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빌런을 말하는 이유

좋은 사람보다 먼저 알아야 할 사람들.

by 김하루



상대를 다 알기 전까지는, 가능한 한 친절해야 한다.
우리는 서로의 삶을 완전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은 저마다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고 있다. 그러니 친절하라.”

— 이언 맥라렌


누군가는 깊은 외로움을 감추고 살아가고,
누군가는 자본주의의 무게 속에서 가장으로 버티며,
또 다른 누군가는 소중한 존재를 잃은 채 하루를 견디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조건 없이 친절해야 한다.
그러나 그다음에는 분별이 필요하다.
이해하려 노력하되, 끝내 나를 무너뜨리는 관계라면
그 거리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빌런’에 대해 글을 쓰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민과 이해로만 유지되는 세상은 이상적이지만,
현실에는 끝내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아무리 공감하려 해도, 아무리 설명하려 해도
변하지 않는 유형의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우리는 여전히 사람 속에서 살아간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은
사람으로 인해 상처받고,
사람으로 인해 회복되며,
다시 사람으로 인해 일어선다.
그래서 곁에 두는 사람은 선택해야 한다.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나의 안정감이 달라지고,
그 안정감은 결국 내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까지 바꾼다.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누군가를 규정하고 미움을 조장하는 시선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글의 목적은 배제가 아니라 ‘인식’이다.
겪기 전에 알아차릴 수 있도록,
무너진 뒤가 아니라 흔들리는 순간에 멈출 수 있도록
작은 힌트를 남기고 싶었다.


언젠가 관계 속에서 휘둘리고 있을 때,

문득 떠올리길 바란다.
“이 사람이, 그때 말하던 바로 그 사람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구분하고 알아차릴 때, 비로소 대처하거나 끌려다니는 것을 멈출 수 있다.)


연민은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연민만으로 모든 관계를 지켜낼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나와 누군가가 겪었던 혼란과 상처가

단 한 사람에게라도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 그것이 이 주제를 꺼낸 이유이다.


때로는 달콤한 말보다, 현실적인 이야기가 더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어두운 면까지 알고 간다면

우리는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피할 수 있다.




#인간관계 #빌런 #내면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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