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가 보이는 여자아이 2

by 김라라






무슨 생각해?

남자가 물었다.



여자는 물고기를 보고 있었다. 아름다운 물고기를. 물고기의 투명한 비늘은 가볍고 유연해서 바람에 흩날리는 쉬폰 스커트 같았다. 그것은 전체적으로 오묘한 빛을 내고 있었다. 누군가 강제적으로 현광물질을 주사하기라도 한 것처럼 속에서 부터 설명할 수 없는 빛이 물고기를 감싸고 있었다. 빛나는 물고기는 바닥에서 천장으로 천장에서 벽으로 헤엄을 쳤다.



오빠 생각 하고 있었어.


여자는 팝콘을 남자의 입에 넣어주며 그냥 그렇게 말했다. 남자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여자는 공들여 묶은 머리가 망가지는게 싫어서 살짝 고개를 돌렸다. 영화가 시작된 뒤에도 물고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물고기는 영화관의 커텐 사이를 지나 스크린으로. 스크린에서 바닥을 헤엄쳐 좌석으로. 여자의 무릎 위를 지나 상영실 쪽으로 끊임없이 움직였다. 여자는 손을 잡고 싶었지만 남자의 손은 팝콘통과 콜라만 집요하게 오갔다. 영화는 진부했다. 엑스트라들이 죽어나가고 주연배우는 시상식에서보다 화려한포즈로 총질을 하고 잠깐 잠들었다가 깨어나도 같은 화면이 반복됐다. 영화가 끝나고 야경이 근사한 한강변으로 드라이브를 가자고했다. 큐빅처럼 반짝이는 차안에서 제프버넷의 노래가 흐르고 카시트가 눕혀지고 당연한 일들이 일어났다. 남자의 손은 콜라와 팝콘에만 집중했던처럼 여자의 속옷속으로만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형식적일 뿐인 전희 후에 물고기 한마리가 다급하게 몸속으로 들어왔고 몇번 몸 속에서 헤엄치고 곧 사라졌다. 어떤 이해도 설명도 아름다운 수식어도 없이. 여자가 가장 아끼는 드레스가 더러워졌지만 남자는 넥타이를 고쳐메고 있어서 눈치채지 못했다. 여자는 핸드백 속에서 일회용 물티슈를 꺼내 말없이 남자에게 건냈다.



물고기는 한마리 일때도 두마리일때도 수십마리 일때도 있었다. 물고기는 화장실 거울이나 지하철 안의 손잡이 위에도 있었다. 그것은 결코 만질 수 없지만 실제하는 무엇보다 선명하고 아름다웠다.



집에 데려다줄게.



돌아가는 길에 남자는 말이 없었다. 사랑한다는 말이 없어도 차시트는 따뜻하고 열린 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칼을 아무렇게나 흩날려도 모든게 그런대로 견딜만하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종종 원치않은 장소에서 원치않는 순간에 물고기를 보고 싶어했지만 여자는 한번도 거절하지 못했다. 여자가 거절하지 않으면 남자는 쉽게 동의한다고 판단했다. 그런일이 있고나면 여자는 어쩐지 비늘이 전부 벗겨진 물고기만큼 처참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게 장소의 문제인지 여자의 문제인지 남자의 문제인지 설명할수 없어서 말하는 것을 포기했다. 다만 그는 늘 집 앞에 데려다주는 걸로 좋은 남자임을 증명하려고 했으므로.




다음에는 언제 볼 수 있을까

다음에. 시간 맞춰서 봐요.

오늘 너무 좋았어. 잘자.



다음이라는 말은 참 모호해서 좋다고 생각했다. 기약이 없어도 아무도 실망하지 않는 점이 좋다. 사랑이나 평생이나 영원히라는 말보다 참으로 다정한말이다. 여자는 불꺼진 방에 들어오자마자 티비를 켰다.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핸드폰을 집어들어 아무 영상이나 클릭했다. 여러개의 영상들이 물고기의 눈에 비쳤다. 불안한 감정이 들때는 물을 마시면 된다는 영상이었다. 여자는 냉장고 속에서 생수병을 꺼내 그대로 마셨다. 병 속에는 물고기가 들어있었다.





<2014년에 쓴 소설 물고기를 보는 여자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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