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와의 첫 만남

by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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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겨울, 나는 방황하고 있었다.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겉으로 보기엔 부족할 게 없는 삶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늘 공허했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일까?'란 물음이 머릿속에 떠다녔고, 점점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다움을 잃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에 들른 서점에서 한 권의 책을 우연히 집어 들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소설가 하루키에 대해선 알고 있었지만, 에세이를 쓰는 작가라는 건 그때 처음 알았다. 별 기대 없이 책장을 넘겼지만, 어느새 빠져들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하루키의 문장은 담백했다. 번역투 특유의 어색함이 있었지만, 그 투박함이 오히려 더 진솔하게 다가왔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그가 지닌 ‘삶의 태도’였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4~5시간씩 글을 쓰고, 오후엔 달리기를 하고, 고양이와 시간을 보내며 재즈를 들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루틴. 거창한 이벤트는 없지만, 그 조용한 반복 속엔 흔들림 없는 단단함이 배어 있었다.


그리고 책을 읽던 중, 이런 문장을 만났다. '달리기를 하면서, 나는 그저 무언가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다만 '나'로 있고 싶었다.' 그 문장이 유독 마음에 박혔다. 그날 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운동화를 신고 무작정 달리기 위해 거리로 나갔다.


전역 이후 처음 달리는 거라 발은 무겁고 숨은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이상하게도 행복했다. 일종의 '러너스 하이'랄까. 뛰다 걷다를 반복하며 겨우 3km를 채웠다. 달리고 나니 삶의 감각이 조금씩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달리기는 하루키가 말한 대로, 혼돈 속에서 작은 질서를 세우는 행위였다. 그 고요한 리듬 안에서 복잡했던 마음이 정돈돼 갔다.


책에서 하루키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매일 조금씩 나아가는 것을 믿는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그 말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매일 조금씩, 아주 조금씩. 그렇게 나는 다시 살아가는 감각을 회복했다.


달리기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내가 '살고 싶은 나'로 돌아가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의식이 됐다. 그 겨울, 나는 처음으로 삶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작엔, 언제나 조용하지만 단단한 사람, 무라카미 하루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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