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죽었다.

by 글로리아

*이 글은 아동기 트라우마와 가족 내 폭력을 다룹니다.*



오늘 먹은 점심이 살아서 먹는 마지막 음식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편의점 튀김우동을 집어 들지 않았을 것이다.



감기는 낫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 몸살기가 있었다. 코로나를 앓은 이후로 감기가 더 강해진 건지 몸이 약해진 건지 알 수 없었다. 목의 통증과 가래 때문에 힘들었다. 병원에 가기는 귀찮았다. 퇴근하고 집에 오는 길에 약국에 들러 감기몸살약과 거담제를 샀다. 약을 먹으니 한결 나아진 것 같았다. 유튜브 영상을 보다 잠이 들었었나. 한밤중에 숨쉬기가 힘들어서 잠에서 깼다. 일어날 수 없었다. 몸이 너무 무겁고 뜨거웠다. 가르릉 거리며 힘겹게 숨을 쉬었다. 열심히 호흡을 하는데도 산소는 내 몸으로 흡수되는 것 같지 않았다. 거담제를 먹어서 목의 가래는 없어진 듯했지만 나의 폐는 젖은 담요를 올려놓은 것처럼 무거웠다. 뭐야? 가래를 얇게 펴서 내 폐를 코팅한 거야? 그 와중에도 나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농담을 했다. 잠들었다 깨었다 반복하는 동안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19에 전화를 하고 싶었다.


“여보세요.. 제가 지금 죽어가고 있어요…”

“신고자분, 어떻게 죽어가고 있죠? 상태를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숨 쉬기가 힘들어요.”

“하아~ 신고자분, 지금 숨 쉬고 계시잖아요. 심호흡해 보시고 정 힘들면 다시 연락 주세요.”


이러면 어떡하지?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걸 어떻게 증명하지? 그래도 전화해 볼까? 핸드폰의 잠금 패턴을 풀자니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내게 남은 힘은 겨우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정도였으니까. 크게 심호흡을 해도 숨이 막혔다. 정신을 잃었는지 잠에 들었는지 죽음의 공포 때문인지 한밤중인데도 눈앞은 하얬다. 안돼.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 죽기에 나는 너무 젊어. 죽기에 이른 나이가 있을까? 오는 데는 순서가 있어도 가는 데는 순서가 없다잖아. 나는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생각해 내려고 애썼다. 죽음의 사자가 나타나 내 손목을 잡아 끈다면 난 내가 이 땅에 더 살아야 할 이유를 말하며 그를 설득해야 한다. 썩어 없어지기엔 내 몸이 너무 아깝다… 결혼도 못했고, 아기도 못 낳아봤잖아. 어쩌면 내가 낳은 아기가 이 세상을 조금쯤은 밝혀줄지도 모르는데..


엄마가 떠올랐다.. 슬퍼하시겠지?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 아들이 아니라 딸이 죽어서 다행이라 생각하실 거야. 엄마를 생각하니 기운이 빠졌다. 삶의 의지가 흐릿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히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떠오르지 않자 난 조금 서글퍼졌다. 잘못 살았구나. 내가 죽어도 슬퍼해 줄 친구도, 가족도 없다는 게 슬펐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죽음이 가까이 왔다는 사실보다, 곁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보다.. 냉장고 안의 생수병의 물을 마실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제발.. 누가 저에게 물 좀 주세요….


의식은 계속 끊어졌다. 다시 연결될 때마다 난 열심히 생각했다. 왜 오늘이 금요일인 거야? 만약 평일이었다면 난 내일 결근을 할 것이고 그러면 직장에선 나의 죽음을 알게 될지도 모르는데… 아니다. 주말 내내 죽도록 아프다가 월요일 출근시간이 되면 난 살아날지도 몰라. 정글고의 불사조처럼 말이지. 그래도 다행인 건 있다. 지금 죽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통장의 돈도 거의 없으니까. 많은 돈이 있었다면 더 슬펐을 거야. 음.. 그리고.. 그리고 직장이 있어서 다행이야. 결근을 하게 되면 직장동료가 내 폰으로 전화를 할 테고 전화를 받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해 줄 거야. 내 시신이 부패되기 전에 발견될 거라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그나마 나아졌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침대에 깔려있는 전기장판의 전원을 끌까. 내 몸의 부패속도를 늦춰야 내 시신을 들어낼 때 내 두개골과 두피가 분리되지 않겠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혼자라는 게 절실히 느껴졌다. 제발 그런 흉한 몰골은 119 대원이나 경찰, 혹은 가족 그 어느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단 말이다.


“하나님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저 살고 싶어요.”


나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난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그저 빌고 있었다. 용서받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살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고통을 벗어나고 싶은 것일까.. 눈을 감고 있어도 눈앞은 하얬다. 그 하얀빛은 점점 더 강해졌다.


“어?”


누군가 나를 확 잡아 일으켰다. 일어나 보니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한 명 있네. 저기 누워있는 나 자신. 아까 전만 해도 울고불고 빌면서 몸부림치던 내가 있었다. 조금 파르스름하다. 호흡곤란 때문이었겠지. 아까 전까지 삶에 매달려 바둥거리던 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지금은 황홀하고 따뜻한 정적 속에 있다. 나는 내가 죽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곧 여기를 떠나야 함도 본능적으로 알았다. 다만 떠나기 전에 내가 살던 공간, 내가 쓰던 주방, 냉장고… 더 이상 생수에 미련은 없었지만… 한번 둘러보고 싶었다.

발을 옮기려는 순간, 어떤 힘이 나를 잡아당겼다. 저항할 수 없는 힘이었다. 발부터 창문 쪽으로 빨려나갔기 때문에 침대에 누워있는 나의 얼굴을 마지막 순간까지 볼 수 있었다.


커다랗고 하얀빛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난 점점 그분과 가까워짐을 느꼈다. 무섭다. 절대자, 창조자 앞에 서기엔 난 너무 보잘것없는 존재 아닌가. 언젠가 그분 앞에 서게 되면 내가 얼마나 선한 사람인지, 얼마나 운이 따르지 않은 사람인지, 그 불운에도 불구하고 선하게 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피력하려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변명하기 위해 품었던 의문들, 억울함, 온갖 불평까지—그 어떤 것도 나를 가릴 수 없었다. 살아 있을 때 무심히 삼키고 밟았던 양심의 털은 커다란 손가락이 되어 나를 가리켰다. 울음이 터졌다. 빨갛고 주름진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났을 때처럼 이곳에 돌아온 나의 유일한 언어는 울음뿐이었다.


“기쁨”


내 안에서 기쁨이 태양처럼 떠올랐다. 나의 기쁨이 아니었다. 그분, 절대자의 기쁨이었다. 그분의 언어는 소리와 진동이 아닌 에너지로 전해졌다. 왜요? 저는 당신을 위해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요...?? 어리둥절한 나의 눈앞에서 천사들은 펼쳐져 있는 두 개의 책중 하나를 뒤적여 내 이름을 찾아냈다.


검은 허공 위에 파노라마처럼 한 인생의 기억이 재생되었다.


내 삶이었다.


내 기억보다 더 형편없었다. 주변인의 삶을 기웃대는 내 모습이 억지스럽다. 내게 허락된 생은 외롭고 좁은—움직이는 거라곤 느릿한 나와 먼지보숭이 뿐인 독방이었다. 내가 살았을 때 보았던 다른 사람의 삶은 따뜻해 보였고 냉장고에는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가득 차 있었다.


나의 냉장고.


그 안에는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라 버리기 아까운 것들만 있었다.

주변을 서성거릴수록 시간과 돈만 낭비할 뿐, 외롭고 고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나를 사랑한 게 아니었다. 단지 불쌍한 사람에게 적선할 수 있는 자신의 위치를 즐겼을 뿐. 함께 먹은 음식도 이상한 평균법을 들이미는 바람에 더 적게 먹고도 같은 금액의 돈을 냈다. 의문을 품고 질문을 하면 곧바로 공격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귀신같이, 용하게도 나를 평화를 깨는 가해자로 만들었다. 보다 못한 엄마가 끼어들었다. 그들은 가족이었다.


생각이란 것을 하지 말 것, 따지고 들지 말 것. 그리고 참을 것.


초등학교 때의 일이 생각났다. 집에서 낮잠을 자다가 눈을 떠보니 작은오빠가 같이 누워있었다. 그의 손은 내 속옷 안에 있었다. 축축하고 기분이 나빴다. 엄마에게 일렀다. 엄마는 바늘과 실을 가져와 내 입을 꿰맸다. 그때, 무서웠던 엄마의 눈빛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 아들 앞 길을 막으면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엄마의 말과 행동은 나에게 그렇게 읽혔다. 새엄마가 아닐까 생각했다. 화는 나지 않았지만 오래도록 억울함은 나의 폭발기제가 되었다. 관계를 단절시키는 것은 내게 너무 쉬웠다. 그래서 죽을 때도 그렇게 혼자 눈을 감게 된 것이었을까?


참고, 말하지 않고, 벙어리 냉가슴으로 살면 평화를 얻을 수 있었을까? 한쪽만 참아야 유지되는 관계라면, 가족이라 하더라도 정리되어야 한다. 성인이 되어서야 나는 조용히, 그러나 정확하게 마침표를 찍었다. 인정받기 위해서 애쓰면서 나를 무너뜨리는 행동을 멈추겠다는 의지였다. 사랑해 달라고 외칠 필요도, 억지 가면을 쓸 필요도 없었다. 나는 자유를 느꼈다. 그런 자유를 얻기 위해선 얼마간의 외로움은 감당하기로 했다.


음악이 울려 퍼졌다. 천사들이 양쪽에서 나팔을 불었다. 그래, 더 살아봤자 고생이지 뭐. 천국에서 진정한 쉼을 누리자. 밝은 빛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음악은 클라이맥스에서 계속 반복되었다. 눈이 찌푸려졌다.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알람을 껐다. 저 울고 싶을 때 우는 고장 난 자명종 시계였다. 그렇구나. 우리 집에 움직이는 것이 나와 먼지보숭이뿐만이 아니었구나.


토요일 오후였다.


내 예상이 맞았다. 주말에 죽도록 아프다가 출근 전에 깨어날 것 같더라니… 주방으로 걸어갔다. 지은 지 30년도 더 된, 엘리베이터가 없는 낡은 아파트.


반갑다.


냉장고 문을 열고 생수를 꺼냈다. 설거지가 쌓인 싱크대에서 금요일에 사용했던 컵을 찾아 대충 헹구고 물을 따랐다.


이게 생명수야.


난 또 아무도 듣지 않는 농담을 했다. 물을 마시며 베란다를 바라보았다. 베란다 문을 열었다. 세탁기와 보일러가 양옆으로 있고 정면엔 세월에 뒤틀린 샷시 창이 보인다. 그 뒤틀린 틈으로 더위와 추위가 계절마다 번갈아 몰려왔다. 작은 틈으로 넘어오는 공격은 매섭다. 샷시를 갈아주기로 한 집주인은 도통 연락이 없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뒤틀린 창문의 틈은 내가 어찌할 수 없지만 마음의 틈은 메울 수 있지. 나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통화 연결음이 길게 울렸다.




“엄마… 나야…”





그날나는죽었다-03.jpg image by Gloria-죽음 앞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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