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조리사님이 오셨다.
신임 발령이었다.
여기 일을 모르는데도
우리의 조언도 가벼이 듣고
힘든 일은 적응을 핑계로 빠져나갔다.
그녀는 곧잘 한숨 쉬었고, 울었다.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속상하다고 했다.
하소연은 반복되었다.
내게는 자신의 무능을
감정적 하소연으로 덮으려는 태도로 보였다.
나는 말했다.
일이 낯설어서 힘든 것은 이해하겠으나 내가 당신의 감정까지 케어할 수는 없다.
감정을 보이기보다 역량을 보여주시면 좋겠다라고.
그녀는 움찔했으나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일은 평소보다 힘들어졌다.
방학 동안 간신히 맞춰놓았던 허리는 다시 틀어졌다.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은
우선순위를 두어야 했다.
일단 내 글의 퇴고에 집중했다.
앉아서도 누워서도.
답글을 쓰고 싶고
다른 작가님의 글을 읽고 싶었으나
지금은 참아야 해.
어두웠다.
나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아니, 가기는 할 수 있을까.
조용히 무너지던 찰나,
병가가 주어졌다.
병가를 쓰고 나오는 날,
발걸음이란 게 이렇게 가벼웠던가.
봄날이 이렇게 가까웠던가.
지병은 어디로 갔는가.
신이 났다.
오늘도 통증주사를 맞고
탄천을 걷다가
지하철 역 근처 반찬가게에서
찬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다.
그렇게 아프던 허리는
금요일 퇴근시간 이후로
말짱해졌다.
마음의 병이었나 보다며
의사 선생님께 말했다.
나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의사는 껄껄 웃었다.
본인도 쉬는 날은 아내를 도와 설거지를 하는데 싱크대가 낮아 허리가 아프다는 것이다.
수입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 사는 것은 거의 비슷하구나 느꼈다.
일단 신경의 붓기를 잡은 후, 충격파 치료를 하기로 했다.
체중이 늘거나 근육이 빠지면 허리 통증은 심해진다.
좋아, 병가 동안 바짝 펌핑해 주겠어.
몸과 마음이 편해지니,
슬슬 신임 조리사에게 미안해졌다.
나는 고립되어 있었다.
조리사는 나를 무서워하고,
실무사들은 나를
조리사랑 붙어먹은 년으로 만들었다.
(아, 그런 저급한 언어를 실제로 들을 줄이야.)
왜?
나는 그저 내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인데?
조리사에게 내 의견은 차갑게 전했을지 몰라도
역할은 충실히 했다.
기존의 카르텔에 동조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그녀를 도와서일까.
언제인가부터 나는 약자와는 싸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되뇌어 본다.
그녀들은 약한 사람들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