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헤르만 헤세

나는 떠돌이 개일뿐이야

by 글로리아

“나 또한 불쌍하고 약한 개일뿐이야. 약간의 온기와 사료가 필요하고, 때론 나와 비슷한 존재들에게서 위안을 구하는 그런 개 말이네. 반면에 정말 자신의 운명 외에 어떤 것도 바라지 않는 사람한테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은 없네. 오직 혼자서 살아가야 하고, 주위엔 온통 찬바람 쌩쌩 부는 우주뿐이지.”

p191


외로움이 싫었다. 그들의 온기와, 그들이 던져주는 사료가 필요했다. 꼬리를 흔들며 비위를 맞추었다. 사회적 가면은 너무 쉽게 벗겨졌다. 나는 너무 쉽게 도마에 올려졌고, 너무 쉽게 희생양이 되었다. 사람들의 밥상아래 눈치 보며 기웃대는 떠돌이 개처럼 혹시나 떨어진 부스러기는 없나 살폈다.

나는 항상 들켰다.

자신이 키우는 개는 품에 소중히 안고서 거지꼴을 한 개는 걷어찼다. 인정과 칭찬, 그리고 사랑. 이 세상에 존재하지만 내 것은 아니었다. ‘사실 길들여지기 싫었어!’라고 자위했다. 추위와 허기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주로 가는 길은 온통 사막이었다.



“자네나 나 같은 인간은 정말 외롭네.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서로가 있고, 서로 다르다는 것과 서로에게 반기를 드는 것을 즐기고, 무언가 범상치 않은 것을 바라면서 은밀히 만족하기도 하지. 하지만 그 길을 온전히 가려고 하면 그것 역시 버려야 하네.”

피스토리우스는 싱클레어에게 ‘우리’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주인공 싱클레어의 인도자였다. 하지만 싱클레어는 그를 넘어섰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인도자였을까 보호자였을까. 금각사처럼 절대적인 선, 궁극의 미였을까. 하지만 데미안도 그를 떠난다. 가끔 사막을 떠돌다가 생존자를 만나게 된다. ‘우리’가 되기도 한다. 그 시간은 길지 않다. 그가 떠나기도 하고, 내가 떠나기도 한다. 함께하는 생존을 택할 것인가, 온전히 나 일수 있는 고독을 택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늘 나를 괴롭혔다. 생존자를 만난 기쁨은 잠시일 뿐.

떠나. 떠나야 해.

내 마음속의 외침이 들린다. 잠들어 있는 그의 얼굴을 보며 인사를 한다. 내가 가진 모든 식량을 그의 곁에 두고 툭툭 털고 가던 길을 떠난다. 서로 다르다는 것과 서로에게 반기를 드는 것을 즐기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의문을 품은 채.



“내면의 깊은 고요에 빠졌을 때 나는 그것을 몇 번 느껴 보았다. 그럴 때 내 속을 들여다보면 내 운명의 영상이 나를 꼿꼿이 응시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눈은 지혜로 가득 찬 것 같기도 하고, 광기로 가득 찬 것 같기도 하고, 사랑을 내뿜거나 깊은 적의를 내뿜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다가 서둘러 도망쳐 나올 때가 있다. 사랑스러워… 중얼거리며 자기애에 빠졌다가 더 깊이 들어가면 광기와도 같은 춤사위에 놀라 얼른 문을 닫는다. 들키면 안 돼. 모두 나를 미쳤다고 할 거야. 그러다 다시 돌아온다. 웅크리고 있던 내 속의 아이가 나를 올려다본다. 내가 멀어질수록 그 아이는 날뛰었다. 술과 진정제로 잠재울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 나도 사회생활은 해야 할 거 아니야. 문을 닫고 잠갔다. 나는 어른이라는 다음 문을 향했다. 그리고 한동안 밤마다 그 아이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설쳤다. 귀를 막았다. 잠잠해졌다. 아, 다행이다. 이젠 평범하게 살 수 있어.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띵~ 문이 열리면 나는 꼭대기층의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가방에서 전단지를 붙이며 계단을 내려온다. 발걸음마다 등이 켜진다. 아, 제발. 이런 내 모습을 비추지 마. 짧은 겨울 해는 이미 넘어갔고 배는 고프다. 계단에서 마주하는 현관문은 차가웠지만 그 너머로 들려오는 웃음소리,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 그래, 너희는 따뜻하고 배부르고 행복하구나. 내가 가지지 못했던 행복, 그 극명한 대비.


왜 그 예전의 모습이 떠올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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