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헤르만 헤세(02)

나는 죄를 원합니다.

by 글로리아

요즘 잠들기 전에 민음사라는 출판사의 유튜브 영상을 자주 본다. '내 이름은 빨강'이라는 책을 읽고 여운이 길게 남아서 리뷰를 찾아보다가 민음사의 유튜브 세계문학고전 월드컵이라는 영상까지 보게 되었다. 그 영상에 자주 거론되었던 '데미안'. 제목과 작가의 이름만 들어봤지 읽어본 적은 없었다. 자주 접했던 작품의 이름만으로도 이미 그 책을 읽었다고 착각이 드는 이유는 뭘까? 출판사 직원분들이 열정적으로 그 책을 이야기하자 궁금증이 일었다. 그래, 이번 주는 '데미안'이다. 반납해야 할 책도 있었고 12월에 일본어 시험도 앞두고 있어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문제는 데미안 책이 여러권이었다. 아마도 출판사와 번역작가가 다른 모양이었다. 그래서 책을 다 뽑아 들고 한 권씩 비교해서 읽어보다가 제일 가독성이 좋은 책으로 골랐다. 출판사 사계절, 박종대 번역작가의 책이 내가 읽기엔 제일 괜찮은 것 같았다.


1. 성장소설 - 영원한 멘토는 없다.

데미안에서 내가 아는 기본 정보는 '성장소설'이라는 점이다. 성장을 다루었다면 지독한 방황이 나오겠구먼.속으로 짐작을 하며 책을 펼쳤다. 아... 뭐지? 이 문장들은? 이미 성장한 어른의 문장이잖아? 그것도 아주 집요하고 섬세한. 소년에서 청년으로의 성장에 그치지 않고 일반인에서 초능력자로 퀀덤점프를 했다. (아니! 성장소설이 아니라 SF잖아?) 이런 내용이 어떻게 독자의 공감을 일으키고 명작의 반열에 올랐지? 그러다 깨달았다. 사람들은 멀리서 보면 평범한 모래알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각각 특별한 색채와 우주를 갖고 있다. 그래, 특별함을 갖고 태어나서 기준점이 처음부터 남다른 사람도 있지..


"태어나는 건 누구나 어려워요. 당신도 알잖아요? 새가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 이제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물어봐요. 그 길이 그렇게 어려웠느냐고. 그렇게 어렵기만 했느냐고. 혹시 아름답지는 않았냐고. 더 아름답고 더 쉬운 길이 있더냐고."
p210

" 그래요, 사람은 자기 꿈을 찾아야 해요. 그러면 길이 좀 쉬워지죠. 하지만 지속되는 꿈은 없어요. 항상 새로운 꿈으로 대체되기 마련이에요. 그러니 어떤 한 꿈에만 매달려서는 안 돼요."
p 210


꿈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우리는 스승을 만난다. 나에게 데미안은 스승을 통과해야만 진짜 성장이 시작된다는 잔인하고도 진실한 순간을 보여준 책이었다. 싱클레어는 피스토리우스에게서 내면의 문을 여는 법을 배웠다. 그는 인도자였다. 그러나 인도자는 문을 열고 도착해야 할 곳을 알려주기만 하는 존재일 뿐 대신 살아낼 수 없는 사람이다.


사진을 찍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의 사진을 흉내냈다. 구도와 색감을, 그 빛의 방향을 비슷하게 찍어보려 노력했다. '카피해야지.'하는 의지는 없었으나 내게 각인 된 장면을 만나면 자동적으로 셔터를 누르게 되었다. 그 시기를 거쳐 나만의 시선이 생겼다. 나는 하고싶은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 이야기를 풀어낼 사진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하지만 내 양심은 알고 있다.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나의 시선을 갖는데 시간이 오래걸렸을지도, 이리 저리 헤매다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잘 지내고 계신가요? 허공에 안부를 보내본다.


그러나 습관이 아니라 정말 가슴에서 우러나와서 사랑과 존경을 바치고 진심으로 제자와 벗이 되었을 경우, 그 사랑과 존경의 대상에게서 떨어져 나가려는 우리 마음을 깨닫는 순간은 훨씬 괴롭고 끔찍하다. 그 경우, 벗이자 스승이었던 사람을 물리치는 생각은 모두 독가시가 되어 우리 자신의 심장을 찌르고, 저항을 위해 내미는 주먹은 모두 우리 자신의 얼굴을 때린다.
p182

신이 그의 비유를 빌려 내게 말을 걸었고, 내 꿈들이 그에 의해 해명되고 해석되어 내 품으로 돌아왔다. 게다가 그는 내가 스스로 용기를 가지도록 북돋우기도 했다. 아, 그런 그였는데, 이제 내 속에서 서서히 그에 대해 반감이 커지고 있었다. 그의 말들은 너무 강하게 남을 가르치려 했다. 게다가 그가 나의 일부밖에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p183

문득 나는 피스토리우스가 내게 보여 주고자 했던 모습이 결코 그 자신은 될 수 없는 모습이고, 그가 내게 선사한 것들이 결코 자신에게는 선사할 수 없는 것이었음을 깊이 느꼈다. 그러니까 그는 정작 인도자였던 자신은 감당해 낼 수가 없어 결국 떠날 수밖에 없었던 그 길로 나를 인도했던 것이다.
p186

우리는 꺼져 가는 불 앞에 한참을 엎드려 있었다. 불 속에서 타오르는 형상 하나하나가 우리의 행복하고 아름답고 풍성했던 시간을 기억 속에서 불러냈고, 피스토리우스에 대한 죄의식을 점점 크게 했다. 결국 나는 견디지 못하고 일어나 나갔다.
p187



"정작 인도자였던 자신은 감당해 낼 수가 없어 떠날 수밖에 없었던 길로 나를 인도했던 것이다."


나는 이 문장에서 전율했다. 그리고 알았다. 피스토리우스는 '같은 생존자'가 아니었다. 그는 문을 열어준 사람일 뿐이었다. 마지막엔 에밀이 견디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가다 서다 하면서 기다렸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에밀은 피스토리우스를 딛고 나아가야 했다. 외롭고, 무섭더라도. 그렇게 에밀은 자신의 이마에 카인의 표식이 찍혀있음을 처음 깨닫게 된다.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 '성장'이란 자기 자신으로부터 출발한다. 스승을 거쳐 다음 문으로 간다. 다음 문에서 그 문을 열어주는 또 다른 사람을 만나겠지. 아프지만 지나쳐야 하고 전진해야만 한다. 그 문 앞에서 울지도, 머뭇거리지도 말자고 다짐해 본다.


성장은 따라가는 길이 아니라 내 발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데미안은 내 안의 문을 열어주었고, 나는 그 문을 지나가며 다른 책들을 떠올렸다.


2. 올랜도와 데미안 - 꿈과 환상 그리고 광기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는 읽다가 그만두었다. 더 이상 읽었다가는 내 정신이 산산이 부서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데미안을 읽으면서도 책을 덮을까 말까 하는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갔으나 헤세는 나의 정신세계를 찢지는 않았다. 신을 믿는 내게 발칙한 질문을 던지고 도망치지 못하게 잡아 이끌었다. 결국, 나는 내게도 카인의 표식이 있음을 헤세에게 고백했다.


이에 반해 울프는 이름답게 늑대처럼 나를 덮쳤다. 헤세처럼 정교하고 섬세하게 내면을 파고드는 게 아닌 정신을 한 번에 뒤집는 파열이자 해체였다. 나의 현실마저 분해되고 읽고 있는 문장들마저 조각났다. 나는 무서움을 느꼈고 얼른 책을 덮었다. 한동안 다른 책을 읽어도 글이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고 그저 눈에만 머물렀다.


데미안을 읽으며 올랜도가 생각이 났다.


올랜도는 꿈과 환상을 오가며 독자에게 현기증을 일으킨다. 데미안은 꿈에서 깨면 현실로 돌아오지만 올랜도의 환상은 책을 덮어도 해체와 분열이 계속된다. 어떻게 극복했냐고? 매운맛은 매운맛으로 극복하는 법. 조세핀 하트의 '데미지'를 읽자 올랜도의 그림자가 말끔히 물러났다. 나의 말초신경들이 건강해서 다행이었어.


3. 멋진 신세계 - 선과 악의 이분법

“하지만 나는 안락하고 즐거운 것을 원치 않습니다. 나는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해요. 뿐만 아니라 나는 참다운 위험을 원하고, 나는 자유를 원하며, 선량함을 원합니다. 그리고 나는 죄를 원합니다.”
-멋진 신세계-


인간은 선하기도 하지만 악하기도 하다. 착한 일도 하지만 죄도 짓는다. 어쩌면 즐길 때도 있다. 나는 멋진 신세계에서 야만인 '존'의 대사가 충격적이었다.


"나는 죄를 원합니다."


죄를 원한다고? 죄를? 죄란 인간이 벗어야 할 멍에이자 풀어야 할 숙제 아닌가. 그런데 죄를 원하다니. 처음엔 존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곧이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인간은 선악이 공존하는 존재이다. 신앙적으로 봤을 때도 죄가 있어야 사함이 있고 구원이 있다. 그런데 인간 스스로가 죄를 해결한다면 신의 역할은 없어진다. 선을 가장한 교만이다. 죄가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 죄를 미화하거나 인간답기 위해 죄를 짓자는 말이 아니다. 빛이 있으면 당연히 그림자가 생기듯 인간에게는 선과 악을 분리할 수 없다. 우리는 선을 이룬 존재가 아닌 그것을 향해서 나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선하다고 우월감을 가질 필요도, 죄를 지었다고 죄책감으로 자신을 망가뜨릴 필요도 없다. 그 모순을 올바로 바라보고 계속 질문하고, 답을 얻어야 한다.


그 답을 얻는 과정에는 고통이 따른다. 그래서 데미안을 읽다가 '멋진 신세계'가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스승을 떠나 홀로 서야 하는 고통, 자기 자신을 직면하는 고통, 그리고 애써 만들어둔 틀을 깨는 고통... 야만인 존은 쾌락과 안락을 거부하고 위험과 죄까지 감당하려 한다. 성장은 어쩌면 자기화한 다음 그것을 깨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기자신을 깨는데 어떻게 아프지 않을 수 있겠어. 두 작품을 통해서 인간은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닌 존재이며, 성장은 그 모순을 껴안는 고통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동일한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렇다면 나는?


나도 피스토리우스 같은 인도자를 만나고 싶다. 그런 커다란 행운은 내게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 느리더라도, 캄캄하더라도 직접 손으로 더듬으며, 헤쳐나갈 용기는 생겼다. 어렵게 얻은 답을 깨뜨려야 할 때도 올것이다. 아프겠지. 그럴땐 이름을 불러야지. 데미안, 올랜도,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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