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지 않다 - 스티븐 킹
오늘은 토요일.
늦잠을 좀 자고, 점심을 먹고, 출퇴근할 때 끼고 다니며 감질나게 읽던 책을 마저 읽었다.
스티븐 킹의 창작론 유혹하는 글쓰기-김진준 옮김(김영사)
사실, 여름방학 때부터 읽기 시작했지만 도서관에 반납하고 나서는 좀처럼 만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인기 많은 책인 줄 몰랐다. 너무 욕심내서 여러 권 빌렸더니 채 다 읽지도 못하고 반납을 해야 했다. 그때 대출했던 책 목록을 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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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병렬로 읽는다. 학교에 다닐 때 우린 하루에 한 과목만 공부하진 않았잖아. 나의 집중력이 길지 않은 탓도 있다. 대략 한 시간 정도 책을 읽으면 잡념이 생기고 화장실이 가고 싶어지고 커피가 그리워진다.
그런데, 나는 왜 갑자기 책을 읽으려고 하는 것일까?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고 머릿속에서, 상상 속에 뛰어다니던 이야기들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즐거운 작업이었다. 하지만 브런치를 알게 되고 그곳에 내 글이 발행되기 위해서는 작가 신청의 관문을 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정도야 뭐, 쉽게 생각했다. 세 번째 자격심사에 탈락하고 나서야 나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이대로는 안된다. 내가 쓴 글을 나 혼자 읽고 즐긴다면 굳이 브런치 아닌 다른 플랫폼도 많았다. 승부욕으로 불탔지만 이내 내가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알았다. 방향도 목표도 또렷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었다. 소재가 신선하지도 않았다. 그냥 일상에 쳇지피티를 넣고선 SF라고 우기고, 나를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보며 허공에 주먹질을 했다. 아, 부끄러워. 나는 내가 무엇을 쓰고 싶어 하는지도 몰랐던 것이다.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지 모르면서 대충 끄적인 그림을 내밀며 '저의 세계를 알아주시죠'했던 거잖아.
막연한 마음으로 도서관에 갔다. 아이쇼핑하듯 책을 둘러보고 이 책, 저 책 골라 담고선 채 다 읽지도 않고 반납하기를 반복했다. 읽는 사람, 쓰는 사람이란 프레임이 좋았다. 이솝우화의 여우처럼 '브런치스토리는 신포도일 거야' 중얼거리며 떠날까도 했다. 그러다 스티븐 킹의 책이 중반을 넘어갈 때 즈음 느꼈다. 어? 이 책, 심상치 않은데? 그러나 반납일은 다가왔다. 괜찮아, 반납하고 다시 빌리면 돼. 가볍게 넘겼다. 그게 마지막일 줄이야. 매일 도서관에 갔음에도 그 책은 여름 내내 대출 중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운명의 힘은 악의적으로 내 인생을 방해하더니 이젠 도서관까지 따라왔구나. 결국, 책을 구매했고 병렬독서의 겉멋은 버렸다. 나에겐 맞지 않아. 앞으로 도서관에서는 한 번에 한 권만 대출하는 걸로. 얄궂다. 대충 수박 겉핥기로 살려고 하면 꼭 이렇더라.
창작론의 내용은 다른 작법 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한국의 작법 책을 지은 작가들은 모두 킹의 책을 참고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확실히 전달력은 달랐다. 프로의 보법은 다르다고 했던가. 글쓰기에 좀 더 진지하게 치열하게 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회고록(이력서)-창작론-인생론.
인생론에서 그의 글의 정수를 보았달까? 울었다가 웃었다가... 인생론에선 사고를 만나서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작가가 보았던, 들었던 장면들이 담담하게 서술된다. 그리고 교차되는 갈망, 의지, 자신의 삶.. 비록 육체는 비명을 지르나 그의 유머는 건재했고 글쓰기로 부서진 몸까지 일으킨다.
여러분이 정말 독서와 창작을 좋아하고 또한 적성에도 맞는다면, 내가 권하는 정력적인 독서 및 창작 계획도-날마다 4~6시간-별로 부담스럽지 않을 것이다.
그가 살아낸 회고, 창작, 그리고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던 삶. 그 모든 걸 나는 가슴에 눌러 담으며 읽었다. 위협하지 않으면서도 치열하고, 누구의 흉내도 아닌, 서늘하고도 따뜻한 문장들이 태어나길 소망하면서. ( 아니, 그런데 킹 선생님? 날마다 4~6시간의 독서와 글쓰기가 부담스럽지 않을 것이라고요? )
스티븐 킹의 교통사고 소식은 얼핏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책을 읽어보니 그의 교통사고 부상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킹은 좀 더 큰 병원으로 옮겨지기 위해 헬리콥터로 이동하게 된다. 그 하늘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그는 죽음의 가장자리에서 삶을 붙잡으려는 본능을 마주한다. 그는 공포소설의 대가이기 이전에 삶을 사랑하는 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죽고 싶지 않다."
반복되는 문장. 생존이 아니라 삶을 붙드는 사랑의 고백. 아내를, 아이들을, 호숫가를, 책상을, 글쓰기를.... 그는 하나씩 나열해 가며 자기가 이 세상에 아직도 있어야 할 이유들을 자기 자신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장면. 푸르고 화창한 여름 하늘 아래 헬리콥터 안에 누운 채, 죽음을 ‘비로소’ 자각하는 고요한 순간.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고, 몸은 비명을 지르고, 호흡은 기구에 의존해야 했지만 그는 그 안에서 문장을 지켜내고 있었다.
"죄송해요, 죄송. 괜찮으니 걱정 마세요, 스티븐." 심하게 다친 사람에게는 누구나 이렇게 서슴없이 이름을 불러준다. 모든 사람이 친구가 된다. "태비에게 정말 사랑한다고 전해주시오."
“태비에게 정말 사랑한다고 전해주시오.” 그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예감 속에서 자기 삶의 전부를 요약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남기는 말. 그 어떤 미사여구도 없이 직진하는 마음. 그리고— “나중에 직접 말씀하세요.” 이 짧은 응답이 죽음을 되돌리는 주문처럼 들렸다. 너무 담담하고, 너무 따뜻해서…그 한 마디에 기적의 가능성이 스며 있었다. 절망의 깊은 구덩이에서 누군가 손을 뻗어 올려주는 느낌. 그 말 한 줄이 누군가의 생을 다시 한번 마주 보게 만든다. 그리고 어쩌면 작가가 나에게 들려주는 말 같았다.
네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네가 아직 써야 할 문장들에게, 그리고— 네가 앞으로 살아갈 모든 날들에게......
이제 말해도 된다고.
"당신의 언어로 직접 말씀하세요"라고.
글쓰기의 목적은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 이 책의 일부분은 -어쩌면 너무 많은 부분이-내가 그런 사실을 깨닫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스티븐 킹이라는 사람의 심장 깊은 데서 길어 올린 글이다. 내 안의 뭔가가 탁 하고 울렸다. "글쓰기의 목적은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 이 문장을 가슴에 품어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삶을 붙잡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행복해지기 위해 글을 쓰자는 의지. 마치 작가가 긴 여정 끝에 손을 내밀며 '너도 여기까지 올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난 거기까지 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읽으며, 쓰며, 사랑하며 살아가는 여정이 있다면 내 삶은 행복할 거라 믿는다. “이 물은 공짜다. 그러니 마음껏 마셔도 좋다. 부디 실컷 마시고 허전한 속을 채우시기를.” 생명수를 마시고 이제는 그 물을 퍼주는 사람이고 싶고 나의 글로 누군가의 속을 채워주는 사람이고 싶다. 스티븐 킹은 말한다. 그러니까 이제, 마음껏 써. 행복해지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누군가의 생을 부드럽게 적셔주기 위해.
가슴이 크게 뛰었다. 출발해야 한다. 이 말은 거의 날개치고 있다고 해도 좋았다. 내 주변으로부터, 나를 속박하고 있는 미의 관념으로부터, 내 감가불우로부터, 나의 말 더듬 증세로부터, 나의 존재 조건으로부터, 하여간에 출발해야 한다.
금각사-미시마 유키오 (p2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