 식당에서 일한게 아니던데요?"
“그럼…?”
“네, 그 일대 유흥가에서 일한 정황이 있습니다. 시골이라고는 하지만.... 유흥가는 제법 됩니다."
김반장은 짧게 숨을 내뱉었다.
읍이라 불려도 시골 냄새는 없다. 경운기보다 컨테이너 차가 더 자주 오간다. 공장과 창고가 띄엄띄엄 서 있고, 낮에도 사람 그림자는 드물다.
해가 지면 풍경이 바뀐다. 반주를 곁들인 저녁이 시작되고, 외지인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뒤섞인다. 인구에 비해 유난히 많은 술집들. 이국적인 간판 불빛. 깊은 골목에서 터져나오는 소란.
밤이면 경찰차가 몇 번이고 그 거리를 돈다.
김반장은 그 거리를 알고 있었다.
“내연남은 뭐 하는 놈이야?”
“조준수, 마흔 둘입니다. 투자 스터디방을 운영한다는데 실체는 불분명합니다. 일정한 수입도 없구요."
신형사가 파일을 넘겼다.
“5년 전, 제천에서 테니스 동호회 회원 암매장 사건 기억하시죠? 그때 용의 선상에 올랐던 인물입니다. 결정적 증거가 없어 빠져나갔고… 피해자의 명품 가방을 처분한 사기죄만 적용됐습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주변 평판이 좋지 않습니다. 여자관계도 복잡하고요.”
김반장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선배님. 아니, 반장님. 이건 뭐 여자가 죽을 짓 한 거 아닙니까? 반반한 얼굴 믿고 남자 하나 잘 물어서 돈 걱정 없으니까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고 행실도 그렇고…”
“정민아.”
“네, 반장님.”
신형사는 움찔했다.
반장님이 조용히 이름을 부를 때는 크게 혼날 때이다.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정민아. 세상에 죽을 짓이란 건 없다. 어떤 잘못을 하더라도 죽임을 당할만한 죄는 없다는 뜻이야. 물론 사회적으로 정말 나쁜 사람은 있어. 하지만 그 죗값은 사회적 기준으로, 정해진 대로 사회가 물린다. 우린 그저 억울한 죽음을 밝히는 일을 하는 거야. 우리...... 죗값을 정하는 위치에 서지 말자.”
신형사는 눈을 꿈벅거렸다.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자신이 길을 잘못 들어도, 이 사람만은 끝까지 나를 믿어줄 것 같은.
범죄자를 쫓으면서도 사람을 놓지 않는 진짜 어른의 모습.
그게 기술보다 더 무서운 힘이었다.
신형사는 고개를 숙였다.
“네, 반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말실수를 했습니다. 주의하겠습니다.”
김반장은 쿡 웃었다. 역시 눈치가 빠르다니까.
화제를 돌린다.
“야, 인마. 너도 결혼 잘해라. 늦었다고 서둘지 말고. 공무원이 박봉이라 처가가 잘 살면 좋기야 하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가오 상하는 일 많다. 이쪽이 또 소문은 빨라요. 누가 이혼했다더라. 애인 생겼다더라. 거기 휩쓸리지 마. 일도 힘든데… 착한 여자 만나.”
“반장님 그리 말씀하시면 아니되옵니다. 사모님이 엄청 미인이시면서...”
방긋, 웃음이 지어진다. 아내 이야기를 할라치면 어김없이 광대가 씰룩 올라간다.
“우리 와이프말이야. 얼마나 순하고 착했는지 아냐? 오래전에 정부에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을 때 나 순경이었거든. 얼마나 혈기왕성했는지 나 그때 날아다녔다. 그러다 조폭들한테 사시미 칼 맞았잖아. 와! 나는 아직도 그 차가운 것이 서늘하게 들어오는 느낌이 선명하다. 우리 와이프 그날 이후로 부적사서 내 베개에, 잠바 안주머니에 꿰매 넣더라고. 어쩌다가 출소한 놈들이 어떻게 우리 집 전화번호를 알고 전화를 한 거야. 김반장이고 니들 새끼들이고 아줌마도 다 죽인다고 하더래. 와이프 하얗게 질려서 벌벌 떨더니… 지금은 어떤지 알아? 저기요, 그건 김반장하고 이야기하세요. 두 분 문제시잖아요. 하면서 전화를 끊어. 하하하!”
그는 웃었다.
누군가는 건강을 잃고,
누군가는 가족을 잃고,
누군가는 직장을 잃는다.
우리는 위로를 건넨다.
반쪽짜리라는 것은 서로 알고 있다.
마음 한쪽에서는 다른 소리가 난다.
그래도 나는 잃지 않았다.
주머니 속에 가만히 손을 넣어 확인한다.
아직 나는 괜찮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