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함을 무기로
우리는 어디까지를 친함이라 부르고, 어디부터를 무례라 부를까.
“좋은 울타리는 좋은 이웃을 만든다.”
— 로버트 프로스트
누구에게나 각자의 개인적인 공간과 시간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경계를 아무렇지 않게 넘나드는 이들이 있다.
우린 그런 사람을 인간관계의 빌런이라 부른다.
A 씨의 아이가 아직 신생아일 때였다.
외출은 거의 하지 못하고 집에 머무르던 시기였다.
마침 같은 동네로 친구 B 씨가 이사를 왔다.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A 씨는 같은 동네에 살게 되면서 B 씨와 자연스럽게 자주 마주하게 됐다.
함께 산책을 하기도 하고, 집에 들러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간단한 식사를 하기도 했다.
친밀함이 깊어지는 속도가 다소 빨랐던 걸까.
어느 날이었다.
아이가 밤새 잠들지 못했고
A 씨는 거의 밤을 지새운 채 아침을 맞이했다.
비몽사몽 한 상태로 아이의 분유를 준비하고 있는데
띵동. 띵동.
현관벨이 울렸다.
인터폰 화면을 보며 A 씨가 물었다.
“누구세요?”
화면 속에는 B 씨가 서 있었다.
서로 만나기로 한 연락도, 언급도 없었기에 당황스러웠다.
“문 좀 열어줘. 배 아파, 급해.”
예상치 못한 상황에 잠시 망설였지만
다급한 일인가 싶어 문을 열어주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B 씨는 급히 안으로 들어와
인사도 없이 거실 화장실을 지나 곧장 안방 화장실로 향했다. 잠시 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나온 B 씨는
식탁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배고픈데, 뭐 먹을 거 있어?”
A 씨가 대답을 꺼내기도 전에
B 씨는 자연스럽게 냉장고 문을 열었다.
한참을 들여다보던 그는 다진 소고기를 꺼내 들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나 오므라이스 먹고 싶어.”
그 순간 A 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당황스러운 것인지, 불쾌한 것인지
감정이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잠시 후 B 씨는 식사를 마치고 돌아갔다.
현관문이 닫힌 뒤에도
A 씨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 상황은 과연 자연스러운 것일까.
친하다는 이유로 예고 없이 집을 찾고
사적인 공간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며
식사를 요구하는 일.
어디까지가 친밀함이고
어디서부터가 무례일까.
친밀함이 깊어질수록
오히려 지켜야 할 경계는 더욱 분명해진다.
그 경계를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 관계는 쉽게 흔들린다.
관계가 가깝다는 이유로
타인에게 불편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수록 관계를 억지로 유지하려 애쓰기보다
자신의 기준을 분명히 하고, 경계를 설정해야 한다.
불편함을 계속 감내하는 한, 그 무례는 반복된다.
“ ‘아니요’라는 말 하나로도 충분하다. ”
— 앤 라모트
나를 지키는 말과 행동은
결코 예민함이 아니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뭘 그것 가지고 그래?”
“왜 그렇게 예민해?”
그럴 때는 묻자. 마음속이 아니라, 나의 기준에게.
'나는 이 무례함을 앞으로도 견딜 수 있는가.'
답이 나왔다면 부드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나는 그게 불편해.”
그 이후에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그건 몰라서가 아니다. 알면서도 넘는 것이다.
반대로, 멈추고 돌아보는 사람이라면
미안함을 알고, 선을 배운다.
그런 사람은 시간을 들여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다.
결국, 평온하고 즐거운 인간관계의 핵심은
누구를 남기고
누구를 비워낼지의 문제다.
빌런과 내 사람을 구분하지 못하면
인생에는 불필요한 먹구름이 오래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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