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헤르만 헤세(03)

누가 나를 다치게 하였을까.

by 글로리아
이것은 내 운명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더는 엄격하지도, 사람을 외롭게 하지도 않았다. 아니, 성숙하고 기쁨으로 가득 차 있는 듯했다. 나는 결심도 맹세도 하지 않았지만, 하나의 목표에 다다랐다. 내 길의 높지막한 지점이었다. 거기서 보니 앞으로의 길은 넓고 찬란했다. 약속의 땅으로 향해가고, 나무 그늘이 행복하게 드리워져 있고, 열락의 화원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길이었다.

앞으로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나건 세상에서 이 여인을 알게 되고, 그녀의 목소리를 음미하고, 그녀 곁에서 함께 호흡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지극히 행복했다.

그녀가 내게 어머니가 되건 여신이 되건 상관없었다. 그저 이렇게 존재하고, 내 길이 그녀의 길과 가깝게 붙어 있기만 하다면 충분했다.

데미안-헤르만 헤세


데미안에서 에밀이 자신의 이상형의 여인을 만났을 때, 과연 그런 사랑이 가능할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는 차분하게 자신의 파도에 몸을 맡겼고 그녀와도 언젠가 헤어지게 될 거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인간의 솜털은 시기가 되면 그 형태가 달라진다. 손등과 손가락에 검은 털이 나기 시작했다. 되돌리고 싶어졌다. 하얀 몸의 검은 털은 숨기고 싶은 죄였다. 얼굴에 수염도 났다. 나는 여잔데...... 박박 문질러 씻으면 사라지지 않을까? 아니 사라져 줘. 기도했다. 한번 열린 호르몬의 문은 닫히지 않았다. 그건 의지나 기도로 닫을 수 있는 문이 아니었다.


소년에서 사춘기로 접어들고, 또 청년으로 가는 길목에서 인간은 호르몬의 버튼이 켜진다. 그것은 자연의 순리라는 엄청난 힘으로 이성을 그리워하며 밤을 지새우고 언젠가 만나게 될 이상형을 그리게 된다. 그리고 그녀와의 사랑을 어떻게 그려나갈지 상상의 나래를 펴기도 한다.


그러나 에밀은 그녀와 함께 존재하고, 같은 방향의 길을 가는 것만으로도 충만해진다. 나는 음란마귀가 되어 언제 그 둘이 키스를 나누게 될까 조바심을 냈다. 그러나 그들이 보여준 것은 사랑을 넘어선 영적인 어떤 것이었다.


나는 실망했다. 그저 키스나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없어서가 아니라 — 그들이 나눈 내적인 친밀함, 영적 결합. 거기에 도무지 나는 다다를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욕망을 초월한 사랑의 형태에 나는 작아졌다.


누가 나를 다치게 하였을까. 강모는 죽은 듯이 누워 있는 강실이 쪽을 차마 바라보지도 못한다. 엄청난 두려움이 어깨를 짓누른다. 그러나 두려움보다 더욱 그를 짓누른 것은 허망함이었다. (조금만 참았더라면, 그랬더라면, 그랬더라면 좋았을 것을. 허망이란 이다지도 무거운 것이었던가. 내가 무엇을 얻겠다고 이런 일을 하고 말았을까. 얻는 것이 바로 잃는 것임을 내 몰랐구나. 얻으려 안타까이 마음 두고 있을 때는 내 것이었던 것이, 온통 나를 가득 채우고 있던 그것이 소유하는 그 순간에, 돌처럼 차게 식어 버린 덩어리로 내 속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내 미처 몰랐었구나.) 강모는 웅크리고 앉은 채 두 손을 무릎에 깍지 끼고 캄캄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아, 진실의 하찮음이여…….) 그의 가슴팍을 파고 들어온 날카로운 톱니가 뼈에 부딪힌다.

혼불 2권-최명희 p 151



욕구란 것은 무엇일까. 혼불에서 강모는 자신의 사랑을 다스리지 못하고 폭발하고 만다. 책임지고 추스리기보다는 도피를 선택한다. 그 선택에 강모의 내면은 어딘가 고장 나 방황과 회피를 멈추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책임 없이 욕구만을 따랐을 때 자기 자신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까지 무너뜨린다.


에밀은 자신이 가보지 않은 그 길을 어떻게 멈추었을까. 사랑은 욕망을 품을 수밖에 없다. 에밀은 욕망을 초월했고, 강모는 욕망에 무너졌다. 한 사람은 멈추었고, 한 사람은 터졌다.

나는 그 두 사람 사이에서 느꼈던 내면의 힘, 욕망이란 변명, 책임의 아름다움 그 사이에 있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어중간한 곳에. 문학이란 이런 것일까? 이상향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실패나 실수의 바닥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질문을 던진다.


"누가 나를 다치게 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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