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데, 못 된
4.
아내는 소개로 만났습니다. 예전 직장 동료가 연결해 줬지요. 네, 맞습니다. 네. 지금은 연락 안 하고 지낸 지 오랩니다.
아내보다 제가 여섯 살 많습니다. 누가 여기 이런 시골로 노총각한테 시집오겠습니까. 그냥 저 좋다고 해서… 저도 집사람 처음 보고 좋았습니다. 세련되고 이뻤거든요. 여자답고 제 말도 잘 들어주고요. 잘 웃어줬습니다.
집사람도 저도 나이도 있고 해서 만난 지 석 달만에 결혼했어요. 사과랑 대추 다 내고 가을이었지요. 그해 겨울이 제일 조용했습니다. 초봄부터 농사일이 시작되니까 이 여자가 밖으로 돌더라고요. 피부과도 여기 시내도 아니고 저기 논현동까지 가더라니까요. 강남도 싫대요. 공장형 피부과라면서요. 양산 쓰고 새참 몇 번 나르더니 요리학원 다니겠다고 하더군요.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계속 무언가 배운다고 집을 나섰어요. 아무래도 낯선 곳이라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겠거니, 아기가 생기면 좀 나아지려니 했습니다. 아내는 임신을 원하지 않았어요. 제가 아기를 원하는 눈치를 비치니까 그때부터 슬금슬금 저를 피했습니다.
아, 직장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주변에 공장이 꽤 있거든요. 한 군데 진득하니 다니지는 못했지만요. 뭐라더라.. 김치공장도 있고, 바란스 웨이트 수출하는 곳도 있었어요. 친환경 유아용품 만드는 회사도 있었고... 내수용이 아니라 수출하는 곳이어서 툭하면 야근을 했습니다. 회식도 자주 하던데 술 마시고 운전을 하길래 아내의 차도 제가 팔아치웠습니다. 네, 크게 싸웠습니다. 차를 아무 데나 세워두고 처자는데 그 꼴을 어떻게 보냐고요. 직장도 다니지 말라고 했어요. 신용카드 한도를 낮춰버리니까 얼마간은 잠잠합디다.
운동한다고 한동안 나돌다가 가게를 차리고 싶다고 했어요. 일 배운다고 식당을 다녔어요. 그건 또 얼마나 가겠나 싶어서 내버려 뒀습니다. 결혼하고 삼 년 내내 과수원 일하랴, 아내 뒤치닥거리 하랴 저도 지쳤어요. 생활비 통장이랑 카드도 뺏었어요. 각자 벌어서, 각자 먹고살자고요. 제가 오죽하면 그랬겠어요. 집에 늦게 오거나 말거나, 친정에 가거나 말거나... 아주 꼴 보기 싫어서요. 이번에도 그냥 며칠 있다가 집에 들어올 줄 알았습니다.
내 아내지만 사람이 좀 이상해요. 착한데 못됐어요. 제 말이 좀 이상한가요? 근데 딱 그거예요. 못돼먹었어요.
그런데 사인은 뭡니까?
네? 어.. 어억? 살해?
......
순이.. 우리 순이가…
순이야아, 순이야아아악!
형사니임! 제가 잘못했어요.
내가! 내가 더 잘해줬어야 했는데.....
나 하나 보고 이 시골에 왔는데에엑
으아아악, 순이야아!!
......
“신형사는 나가 있어.”
김반장은 울부짖는 남자를 보고 마음이 먹먹해졌다. 자신도 아내가 있다. 내일모레 정년을 채우고 경찰서를 나갈 터이지만, 그 세월 동안 아내는 혹시나 남편이 다쳐서 돌아올까 봐, 죽어서 돌아오지 못할까 봐 그 숱한 밤을 긴장과 불안 속에서 보냈다. 한 번도 아내가 먼저 죽음을 맞이하는 상황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만약, 내 아내가… 사건의 희생자가 되고 그 사실을 듣게 된다면, 나 또한 이 남자처럼 무너질 것이다.
“선생님, 잠시 쉬는 게 좋겠습니다. 커피를 좀 가져오겠습니다. 담배는 여기 두고 갈게요. 원하시면 태우십시오.”
왜 이름 아닌 선생님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그래 경찰도 사람이야. 가슴은 따뜻하게, 머리는 차갑게. 그래도 가능성은 열어두자. 김반장은 복도 끝에 쭈뼛거리고 서있는 신형사에게 손짓했다.
“담배 한 대 태우고 오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