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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마음 Dec 30. 2021

[집장이 그리운 날] 보풀보풀 엄마 마음

명태보풀




-이건 뭐야?

-어 외할머니한테 얻어왔어.

 

아들이 내민 건 반찬통이었다. 나와 남편이 동행하지 않고 조부모님 댁과 외조부모님 댁에 가는 건 또 다른 의미가 있을 거라며 아들과 딸, 둘만 버스를 태워 조부모님 댁을 보냈다. 그랬더니 아들이 외할머니한테 반찬을 얻어왔다. 아들의 말인즉슨 처음 먹어 본 외할머니의 이 반찬이 입안에서 사르르 환상이었다나 어쨌다나. 외손주의 입맛을 사르르 녹게 한 외할머니 반찬은 뭘까. 반찬통 뚜껑을 열어보았다. 

 

명태보풀이다. 명태보풀은 마른 북어의 살을 보푸라기를 내 조리한다.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경북지방 고유한 향토음식이다. 명태보푸리는 북어 뼈를 발라내고 숟가락으로 긁거나 강판에 갈아 보푸라기를 만든다. 요즘은 믹서기가 있으니 믹서기에 갈기도 하지만 엄마는 믹서기에 가는 것은 좋지 않다고 했다. 편하기야 하지만 가루처럼 파시시 갈려 버리면 명태보풀의 격이 떨어진다고. 음식에 무슨 격이 있다고 싶겠지만 이는 음식을 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요리에 따라 그릇을 선택하고 정갈하게 담는 것도 마찬가지다. 요리는 맛 뿐 아니라 눈으로도 먹으니. 


엄마가 말하는 명태 보풀의 격을 살리기 위해서는 하루 전날 물기 머금은 베보자기로 북어를 싸두어 촉촉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고 북어포에 물기가 축축하게 베어 있어도 보풀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젖은 듯 젖지 않은 북어포가 좋다. 너무 바싹 말라도, 그렇다고 축축해도 안 되니 재료 준비부터 까다로운 음식이다. 베보자기를 펴 놓고 숟가락으로 북어포를 살살 긁어내면 보푸라기가 된다. 보푸라기를 다 냈으면 참기름과 고운 소금을 넣고 골고루 무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까만 통깨를 살살 뿌려 담아내면 꼬소롬하면서도 짭쪼름한 명태보풀이 된다. 노란 명태보푸리에 간간이 보이는 까만 통깨. 음식은 혀로도 먹지만 보는 맛도 있다. 엄마가 말하는 격인 가보다. 

 

명태보푸리는 보풀을 낸 후에는 금방 무칠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번거롭다. 그래서 귀한 음식 대접을 받았을까. 엄마는 내가 결혼을 하고 처음 시가에 갈 때 신행 음식의 하나로 명태보푸리를 보냈었다. 어머님은 명태보풀을 보고 이렇게 귀한 음식을 사돈이 보냈다며 집안 식구들한테 자랑을 했었다. 옆에 육질 좋은 쇠고기보다 놔두고 말이다. 이처럼 경상도 지역에서 명태보푸리는 결혼해서 신부가 아침저녁으로 시부모님께 대접하는 음식으로도 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또 이가 약한 노인들이 드시기에도 그만이다. 엄마는 막내딸의 시가에 수염이 허연 시할아버지가 계신것을 염두에 둔 모양이다. 엄마는 철없이 자란 막내딸이 결혼을 해 부모품을 떠나는 것이 불안했을까. 마른 명태를 보풀 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엄마는 신행 가는 막내딸에게 당부를 했었지. “알아도 아는 척하지 말고 무조건 물어보고 해.” 막내딸을 시가로 보내는 엄마의 마음은 명태보푸리 만큼이나 보풀보풀 일었나 보다. 꼬소롬한 명태보풀이 짭조름하게 입안에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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