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헤르만 헤세(04)

온전히 살아 보려 한 것밖에 없는데,

by 글로리아
이런 생각도 자주 들었다. 혹시 내가 미친 건 아닐까? 내가 원래 남들과 다른 건 아닐까? 그러나 남들이 하는 건 무엇이든 나도 할 수 있었다. 조금만 열심히 노력하면 플라톤도 읽을 수 있었고, 삼각법 문제를 풀거나 화학적 분석 과정도 따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할 수 없는 게 있었다. 내 속에 희미하게 숨어 있는 목표를 밖으로 명확히 끄집어내는 것이었다. 남들은 자신이 교수나 판사, 의사, 혹은 예술가가 되고 싶은 것을 정확히 알고, 그러려면 얼마가 걸리고, 그런 직업에는 어떤 장점이 있는지 꿰차고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물론 나도 언젠가 뭔가가 되겠지만, 그게 뭔지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어쩌면 나도 앞으로 여러 해 동안 그것을 찾고 또 찾아야 할지 모른다. 그러다 어쩌면 아무것도 되지 못하거나 어떤 목표에도 이르지 못할 수도 있고, 또 어쩌면 목표에 도달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악하고 위험하고 끔찍한 것일 수도 있었다. 나는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을 온전히 살아 보려 한 것밖에 없는데, 그게 왜 그리 어려웠을까?

데미안
p141


난 흉내내기를 잘했다. 일도 빨리 배우는 편이었고 모든 분야를 특별한 노력 없이도 어느 정도는 해냈기에 쉽게 싫증 냈고, 금방 그만두었다. 단계 넘기에선 특히나 그랬다. 인내하고 반복하면서 내 것으로 만들고 그것을 뛰어넘는 경험. 그 기쁨과 환희를 맛보지 못했다. 그저 나랑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냈고, 포기도 용기라는 헛소리를 했었다. 내가 좋아하고 잘 해낼 수 있는 일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열심히 찾지는 않았다. 운명처럼 만나게 될 거라고 나의 게으름을 포장하며 연이은 불운을 탓했다. 운이 없었어. 인연이 아니었던 거야.


삶의 진검승부는 매번 미뤄졌다.


나답게 살고 싶다는 욕망도 불꽃도 점차 사그라들었다. 그보다 더 슬픈 건 반짝반짝 빛났던 사유와 철학. 그리고 . 내 소중한 보물이 들어있던 창고의 문도 닫혔다. 그 문을 통해 나오는 것도, 들어가는 것도 없었다. 이렇게 늦어버리기 전에 왜 나는 악착같이 내 길을 찾지 못했을까?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할까? 열망도 지쳐 돌덩이가 되었을 무렵, 나는 다시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찾았다. 내 길.


하하....... 나는 내가 마음먹은 그 순간, 창작의 문이 활짝 열려 멋진 문장과 사유들이 쏟아져 내릴 줄 알았다. 막상 시작해 보니 삶과 글을 일치시키는 길은 예상보다 훨씬 지난했다. 적당히 쓰는 것조차 어려웠다. 일단 스스로 만족할 수 없었고 그런 자신에게 화가 났다. 무력해졌다.


더 정확해야 해. 더 예리해야 해. 타인의 심장을 관통하기 전에 먼저 내 마음부터 시원하게 해야지. 미사여구라는 군더더기 좀 걸러내 봐! 정수만 남길 수 없어?!!


그래, 그럴 수 없었다. 그럴 능력이 내게 없었으니까. 독서를 하고 필사를 하고 프리라이팅 글을 쓰면 ‘글을 잘 쓰는 나’ 자신이 될 수 있을까? 아니, 적어도 내 색깔이 묻어나는 나만의 문체라도 가질 수 있을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최옥정 작가의 [소설창작수업]에서 자신만의 문체를 만들기까지 최소한 3년은 걸린다고 했다.)


나의 승부근성은 늘 쓸데없는 곳에서 터졌다. 부디 너의 게으름, 너의 나태함과 싸우렴. 하찮은 물음표 하나 주워 들고 엄한 곳에서 분노 터트리지 말고.


데미안이 평소와 다른 진지함으로 말했다.
"우린 말이 너무 많아. 잘난 척하려고 말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 그건 그냥 자기 자신을 떠나는 거지. 자신을 떠나는 건 죄악이야. 사람은 자기 속으로 완전히 들어갈 수 있어야 해. 거북이처럼."

p97


떠드는 동안 나는 나를 떠날 수 있었고 타인과의 어색한 침묵은 희석되었다. 나는 분명 그 지점을 알고 있었고, 유도했고, 즐겼다. 그래야 별 볼 일 없는 나를 들키지 않으니까.

내가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없는 상대가 여러 가지 개인적 질문으로 다가오는 것이 소름 끼치도록 싫었다.


"아니, 이렇게 예쁜데 왜 그동안 결혼을 못했어요?"


자, 말해 봐. 너의 치명적인 단점을. 그 눈빛이 싫었다. 겉으로는 칭찬처럼 포장된 질문이 실은 "뭔가 문제가 있으니 결혼을 못한 거 아냐?"라는 폭력을 담고 있었다. 당신이 나를 얼마나 안다고...


'저기요, 친해지면 제가 알아서 벗을게요. 억지로 마음의 옷을 벗기려고 하지 말아 주세요.'


그건 혼자만의 외침이었다. 내가 왜 나를, 그것도 친하지도 않은 당신에게 말해야 하지? 왜 내 인생이 당신의 호기심에 벌거벗어야 하지? 평범하게 나이 들어가면서 거쳐야 하는 단계를 벗어난 사람의 숙명인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나를 아침드라마 정도로 만들고 싶어 했다. 소비 가능한 서사로, 판단 가능한 이야기로 환원시키려는 폭력. 매번 들고일어나 싸울 수는 없었다.


그런 어색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여태껏 사람들을 만나면 떠들었다. 피곤했다. 일어 회화 학원을 다녔을 때도 그랬다. 나의 어설픈 언어 수준을 들키기 싫어서 질문을 준비했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떠들었다. 왜냐고? 나의 빈약한 언어를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후훗, 질문을 준비하는 사람은 답변도 예상한다. 대화를 주도할 때 질문은 필수다. 수비가 어렵다면 공격을 해야 한다는 것과 비슷하려나.


시끄러운 나는, 들키고 싶지 않은 나였다. 마구 떠들면 아픔을 들키지 않을 것 같았다.


두께가 얇은 책, 그거 하나로 리뷰를 몇 개나 쓰는 거야? 하나의 책에 하나의 리뷰. 아니어도 되잖아? 책을 읽다 보면 작가의 질문을 마주할 때가 있다. 행간의 숨결, 자간의 머뭇거림. 나는 그것을 눈치챘다. 피하지 않고 답해보려 한다. 읽는 자, 쓰는 자, 그리고 살아가는 자로.


세상을 참고, 살아내기 힘들지?


가끔 그들이 말하는 팩트가 나에게 전달된다.


"사실은, 나도 너를 참아내기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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