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조금씩 나아가는 것을 믿는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다. 그의 소설은 수많은 언어로 번역됐고, 독자들은 그 독특한 상상력과 고독의 미학, ‘하루키 월드’에 깊이 빠져든다. 심지어 ‘하루키즘’이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다. 하지만 난 그의 수많은 장편 소설보다, 그의 에세이를 더 좋아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하루키의 문장’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장을 쓴 인간 하루키에게 끌린다.
하루키는 새벽 4시에 일어난다. 커피를 내리고 책상 앞에 앉아, 4~5시간 동안 묵묵히 글을 쓴다. 오후엔 달리기와 수영을 하고, 샤워를 한 뒤 재즈를 듣거나 책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 치열하고도 절제된 삶의 태도가, 그의 에세이 속 문장 하나하나에 녹아든다.
그의 에세이를 읽고 있으면, 문장 그 자체보다 문장을 쓴 사람의 숨소리, 체온, 호흡이 먼저 느껴진다. 단어 사이에 밴 고독, 선택된 침묵, 스스로 세운 질서의 리듬, 그런 것들이 내 마음을 흔든다. 하루키의 소설은 상상의 공간 속 허구를 탐색하지만, 에세이는 그의 삶 그 자체를 천천히 따라 걷는 일이다.
난 작품의 서사를 따라가는 독자이기 이전에, 작가의 서사에 끌리는 사람이다. 소설의 기승전결보단, 그 글을 쓴 작가가 어떤 하루를 살았고, 어떤 생각으로 책상 앞에 앉았는지 더 궁금하다.
하루키의 에세이에는 그가 왜 글을 쓰는지, 왜 달리는지, 왜 고독을 감수하며 루틴을 지켜나가는지가 솔직하고도 담백하게 담겼다. 거기에는 허구보다 더 진실한 인간의 얼굴이 있다. 결국 좋은 글이란, 말의 기술보다 삶의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하루키는 스스로 증명해 보인다.
그래서 나는 하루키의 소설보다, 그의 에세이를 더 좋아한다. 나는 이야기를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쓴 사람을 읽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